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중단

도어스테핑은 집 밖이나 건물 입구 등 주로 공개된 장소에서 특정 인물을 기다렸다가 약식으로 하는 기자 회견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월 21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기로 했다. 5월 10일 취임 후 6개월 만이다. 최근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 사이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통령실이 언급한 불미스러운 사태는 지난 11월 18일 윤 대통령의 출근길에 벌어졌다. 윤 대통령은 최근 동남아 순방 당시 MBC 취재진에 대한 전용기 탑승 불허에 대해

“MBC가 악의적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반응에 MBC 기자는 이에 ‘뭐가 악의적이냐’고 반문했다. 이후 MBC 기자와 이기정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 사이에 극심한 설전이 벌어졌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 9일 MBC 대통령실 출입 기자에게 “MBC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가 반복되어 온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하면서, “탑승 불허 조치는 왜곡, 편파 방송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힌바 있다.

대통령실과 MBC의 근원적 대립 구도는 지난 9월 22일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비속어가 담긴 발언을 했다’는 MBC의 첫 보도가 나오면서부터이다. 이에 대한 대통령실과 여권의 과도한 예민성은 한결같이 ‘왜곡과 거짓’으로 동맹을 이간하는 건 국익 자해행위라는데 초점 맞춰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국민들의 평균적 시각은 “국민은 대통령이 어느 정도 사려심 있는 사람인지, 외교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언론은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을 뿐이며, 윤 대통령이 실언했다는 ‘진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다.

‘국익 현실주의’ 해독제 ‘공정성’ 

국익(國益, national interest)이란 무엇일까? 영미권에서는 일반적으로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국가가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나 포부”로 국익을 정의한다. 국익은 17세기 이후 근대 주권국가의 성립과 함께 탄생한 개념이지만, 본격적 공론화의 무대에 서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 현실주의’ 중심 개념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그러나 현대국가 권력에서 국익 위주 현실주의에 비판은 무성하다. 특히 ‘국가주의·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한국에서 국익 논쟁은 모든 정치세력과 언론, 시민사회까지 참여하는 전방위적 태풍의 소용돌이로 가열차게 함몰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국익 우위론과 진실보도 우위론’의 원칙은 뒤섞여 혼재되어 있다. 이에 대한 주범은 바로 고질적인 정파성 때문이다. 

국익이 마치 절대선처럼 과대한 의미가 부여되면, 표면적으로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일시적이며 왜곡된 통합에 불과하다. 국익이 전지전능 신처럼 국가에 의해 하향식으로 강제 부과될 때, 국익은 시민의 자율적 공론과 합의를 결여하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 이익이 꼭 국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국가 권력이 남용 또는 오용될 가능성 또한 농후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합리성이 결여된 국익은 실질적 국익의 진정한 반영이라기보다 다른 정치적 목적, 예컨대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효과적인 통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수반하게 된다.

그럼에도 언제나 국익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의 추구이다. 진실이 왜곡, 조작되거나 무리하게 은폐 된 환경에서는 참된 국익은 절대 보호될 수 없다. 

여기에서 언론 역시 국익의 진정성 보증수표인 ‘공정성 담론 형성’에 기여도가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한국 언론은 진영논리에 빠져 특정 세력을 편들거나 반대 세력을 과도하게 공격하여 갈등을 극대화하는 보도에 전념하는 기형적 형태에 부끄러움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특정한 가치와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는 사실과 견해만을 선택하거나 과장하여 보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국익 못지않게 ‘진실 보도’라는 항속적인 숙명 의무가 부여된 사실을 한시라도 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언론은 현재 정파성 시비, 정당성 훼손, 신뢰의 하락 등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언론은 다양한 ‘계층‧지역‧직업‧집단’의 집단의 활동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언론의 담론에 영향을 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공정하게 반영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렇듯, 실패로의 귀결은 각계각층에서 광범위한 공정성 요구를 촉발하게 된다. 공정성 규범의 통합 내면화에 실패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는 이념적 투쟁의 악순환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늘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행동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한 반대의 목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국민의 창의력! ‘국가 번영의 꽃’

지금 우리는 세계질서의 대전환과 지구환경의 악화로 돌변하고 있는 질병과 재난, 글로벌 경재난으로 인한 불확실성과 양극화의 심화, 인구절벽 등 섬뜩한 미증유 복합 위기 앞에 직면해 있다. 이제 한국 국익론은 국내정치적 차원뿐 아니라 국제적 차원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공간적인 차원에서 남북 관계, 동북아 지역, 세계와 관련하여 아우를 수 있는 한국의 국익을 정교하게 재구축해야 한다.

인간은 권력과 타인에 의해 억압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의해 자유의지로 삶의 의미를 찾아갈 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고 국민의 창의력은 국가 번영의 꽃을 피운다. 우리 대한민국의 대내외적 환경은 국민이 정치로부터 위안을 받고, 서로를 친절하게 배려하고 자본의 횡포에 ‘연대‧대응’하며, 약자의 편에서는 공동체 사회의 회복에 매진해야 할 중차대 시점이다.

이제 시민 혁명으로 일궈낸 민주적 가치를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국익을 규정할 수 있는 실천적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익과 진실 가운데, 언론이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느냐는 이미 오래전에 마무리된 사안이다. 

미국이 베트남전 개입을 위해 조작한 ‘통킹만 사건’(1964)을 담은 펜타곤 문서를 1971년 6월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기념비적 사례이다. 리처드 닉슨 정부는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제소했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명료했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증명 없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며, 국익을 위한 재량과 판단은 최종 언론사 스스로의 선택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다.

우리 현대사는 ‘국익’ 또는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언론을 통제해 온 역사를 재현할 순 없다. ‘국익보도’는 ‘진실보도’에 밑받침 될 때만 ‘국익’의 가치를 갖는 것,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정부는 언론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하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 동시에 언론은 언론으로 존재하는 한 그 본질의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정확성, 신뢰성, 다양성’이라는 저널리즘 기본 가치를 토대로 비교했을 때 매우 낙제점이다. 한국의 언론은 단순한 불신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해가고 있지 않은지 우려할 만한 징후들이 곳곳에 선적하여 있다. 일류국가를 만드는데 공명정대 일류언론의 뒷받침 없이는 안 된다. 정치 후견주의 회피와 ‘신뢰와 책임, 균형’을 갖춘 언론 미디어의 환골탈태 재정립이 매우 절박하며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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