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은 기자]= 코로나 19의 여파가 잦아들면서 본격적으로 팬데믹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던 올해였다. 특히 3년 만에 펼쳐진 아카라카, 정기 연고전 같은 학교 행사들은 팬데믹 이전 일상으로의 복귀를 실감케 했다.

올해는 집합 금지로 취소됐던 대회들이 재개되며 연세대학교 야구부 역시 횡성, 보은 등 각 지방에서 펼쳐진 여러 대회에 참가했다. 이번 코너에서는 모든 대회 일정을 마무리한 연세대학교 야구부의 1년 성적을 정리하고, 무엇보다도 완벽했던 대역전승으로 유종의 미를 거둔 2022 정기 연고전의 주요 장면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온 마음을 다해 그라운드를 누볐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겨울, 봄, 여름, 가을

올 초, 연세대학교 야구부(이하 연세대)는 전지훈련 대신 윈터리그 참가를 택했다. 대구와 보은/단재에서 펼쳐진 두 대회에 참가한 연세대는 고교와 대학 강팀들을 상대로 잇따라 대량 득점 승을 기록하며 9승 2무 1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맞이한 봄, 그들은 더욱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4~5월에 진행된 2022 KUSF 대학야구 U-리그(이하 U-리그) 예선에서 10경기 치르는 동안 무려 82득점을 뽑아내는 타선의 화력을 뽐냈다. 다만 7승 2무 1패를 기록했음에도 워낙 강팀들이 모인 조였던 탓에 왕중왕전 진출을 이뤄낸 3위에 만족해야 했다.

​무더운 여름은 보은과 횡성에서 났다. 5연승을 달리며 페이스가 좋았던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는 8강에서 아쉽게 물러났고, 횡성에서는 영원한 라이벌 고려대학교 야구부(이하 고려대)에 분패하며 두 경기로 대회를 마쳤다. 그러나 다시 서울로 돌아와 치른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대표 선발전, 연세대는 3전 3승으로 울산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가을에는 U-리그 왕중왕전에 나섰다. 첫 두 경기에서 강팀을 꺾으며 초반 기세를 보였지만, 올해 유달리 고전한 인하대학교 야구부(이하 인하대)에 패해 결선에 오른 20팀 가운데 4위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이후 울산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역시 첫 상대 인하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각본 없는 드라마와도 같았던, 2022 정기 연고전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정기 연고전(이하 정기전)을 위한 합숙에 들어간 연세대 선수들. 개인 재정비 시간과 함께 유신고등학교, 프로구단 2군팀 등 강팀들과 연습 경기를 치르며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10월 28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추워진 날씨를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따뜻한 햇살이 양교 야구부를 반긴 잠실야구장이었다.

​뚜껑이 열리기 전 많은 이들이 고려대의 승리를 점찍었다. 경기 전, 고려대학교 학보 '고대신문'이 내놓은 전력 분석 글에서도 인터뷰에 참여한 외부 전문가들 대부분 '고대 우세' 쪽으로 입을 모았다. 단기전에서는 아무래도 타선보다 확실한 투수진을 보유한 쪽이 실패의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8-2 연세대 승리, 그것도 0-2로 끌려가던 스코어에서 이뤄낸 기분 좋은 역전승이었다. 시스붐바가 이날 경기 승리의 여신을 푸른 물결로 향하게 한 승부처 세 곳을 뽑아봤다.

Chap.1 중요했던 구원투수의 첫 등판 이닝, 실점 막은 포수 김세훈(스포츠응용산업학과 19)의 집중력

정기전 선발투수로 올해 비정기 연고전에서 7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던 이승훈(체육교육학과 20, 이하 체교)이 낙점됐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제구 난조를 보이던 그, 결국 2회를 끝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분위기가 더 넘어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 병살 유도로 제 페이스를 찾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조성현 감독은 미리부터 몸을 푼 조강희(스포츠응용산업학과 19, 이하 스응산)를 빠르게 3회에 올렸다. 이승훈이 고전할 시 점수 차가 더 벌어지긴 전 빠른 템포에 마운드 교체를 가져가는 조성현 감독의 플랜B가 실행된 상황이었다.

​롱릴리프로서 막중한 임무를 맡은 조강희, 그러나 2사 3루 위기에서 0-2 유리한 카운트를 잡아놓고 3구째 던진 공이 김응주(고려대 20)의 종아리 뒤로 향했다. 순간 모두가 완전히 빠지는 공임을 직감한 상황. 그러나 포수 김세훈이 순간적으로 몸을 던졌다. “2대0 경기 초반인 상황에서 점수가 더 벌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주자가 3루에 있어서 더 집중했어요.” 연세대 주전 포수이자 올해 주장으로서 팀을 이끈 김세훈은 그렇게 0-3이 될 뻔한 소중한 점수를 지켰다. 그리고 조강희는 실점 없이 첫 이닝을 마무리했다. 올해 여러 대회를 치르며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마다 센스있는 플레이로 역전의 물꼬를 터줬던 김세훈은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도 그 진가를 드러내 보였다. 3회 말 나온 그의 포구 하나가 이날 경기 조강희에게도, 연세대에게도,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음은 틀림이 없다.

Chap.2 승부는 다시 원점, 5회 초 나온 고승완(스응산 20)의 2-2 동점 적시타

4회 말까지 연세대는 잔루 4개, 고려대는 5개였다. 결정적인 순간 능력을 발휘한 투수들 덕에 양팀은 좀처럼 득점권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경기 중반을 넘어선 시점, 선두타자 김세훈부터 시작한 연세대가 따라갈 기회를 잡았다. “클리닝 타임이 지나가기 전에 한 점이라도 따라붙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컨디션이 좋아서 어떻게든 출루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김세훈은 볼넷을 골라 나갔고, 후속타자 이동준(스응산 21)의 희생번트로 주자 2루, 이후 소위 '야구가 좀 되는 날'이었던 고경표(스응산 20)가 행운의 내야 안타를 때려내면서 1사 1, 3루가 됐다.

​기회를 이어 받은 건 이전 타석 안타가 있던 김택우(스응산 19)였다. “출루만 되면 점수가 날 것 같은 분위기라 출루에 목적을 두고 타석에 임했습니다. 스트라이크가 안 들어와서 아쉬웠어요. 제가 쳐서 영웅 되려고 했는데." 결과는 볼넷. 김택우는 한껏 달아 오른 더그아웃을 향해 세리머니를 펼친 뒤 1루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만루 기회, 유독 서울 경기 때 강했던 고승완이 운명처럼 타석에 들어섰다. 1구 하이패스트볼은 빗맞으며 파울, 그러나 2구째 거의 같은 코스로 들어오는 공은 놓치지 않았다. 고승완의 큼지막한 타구는 우중간을 갈랐고 점수는 순식간에 2-2 동점이 됐다. “직구를 노렸어요.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는 공은 절대 놓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안타 쳤을 때 이 경기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고승완의 동점 적시타 이후 후속타자 김진형(스응산 21)이 꼭 필요했던 희생 플라이 타점까지 더해주며, 경기 중반 연세대가 3-2 리드를 잡았다.

Chap.3 접전 상황에서 나온 도망가는 점수, 그 주인공은 올해 단 21타석 출장에 그쳤던 이동준(스응산 21)이었다.

분위기는 넘어왔고, 아쉬운 실책성 플레이로 3-2 역전까지 허용한 고려대는 5회 말 잡은 득점권 기회마저 살리지 못했다. 6회 초, 다시 공격에나선 연세대는 신효수(스응산 20)의 내야안타 이후 번트 모션을 취하던 두정민(스응산 22)까지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다음 타자 김세훈을 상대하기 앞서, 고려대 길홍규 감독이 마운드에 올랐다. 선발투수 김유성(고려대 21)의 투구 수가 100개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교체를 예상하고 마운드를 향하던 석상호(고려대 19)는 다시 더그아웃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무사 1, 2루 위기, 길홍규 감독은 그대로 김유성에게 마운드를 맡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아쉬운 선택이었다. 번트 타구에 3루로 공을 뿌린 포수 오도은(고려대 20)의 선택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연세대가 무사 만루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고려대로서는 아쉬운 선택들이 나은 최악의 상황, 반면 연세대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최고의 찬스였다. 

그리고 직전 타석 삼진으로 물러났던 이동준이 이번엔 다른 결과로 팀에 도망가는 점수를 선물했다. “제 타석이 됐을 때 '이건 기회다' 생각했어요. 0-2 카운트에서 유인구가 올 것 같아서 높게 보고 컨택하려고 했고, 2-2에서 본능적으로 변화구 던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동준은 빠른 공 커트 이후 높은 코스로 들어오는 공을 놓치지 않았다. 올해 단 16타수 3안타에 그쳤던 그가, 정기전 타이트한 상황에서 도망가는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주인공이 된 것이다. 고려대로서는 투수의 백업 플레이 미스로 내준 두 번째 실점이 더욱 뼈아팠다. 그리고 8-2 스코어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분위기는 완전히 연세대의 것이었다.

Last chap. 2022 정기전이 남긴 것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승리를 거둔 2022 정기전에서, 연세대는 그 말을 증명함과 동시에 반증해 보였다. 올해 대학야구 최상위권의 마운드를 자랑하던 고려대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번 경기에서도 안정적인 마운드 운영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2023 신인드래프트 상위 라운드에 지명된 김유성은 물론 석상호와 이석제(고려대 19)까지, 프로의 문을 통과한 투수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세대 타자들의 집념으로 만들어낸 플레이들이 마운드 위 김유성을 흔들었고, 결국 공략에까지 성공하며 경기는 다른 국면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이미 분위기가 넘어온 상황에서 석상호 투입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연세대 타자들의 타석에서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출루 이후 펼치는 기동력 있는 야구가 세심한 작전으로 무장한 고려대의 야구를 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STN SPORTS의 객원 해설위원으로 이 경기를 중계한 전 야구선수 백승훈은 “연세대는 김택우, 고승완 같은 선수들의 플레이 센스가 돋보였고, 고려대는 미스 플레이가 나왔는데 원래 큰 게임에선 이런 작은 실수들이 중요해요. 결국 실점으로 연결된 베이스커버, 그리고 포수 백업을 안 간 게 거기서부터 승부가 넘어온 거라고 봐요. 연세대 선수들의 집중력, 그리고 경기 플레이하는 센스는 감독이 알려준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여기에 조강희까지, 이런 부분들로 연세대가 승리할 수 있었다...” 라며 경기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이 경기의 수훈 선수 한 명을 뽑으라면 단연 조강희다. 특히 3회와 4회, 마지막 타자를 스탠딩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은 가히 이날 경기의 명장면이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송곳 제구를 선보인 조강희는 8회까지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2022 정기전 승리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김택우 역시 공수 양면에서 빛났다. 2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한 그는 8회 말 2사 1, 2루 위기, 유격수 옆으로 빠지는 안타성 코스를 미끄러지듯 잡아내 조강희의 무실점 피칭을 도왔다. 경기 말미 나온 그의 호수비는 조강희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냄과 동시에 연세대 승의 쐐기를 박는 화룡점정이었다. 그리고 9회, 마무리로 등판한 조성민(체교 20)이 삼자범퇴로 이닝을 정리하면서, 연세대가 대망의 2022 정기전 승전보를 울렸다. 이승훈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조강희의 호투가 없었다면 이날 경기 승리의 여신이 연세대 편이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야구는 정말 투수놀음이라는 게 맞는 것 같다.

​한편 제 피칭을 하지 못하고 내려갔던 선수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내년 조강희의 에이스 자리를 이어받아 활약할 이승훈은 이번 정기전으로 큰 경기의 중압감을 몸소 느꼈다. 처음 경험한 정기전 무대, 올 가을에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부담감을 최고의 피칭으로 승화한 조강희의 투구를 지켜본 그가, 내년 정기전에서는 보다 강해진 모습으로 관중 앞에 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정기전은 올해 몇 경기 출장하지 않았던 두정민(스응산 22)과 이동준의 존재감, 그리고 내년 새로운 주장으로서 연세대 야구부를 이끌 고경표(스응산 20)의 만점 활약까지 더해져 그 내용까지도 의미있었다. 마지막으로 2022 정기전의 한 줄 요약이다. ‘임인년 붉은 호랑이는 색을 잃었고, 독수리는 날아올랐다. 그것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찬란하게.’

정기 연고전을 끝으로 2022 야구부는 막을 내리지만, 선수들과 코치진, 그리고 연세대 야구부를 위해 애써준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1년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추억은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각본 없는 스포츠, 그 ‘놓을 수 없는’ 야구의 매력을 몸소 증명해 보인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스붐바는 앞으로도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매체이자, 또 팬으로서 그 여정을 함께할 것을 약속하며 2022년의 마지막 <인사이드 야구>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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