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12월 12일 토포하우스 개인전
김기린 화백의 외손녀 ...예술맥 이어

[서울 =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분할과 굿기의 색면 추상으로 명상적 ‘빛의 우물’(井)을 구축하는 장희진 작가의 개인전이 23일부터 내달 12일까지 토포하우스에서 열린다.

색면추상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장희진 작가

음악이 텍스트와 밀접한 관계도 없이 가능한 것처럼, 대상(對像)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운 추상 회화는 내적 필연성에 따른 선택이다. 장희진 작가의 필연성은 예술적 DNA와도 맞물린다. 프랑스 유학파로 한국 추상 회화의 선구자인 김기린(1936~2021) 화백이 그의 외할아버지다.

작가는 아파트 발코니에서 새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의 변화에 따른 색 분할과 라인 긋기는 적합한 색(hue·色調)을 찾는 감각을 일깨웠다. 저부조(低浮彫) 느낌의 평면 바탕에 마치 색종이를 접었다 펼치면 나타나는 선들과 균열을 전면에 드러낸다.

전시는 근작들이 가진 무거운 색감과 힘을 뺀, 상대적으로 평면 캔버스의 구조를 강조한 최근작들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조명의 고도를 낮추어 캔버스 프레임에 초점을 맞추면 요철 캔버스가 만들어 낸 주름(골)이 뚜렷해지며 바랜 색(tint)이 나온다. 그 색은 한복의 하늘하늘한 소재(원단)와 색감 자체에서 모티프를 받아 물감의 질료가 마치 피부에 흡수되는 듯하다.

신작(新作)은 한번 색종이를 접어 학(鶴)과 배를 만들고 이를 다시 펼쳐 ‘아 이게 입체였었구나’라는 흔적, 입체가 품었던 공간의 향기가 배어있다. 장희진 회화는 캔버스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로서의 깊이와 평면으로서의 넓이를 아우르며 색의 이면을 사유하게 만든다.

장희진표 창작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작가의 천부적인 색채 감각과 공예를 하듯 천천히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수없이 쌓아올리고 매만지는 시간과 노동의 공력이 작가작업의 베이스에 요철로 드러난다. 조수에게 맡기거나 공방에 일거리로 위탁하는 그런 작업이 아니다. 순전히 작가의 손과 의도와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말 그대로 느림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느린 창작에는 작가의 고집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십수 년 전부터 해 왔던 작가의 베이스 만들기에는 자신만의 색조를 입히기 위해 바탕을 갈고 닦는 장인의 뉘앙스마저 느껴진다.

“나의 그리기는 나무의 잔가지 사이사이로 비추는 빛의 면적, 즉 사이공간을 그리는 것이다”

그는 화면위에 단순히 이미지를 그려넣는 전형적인 회화방법이 아닌, 역으로 허공의 부분에 채색을 가하여 이미지를 드러내는 역 페인팅 방식이다.

“작업과정에 대해 말하자면 먼저, 회화의 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캔버스에 특수 제작한 물결모양의 대형 곡선자를 이용하여 9mm간격의 라인을 치고, 라인을 따라 0.4mm의 라인 테잎을 붙인 뒤 그 위에 나이프를 사용하여 모델링 페이스트를 수십 차례 펴 발라 올리기를 반복합니다. 매체의 표면이 적당히 마르면 그 위에 다시 얇게 펴 바르기를 반복하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48시간 정도 지속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캔버스의 모델링표면층이 0.5mm정도의 두께가 되었을 때 하루를 건조시킨 후, 라인테잎을 조심스럽게 떼어냅니다. 이렇게 하면 라인테잎과 함께 떼어진 부분은 음각이 되고 나머지 부분이 양각이 되는데, 이렇게 내 작품의 특징적 기본 베이스인 요철면의 캔버스가 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후 수십 차례의 사포질과 다듬기, 그리고 베이스 칠을 해서 화면베이스를 완성시킨다. 이렇게 완성된 모델링의 요철 면(modeling made canvas)위에 그림을 그린다. 특별한 점은 작품의 이미지가 나무 혹은 숲의 형태 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 즉 여백, 혹은 허공을 그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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