[공희준의 메시지버스] 최소한의 측은지심도 모르는 법률 기술자들

대도시를 필두로 시골의 자그마한 마을들에서조차 우물이 진즉에 사라진 시대이므로 맹자가 했던 유명한 얘기를 필자 임의로 약간 변형·각색해보련다.

엄마젖을 뗀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서너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아기 하나가 아무것도 모른 채 인도에서 차도 방향으로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근처를 지나가던 행인이 아기가 위험한 상태에 빠지는 않게끔 당장 붙잡았을 것이다. 몇 초 후 무척이나 놀란 표정의 아기 엄마가 나타나 행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역시나 놀란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랬을 것이다.

그런데 아기가 자동차에 치일 수 있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물끄러미 바라만 본 몰인정한 행인이 한 명 있었다. 다행히 아기는 황급히 달려온 엄마 덕분에 차도로 들어서지 않았다. 아기 엄마는 아이가 철없이 차도로 가는 광경을 수수방관했던 행인에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원망 섞인 눈초리로 항의한다. 그러자 행인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싸늘하게 대꾸한다.

“나한테 아줌마 애를 보살펴야만 할 법적 책임이라도 있나요?”

인정머리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 싹수없는 행인은 십중팔구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이른바 일류대 법대를 졸업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 맹자가 인간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적 덕목으로 강조한 측은지심의 마음이 원천적으로 결여된 현상이야말로 남한사회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법률 기술자들로부터 흔히 발견되는 음산하고 소름 끼치는 두드러진 특징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도 되지 않아 발생한 10.29 참사(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집회가 5일 저녁 서울시청~숭례문 간 도로 사이에서 열렸다.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을 외치고 있는 촛불행동이 주최한 이날 집회에는 약 6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모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156명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책임을 정면으로 따져 물었다. 사진=고승은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도 되지 않아 발생한 10.29 참사(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집회가 5일 저녁 서울시청~숭례문 간 도로 사이에서 열렸다.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을 외치고 있는 촛불행동이 주최한 이날 집회에는 약 6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모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156명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책임을 정면으로 따져 물었다. 사진=고승은 기자

문제는 필자가 방금 상징적으로 예로 든 행인의 몹쓸 행태를 수많은 국민들이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이자 서울대 법대 직계 후배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목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은 측은지심이 있어야 마땅할 자리에 차가운 법률적 타산을 우겨넣고 있다.

나는 지난달 10월 하순에 서울 모처에서 발생한 비극적 참사의 원인이 오롯이 지금의 윤석열 정부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가 더불어민주당과 ‘직업이 시민인 사람들’이 마치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하게 벌이고 있는 정권퇴진 요구 대규모 장외집회에 연대감이 아니라 거부감부터 즉각적으로 발동된 까닭이다.

허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하며, 다수의 무고한 인명이 또다시 희생되는 초대형 재난의 재발을 막는 일은 전적으로 윤석열 정권의 몫이다. 이와 같은 쉽지 않은 과제들을 제대로 확실히 완수해내려면 대통령을 위시한 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함은 물론이다.

측은지심은 단순한 연민과 동정심의 발로가 아니다. 사회공동체가 정상적으로 유지·존속하도록 이끄는 촉매제이자 원동력이다. 글 못 읽는 백성을 향한 측은지심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낳았다. 추운 한겨울에도 독한 양잿물로 손빨래를 해야만 하는 여성들에 대한 측은지심은 혁신적 생활필수품인 세탁기의 발명과 지속적 성능 개량을 가져왔다. 문명의 발전과 제도의 혁신은 알고 보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무수히 많은 이들의 책임감이 쌓이고 합쳐진 결과물이기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벌써 반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국정운영에서 별다른 가시적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외국인 26인을 포함해 무려 156명이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사고로 목숨을 잃는 끔찍하고 황당한 참변이 터졌다. 윤석열 정권 구성원들이 전임 정권을 비롯한 남 탓을 하기에 앞서서 무거움 책임감을 느껴야 올바른 상황이다.

현실은 대통령도, 그를 철통같이 에워싼 명문대 법대, 즉 서울법대 출신 엘리트 법률 기술자들도 당장의 법적 책임만 모면하면 장땡이라는 식이다. 천박해도 너무나 천박한 사고방식이다.

대통령도 장관도 본질적으로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선출된 정무직이고, 후자는 임명된 정무직이라는 것 정도다.

정무직 곧 정치인에게는 세 가지 책임의 원칙이 있다. 첫째는 무한책임의 원칙이다. 둘째는 포괄적 책임의 원칙이다. 셋째는 선제적 책임의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이 힘에 부치고 체질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나랏돈 들어가는 정무직을 맡지 말고 그냥 양민으로 살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의 서울 법대 출신 율사들은 권력은 정무직으로 무한정 누리고 싶으면서도, 책임은 법률적으로 제한된 책임만 지기를 바라는 기색이다. 그게 아니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작금에 보여주고 있는 지질함과, 윤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과 총애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거의 매일 드러내는 비겁함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주장하며, 그 중요성을 재삼재사 역설한 책임윤리까지는 굳이 기대하지도 않겠다.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권의 이너서클을 이루고 있는,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각종 법률 기술자들은 더 이상의 비겁한 모습만은 제발 보여주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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