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76년 평생을 사랑해도 부족한 노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을 담은 영화로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울림으로 다가왔었지요.

그렇습니다. 부부의 연을 맺고 세월이 지나면 새삼스러워서, 쑥스러워서 혹은 너무나 덤덤해져서 사랑한다는 말이 갈수록 줄어들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계속할수록, 표현할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요? 그 표현이 세월 속에 쌓이고 쌓여 가장 가까운 사람을 지켜주는 힘이 되니까요.

봄이 그려지는가 싶더니 여름이 지나가고, 산마다 단풍잎 물들이는 가을이 왔나 싶더니, 겨울이 머물러 있는 이 마을엔 달과 별들도 부러워한다는 금실 좋은 노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할아버지의 등 뒤엔 지게가 아닌 할머니가 업혀져 있네요 “임자, 밖에 나오니 춥지 않아?” “영감 등이 따뜻하니까 춥지 않네요” 앞을 못 보는 할머니를 업고 다닌다는 할아버지는 “임자, 여기서 앉아 쉬고 있어, 밭에 씨 좀 뿌려놓고 올 테니까”

할아버지는 씨앗 한 움큼을 던져 놓고 할머니 한번 쳐다보는 것도 모자라 “초가삼간/ 집을 짓는/ 내 고향 정든 땅~!” 하며 구성진 노래까지 불러주고 있는 모습에 이젠 할머니까지 손뼉을 치며 따라 부르고 있는 게 부러웠는지, 날아가던 새들까지 장단을 맞추어주고 있는 걸 보는 할아버지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만 볼 수 있는 게 미안해!” 눈물 짓고 있는 할아버지는​ 봄처럼 푸른 새싹을 여름 햇살에 키워, ​가을을 닮은 곡식들로 행복을 줍던 날들을 뒤로한 채, 찬 서리 진 겨울 같은 아픔을 맞이하고 있는 어느 날, 고뿔이 심해 들린 읍내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소리에 할머니 몰래 진찰을 받고 나오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하얀 낮 달이 앉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걸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은 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산과 들로 다니며 행복을 줍고 있었지만,​ 갈수록​ 할머니를 업기에도, 휠체어를 밀기에도 ​힘에 부쳐가는 시간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만 있었습니다.

노 부부의 앞마당 빨랫줄에 매달려 놀고 있던 해님이 달님이 불러서 인지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임자! 됐어, 됐다고!” “읍에 갔다 오시더니 뭔 말이래요?” “그동안 고생했어.” 할머니에게 망막 기증을 해준다는 사람이 나섰다며, 봄을 만난 나비처럼 온 마당을 들 쑤시고 다니고 있는 할아버지의 애씀이 있어서 인지 시간이 흘러 할머니는 수술대에 누워 있습니다.

“임자! 수술 잘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 “그래요, 이제 나란히 손잡고 같이 걸어갑시다.” ‘이다음에 저승에서 만나면 꼭 그렇게 하자는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채, 돌아서는 할아버지가 떠나시면서 남기고 간 선물로 눈을 뜬 할머니는 펼쳐진 세상이 너무나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시더니 이내 할아버지를 찾습니다.

『임자! 이제 그 눈으로 오십 평생 못 본 세상 실컷 보고 천천히 오구려, 세상 구경 끝나고 나 있는 곳으로 올 땐 포근한 당신 등으로 날 업어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못다 한 이야기나 해주구려! 비록 멀어졌지만, 우린 함께 세상을 보고 있는 거라고!』

쓰인 편지를 읽고 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하늘 가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등 뒤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더 행복했다고.‘

먼 옛날 고조선 시대 백수 광부가 강을 건너다 죽자, 슬픔에 빠진 그의 아내는“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노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서글피 부르다 남편을 따라 강물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 공무도하가를 한 번 불러 볼까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無渡河)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었으니, (墮河而死)

장차 임을 어이할꼬. (將奈公何)』

6 남매 모두 키워 저 강 건너 도시로 보내고, 이제 천생 배필 할아버지랑 여생을 보내는데, 아∼ 임아! 당신까지 저 강을 건너 나를 떠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꼬. “3개월만 더 살아 준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좋겠소”

아∼ 임아! 할아버지 말대로 죽음이 자연의 섭리이면, 손잡고 함께 가면 얼마나 좋겠소. 그리 되지 않으면 먼저 저승에 가서 기다려요. 나 곧 갈 테니. 먼 옛날 공후인이 부른 ’공무도하가‘를 오늘 다시 부르네요.

그렇습니다. 사랑이란 내 것을, 몽땅 주어도 여한 없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집사람 정타원(正陀圓)이 몹시 아픕니다. 이제는 간단한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제 머리라도 바쳐 아내의 건강이 회복되면 여한 없겠네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2월 30일

덕 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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