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오면..

조치원역 역사에서 오장균 챔프(좌측)와 이영웅 세종시 대표
조치원역 역사에서 오장균 챔프(좌측)와 이영웅 세종시 대표

해마다 10월 31일이 되면 이용이 부른 공전의 히트곡 <잋혀진 계절>이 생각나듯 매년 11월이 되면 30세 전후의 젊은 나이에 삶을 등진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을 필두로 마지막 잎새를 부른 배호. 작은새를 부른 김정호가 문득 떠오른다. 선배 가수들에 이어 유제하 최병걸 김현식 김성재 홍세민등도 약속이나 한 듯 모두 11월에 모두 하늘에 별 이 되었다. 또한, 11월은 이번 주 연재하는 칼럼의 주인공인 염동균 챔프의 생일(11월 15일)과 세계정상 등극일 (11월 24일)이 겹치는 매우 뜻깊은 달이다. 지난 주말 필자는 K.B.A (한국권투협회)에서 주관하는 프로복싱 경기를 참관하기 위해 경기 장소인 세종시민 회관으로 향했다. 조치원역에 도착한 필자는 현장에서 이 고장 출신의 복서 오장균과 올 103회 전국체전에 라이트급으로 세종시 대표로 출전한 이영웅 선수를 만나 오찬을 하며 담화를 나눴다. 두 복서는 조치원 체육관 선 후배 관계이다.

감사패를 전달하는 양길모 총재(우측)
감사패를 전달하는 양길모 총재(우측)

18년간 현역선수로 활약하면서 48전을 뛴 그는 3차례 한국 챔피언과 2차례 동양 챔피언을 지낸 복서다. 그는 후배 복서 이영웅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그는 물은 섭씨 99°까지는 잠잠해 보이지만 마지막 그 1°가 더해지면 펄펄 끓어 냄비뚜껑을 뒤집는다. 복싱도 정상에 올라설 때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난관을 극복하라고 말했다. 자신이 막판에 정신력이 붕괴하면서 세계정상에 오르지 못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소회였다. 올 전국체전에서 세종시는 고등부에서 단 한 개의 동메달도 수확하지 못했다. 이영웅 역시 2년 동안 10차례 각종 전국대회에 출전 4차례나 동메달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오장균의 조언에 용기백배한 이영웅은 12월 14일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청소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페더급으로 출전할 예정이다. 강경덕 관장의 세심한 조련을 받으며 기량이 일취월장한 이영웅은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고교생 유망주다. 

권중석 KBA 심판과 권만득 KBA 심판위원장(우측)
권중석 KBA 심판과 권만득 KBA 심판위원장(우측)

염동균은 4년 6개월간 33승 (17KO) 무패

오찬 후 필자는 오장균과 함께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에서 이 대회를 개최한 극동 프로모션 대표 염동균 챔프와 양길모 KBA 총재를 경기장에서 만났다. 전 WBC 슈퍼플라이급 염동균 챔프는 과거 필자의 직장상사였다. 필자가 최요삼과 용산공고 학생들을 이끌고 화양리에 있는 숭민체육관에서 선수들을 지도할 때 프로모션 을 총괄하는 염동균 챔프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1994년 당시 신인이던 최요삼에게 자신의 비결(Know how)을 전수 이를 스펀지처럼 흡수한 최요삼은 기량이 급성장 후에 세계정상에 오르는데 원동력 역할을 했다. 1950년 충북 옥천태생의 염동균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대전 한밭체육관에 입관 전국선수권과 전국체전에서 2차례 준우승을 차지했다. 60전 53승 (29KO) 7패의 전적을 뒤로하고 1970년 3월 프로에 데뷔한 염동균은 아마추어 때부터 강력한 양훅을 주 무기로 활약한 권투선수였다. 1971년 10월 대뷔한지 1년 7개월 만에 국내 JR 페더급 정상에 오른다. 이때부터 염동균은 4년 6개월간 33승 (17KO) 무패를 기록한다.

자술서를 쓰는 로자딜라 주심
자술서를 쓰는 로자딜라 주심

동갑내기 삼총사

1974년 3월 장규철을 꺾고 동양 챔프에 등극한다. 동시대 맞수 홍수환은 4개월 후 WBA 밴텀급 정상에 올랐다. 두 복서는 고생근과 함께 수경사에 근무한 동갑내기 삼총사였다. 1975년 11월 염동균은 일본에 원정 다나카 후따로에 판정승 5차 방어에 성공한다. 이때 받은 대전료 2백만 원을 수경사 시절 선배 복서 허버트강에게 집 한 채 장만하라며 전달을 주는 선행을 베풀었다. 또한, 염동균은 2011년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이 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할 때도 백만 원을 쾌척했다. 염동균은 이 경기에서 오른손 골절상을 당한 후 종전의 권투선수에서 발레리나처럼 경쾌한 스태프를 밟는 아웃복서로 변신한다. 1976년 8월 1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부산공설운동장 특설 링에서 WBC 슈퍼 밴텀급 챔피언 리아스 코(파나마)를 상대로 타이틀전을 벌인다. 국내 선수로는 7번째 세계정상 도전이었다. 이 대결에서 염동균은 주도권을 잡고 일방적인 페이스로 경기를 진행 무난한 판정승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로자딜라 주심은 리아스코의 손을 들어 판정승을 선언했다. 뜻밖의 결과에 흥분한 관중들이 링 위로 난입하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국 측(KBC)이 거세게 항의하며 해명을 요구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로자딜라는 빗속에 경기를 해, 판정표를 잘못 기재됐다는 자술서(自述書)를 쓰고 25분이 지나 판정을 번복 염동균의 손을 들어줬다. 8월 4일 WBC 순위표에도 염동균은 WBC 슈퍼 밴텀급 챔피언으로 등재(登載)됐다. 그러나 WBC는 8일 만에 판정을 번복하고 염동균의 타이틀을 박탈했다.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 고균 김옥균이 삼일천하로 종말을 고했듯이 염동균도 8일 천하로 막을 내린 것이다. 

염동균 (좌측)리야스코 타이틀전
염동균 (좌측)리야스코 타이틀전

로자딜라 주심은 흥분한 관중들의 위협으로 염동균의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 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새색시처럼 살며시 다가왔다가 바람처럼 날아간 챔피언 벨트를 생각해보면 염동균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었다. 주심 로자딜라는 2003년 하늘에 별이 되었다. 절치부심한 염동균은 리아스코를 KO로 잡고 정상에 오른 일본의 고바야시를 국내로 불러들인다. 염동균은 1회 탈취한 선제 다운을 발판으로 살얼음판을 걷는듯한 박빙의 승부 끝에 2대0 판정승을 거두고 김기수 홍수환 유제두에 이어 프로복싱 대한민국 4대 챔피언에 등극한다. 어둠의 터널 속에서 희미하게 비추는 빛을 보면서 희망을 품고 훈련에 매진 115일 만에 극적으로 탈취한 챔피언 타이틀이었다. 염동균은 1차방어전에서 호세 세르반테스와 맞대결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둔다. 세르반테스는 자모라를 KO 시킨 WBC 밴텀급 챔피언 호로 헤 루한에 판정승을 거뒀고 89승(79KO) 13패를 기록한 WBA. WBC. 양대기구 밴텀급 챔피언을 지낸 루벤 올리바레스와 WBC 라이트급 세계정상에 오르는 호세 루이스 라니레스 (당시 42승 1패)를 KO로 꺾는 등 각종 맹수(猛獸)가 우글거리는 남미의 정글에서 실력이 검증된 당시 18전 13승(11KO) 3무 2패를 기록한 실력파였다. 

프로복싱 제4대 세계쳄피언 염동균선수 모습
프로복싱 제4대 세계쳄피언 염동균선수 모습

염동균챔프의 새로운 시작

1977년 5월 염동균은 푸에르토리코에 원정 17연속 KO 행진 행진을 펼친 홈 링의 윌프레드 고메스와 맞대결 12회 KO패 2차 방어에 실패하며 사실상 복싱에 마침표를 찍는다. 17연속 KO승을 거두고 염동균과 맞대결을 펼친 고메스는 이 타이틀을 17연속 KO 방어에 성공 연속 타이틀 KO 방어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염동균은 필자와 대담에서 이제 국내에 월드 챔피언 한 명만 배출하면 프로모터 직을 미련 없이 접을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이 대회 조력자로 등장한 대전 한밭체육관 복싱후배이자 K.B.A 양길모 총재가 조력자로 등장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16년간 대전 복싱협회장을 역임한 경기인 출신의 양길모 총재는 임재환 신은철 고지 수 등 대전대 출신 복서들이 대들보로 성장하는데 산파(産婆) 역할을 한 주역이라고 대한복싱협회 이해정 심판위원은 말했다. 필자는 양길모 총재에게 현재 한국 프로복싱에서 세계 타이틀 도전에 가장 근접한 선수가 장민혁 선수라고 말하자 양 총재는 필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공. 수. 주에서 조화를 이룬 복싱 감각이 좋은 선수라 응수했다. 

체육관 선후배  염동균챔프 양길모KBA 총재(우측)
체육관 선후배 염동균챔프 양길모KBA 총재(우측)

1997년생으로 올해 25세인 라이트급의 장민혁은 현재 11전 11승 (10KO) 승을 기록한 유망주로 안산 제일체육관 김 학명 관장이 야심 차게 조련하고 있는 복서다. 염동균 프로모터와 양길모 총재 두 분이 역량을 합심하여 챔피언탄생에 오작교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현재 복싱 단체는 6개로 고무줄처럼 늘어 심판진의 깊(Depth)이가 무척 엷어졌다. 이럴 때일수록 베테랑 심판위원인 권중석 권만득 등 역량 있는 베테랑 심판진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올 한해도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고 있다. 오늘이 순간까지 챔피언탄생을 위해 일선에서 수고하시는 염동균 챔프를 비롯한 모든 복싱인에게 진심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조영섭 권투 전문기자
조영섭 권투 전문기자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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