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으면서 관련 범죄가 법망을 피하는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법원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스토킹 처벌법의 입법 취지가 무색한 판결을 잇달아 내놔 논란이 이어진다.

1일 경찰과 한국여성의전화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후 1년간 경찰이 접수한 스토킹 신고 건수는 2만9천 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법 시행 전 3년간 경찰이 접수한 1만9천 건보다 1.5배가량 많은 수치다.

법 시행 후 스토킹과 관련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엄벌을 촉구하는 여론도 확산했지만, 오히려 범행 수법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직접 피해자를 지속해서 괴롭히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피해자의 지인 등 주변인을 괴롭히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은근하게 공포심을 주는 식이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받은 상담 중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피해자 지인의 사업자번호를 검색해 알게 된 휴대전화 번호로 지속해서 연락해 지인을 괴롭힌 사례도 있었다.

또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이나 SNS에 피해자만 알 수 있는 내용의 무서운 글이나 사진을 올려 '간접 스토킹'을 하기도 한다.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그의 직장에 전화해 출근했는지 계속 확인하는 방법도 교묘한 스토킹 수법 중 하나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스토킹 피해 상담사례 중에는 직접 스토킹하는 경우만큼 교묘한 방식도 많다"며 "경찰에 신고해도 사건으로 접수해주지 않고 처벌이 어렵다는 말만 하는 경우"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스토킹 처벌법 제정 당시 규정한 스토킹의 정의가 지나치게 협소한 탓이다.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는 스토킹 행위를 포괄하지 못한다.

현재 스토킹 처벌법이 규정한 스토킹은 크게 5가지다. ▲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 주거지·직장·학교 등지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 편지·전화·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음향이나 말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 물건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 ▲ 주거지나 인근의 물건 등을 훼손하는 행위다.

최 소장은 "최근 발의된 개정안에 '온라인 스토킹'이 추가됐지만, 여전히 범위가 협소하다"며 "스토킹 처벌법이 지속성과 반복성을 요건으로 둬 일회성 스토킹은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한국여성의전화와 심층 인터뷰를 한 40대 피해자는 "스토킹은 처음부터 범죄로 봐야 한다"며 "(스토킹 피해자는) 운이 좋아 살아 있을 뿐이지 다음번에는 (가해자가) 흉기로 찌른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걸려 스토킹 처벌법을 만들었는데도 허술한 법망뿐 아니라 법원의 판단도 문제다.

최근 인천에서는 스토킹 처벌법이 없던 17년 전 판례를 근거로 스토킹 사건을 해석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잇따라 논란이 일었다.

법원은 집요하게 전화를 걸었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았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민 법 감정과 맞지 않는 법원의 판단은 양형에서도 나타난다. 스토킹 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결은 6건 중 1건에 불과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스토킹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판결문 95건을 대법원에서 받아 전수 분석한 결과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한 사건은 16건(16.8%)에 그쳤다.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과거에 사귄 사이였다는 사실을 감형 이유로 제시하거나 스토킹 기간이 짧은 점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보기도 했다.

이 의원은 "스토킹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역주행' 판결을 쏟아내면서 국민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이 쌓이고 있다"며 "현재 법원 판결은 스토킹 행위의 다양한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토킹 범죄의 특성을 반영한 가중처벌 조항을 제정하거나 스토킹의 다양한 양상에 따라 법정형을 세분화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