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무리의 눈] 이언 보고스트의 『에일리언 현상학, 혹은 사물의 경험은 어떠한 것인가』를 읽고

게임학에서 철학으로의 도약

한 편의, 많은 인력이 오랫동안 시간과 자원을 들여 만든 AAA급 비디오게임 타이틀이 있다. 나는 TV와 콘솔기기에 전원을 넣고, 타이틀을 실행시킨 뒤 스크린에 펼쳐지는 광활한 세계 속을 헤매며 적과 맞서고 재료를 수집하며 다음 모험을 향해 나아간다.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은 기존 매체로 다 채워지지 않았던 새로운 총체적 경험들을 제공하며 게이머들의 관심을 모은다.

하지만 이런 서술은 언급한 기계들 사이 – 콘솔게임기, 소프트웨어, 텔레비전 – 의 모든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사례로 집에 사는 쥐 한 마리가 플레이스테이션의 전원 버튼을 눌러도 기계들은 똑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이루며, 화면에 (쥐로서는) 알 수 없는 영상과 피드백을 송출할 것이다. 관계와 상호작용은 여전히 유지되지만, 다만 인간이 추구했던 의도와 목적만이 사라질 뿐이다.

게임기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서 늘 당연하게 생략되는 부분은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라는 앞부분이다. ‘에일리언 현상학’에서 ‘에일리언’은 나 혹은 우리와 무관한, 근대 이래 주체라는 기준점을 중심으로 관찰되고 해석되어 왔던 수많은 존재들이 인간이라는 주체와 무관하게 스스로의 관계 속에서 의미 지어지는 존재들을 총칭한다. 매체라는 기능 수행을 빼고서라도 콘솔게임기는 일련의 신호를 특정 프로토콜에 맞춰 디스플레이 기기에 내보내고, 메모리에 기록된 소프트웨어의 절차에 따라 주고받는 값들을 연산하여 되먹인다. 이 모든 과정을 기저까지 파고들어가면 우리는 0과 1로 값을 표현하는 작은 존재들과, 각각의 존재 사이를 엮는 논리 회로의 구성까지도 관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언 보고스트의 '에일리언 현상학 혹은 사물의 경험은 어떠한 것인가' (표지=갈무리출판사)

어쩌면 보고스트를 포함한 이른바 객체지향 존재론 전반의 흐름은 칸트 이래 이어졌던, 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명제 너머를 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인간과 무관한 모든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의미 지어지는 존재를 뒤로 미뤄두었던 흐름과 달리 보고스트는 여기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비유주의를 제시하는데, 이는 인과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과학으로는 미처 다 포괄할 수 없는 관계들 – 이를테면 음식의 맛은 화학적 분해와 결합에 의해 전달되지만 이런 방식으로 ‘달콤함’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 까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보고스트는 우리의 인식과 서술이 결국 인간의 감각에 기반하기에 인간이라는 중심을 벗어나기 어려움을 고백하며(139), 지각이라는 범주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지각을 배제하는 사변적 비유를 통하는 방법만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각각의 객체는 객체 고유의 지각과 방식으로 주변과 상호작용하고 인식하며, 그 과정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혹은 인지가 불필요한 많은 것들이 소거될 것이다. 한 객체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따라서 어떤 의미에선 다른 객체에겐 불가능한 – 마치 칸트의 물자체처럼 – 일이 되고, 이에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사변적 비유라는 의미다.

과학의 방식과 다르다는 점은 이를 테면 최근 각광받는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미드저니나 CHATGPT 같은 알고리즘들은 과학적 방식으로 충분히 그 기능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난이도가 높다 하더라도) 설명할 수 있지만, 그를 통해 AI라는 객체 혹은 그를 구성하는 각각의 오브젝트가 어떤 경험을 축적하는지(경험을 축적한다는 말조차도 대단히 사변적 비유에 머무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를 살펴보게 만드는 단초로서의 역할은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간중심이라는 오래된 전제를 벗어날 때 확실히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질 것이지만, 동시에 인간중심을 벗어난 이해가 정말 이해인지, 혹은 그러한 이해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와 같은 많은 의문은 아직 쉽게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 또한 부정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수많은 비유들을 통한 접근은 객체지향 존재론에 관한 여러 다른 책들 중에서는 (정말 그들 중에서라는 한정하에) 꽤나 직관적이고 쉬운 편에 속한다.

‘에일리언 현상학’은 엄밀한 논지를 펼치기보다는 무거운 에세이의 형식을 빌어 다채로운 비유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데, 다루는 분야가 넓다 보니 도리어 비유가 이해를 막아서는 부분도 적지 않은 책이다. 책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도리어 누군가와 마치 선문답처럼, 언어를 활용하되 언어의 피안에 있는 무언가에 가 닿을 수 있다면 그 배는 버릴 수 있는 무언가처럼 오가는 사변적 비유를 통해서가 좀더 용이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완전한 이해라고 할 수 있는가?가 닿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지만 무엇이 가 닿음인지를 보여줄 수 없는, 스스로도 비유로 점철된 책은 혼자 읽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읽어나가는 방식을 더 요구한다.

* 글쓴이 이경혁은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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