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기자]=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때는 희생자가 누군지라도 알수가 있었지만, 이태원 참사는 156명의 희생자 숫자만 알고 있을 뿐, 유족이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깜깜이 상태다.

10.29 '이태원 참사' 내외국인 희생자 8명 삶의 궤적을 따라가 그들의 사진과 이야기를 싣고 추모의 공간을 만든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정부는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여당은 희생자 명단 공개를 '패륜' '괴물' 이라고 비난한다. 희생자들의 분향소에는 영정도 위패도 없고 사연도 모른다. 숫자로만 익명화된 이들은 타자화되고 일반적 사고로 잊혀져 간다.

하지만 외신들은 희생자들의 사진은 물론 나이 등 이력을 상세히 밝히며,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상세히 보도 하며 추모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국민의힘은 8일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참사'를 정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희생자 명단공개' 문자 등을 통해 확인됐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문진석 민주당 의원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문자메시지를 겨냥한 것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을 향해 "이런 발상은 비공개 수사원칙을 규정하는 법률 위반일뿐 아니라 유가족 슬픔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패륜행위"라고 비난했다.

문 의원이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부터 받은 메시지에는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이 끝났음에도 희생자 전체 명단과 사진, 프로필, 애틋한 사연들이 공개되고 있지 않다"라며 "수사 중인 이유로 정부와 서울시가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의도적인 은폐"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주 원내대표는 2014년 세월호 참사들 두고 "교통사고"라고 했던 장본인으로 이번 이태원 참사를 두고서도 '문재인 정부'의 탓으로 돌렸다. 그는 지난 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43차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정권 동안 경찰이 너무 정권과 밀착해서 본연의 업무에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지적도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정진석 국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희생자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계산"이라며 "사람은 못될망정 괴물은 되지 말자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거칠게 비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서울 압사 참사의 희생자, 배우, 학생, 파티의 삶(Seoul crowd crush victims: An actor. A student. The ‘life of the party)> 제목의 기사를 냈다. 매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희생자 각각의 취미와 직업, 가족들의 이야기 등 그들의 짧은 삶을 반추하면서 애도의 시간을 가지게 했다.

희생자 8명이 남긴 발자취와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을 기록한 것으로 희생자들의 삶은 모두 저마다 사연을 담고 있다. 그들이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남긴 기억들을 WP가 활자화하면서 추모의 장이 만들어졌다는데 깊은 의미가 있다. 기사 제목 중 <The 'Life of the party'>는 직역하면 '파티의 삶'이지만, '분위기 메이커, 활력소' 등 좋은 의미로 쓰이는 관용구다.

매체의 기사를 온라인으로 공유한 네티즌들은 "희생자 사진과 이야기를 보도한 WP도 패륜인가?" "워싱턴포스트도 압수수색 하겠네" "이런 외신 기사 보면서 국내 언론사 기레기들은 느끼는 게 없을까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공유하면서 정부의 처사를 비판했다. 김 의원은 "외신 기사에 나온 희생자들의 얼굴을 보니 이제서야 현실감이 생기고 내가 아는 사람의 죽음처럼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라며 "그래서 보여주지 않으려 했구나. 우리는 그날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잃었다"라고 탄식했다.

김 의원은 또 한 네티즌이 올린 "워싱턴 포스트. 희생자들 한명 한명의 스토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기사들이 나오는 걸 어떻게든 막으려 하는 것 같은데 그게 국내 언론에겐 통하고 있는것 같지만 외신은 막을 수 없다. 이렇게 한명 한명의 생전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기사와, 그저 '사고로 15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는 보도는 아예 다른 차원의 정보"라는 글도 공유했다.

황교익 칼럼니스트는 "유족과 슬픔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줍니다. 고인을 자세히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정부가 희생자들 명단을 비공개한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월 31일 <서울에서 할로윈 군중 압사로 소멸한 젊은이들의 꿈>에서 일부 희생자들의 나이와 그들의 사연을 공개했다. 미주지역 커뮤니티 '미시USA'는 참사 희생자들 명단을 입해 수시로 업데이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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