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고장도 안 나고 둥글둥글 잘 굴러가면서 어느덧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복싱 현장에서 선수로 지도자로 복싱칼럼 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맞이하는 새해는 어느해 보다도 의미 있는 한해란 생각이 든다. 왜냐면 올해 필자가 환갑을 맞이하는 뜻깊은 한해이기 때문이다.

▶ KBC 검사부 차장에서 사업가로 변신, 최용만 회장

27살에 지도자로 입문 34년의 모진 세월의 풍파를 헤치면서 복싱판에서 살아남았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했다고 자문자답 (自問自答) 해본다. 계묘년 새해 이번주 연재되는 스포츠 산책 주인공은 성남시에서 월 호텔을 운영하는 최용만 회장이다.

그는 1992년 KBC(한국권투 위원회) 검사부 차장으로 입사해 1995년 미리노 프로모션 부장을 거쳐 현재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월(月) 호텔을 운영하는 건물주이다. 이런 그를 만나기 위해 모란역 인근에 위치한 월호텔로 지난해 연말 발걸음을 옮겼다. 1967년 전남 해남 출신의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성격을 겸비한 최용만은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사업가다. 

1992년 한국권투 위원회 검사부 차장 최용만(좌측)
1992년 한국권투 위원회 검사부 차장 최용만(좌측)

현 세태에서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이란 신조어들이 난무하다. 2017년 기준 사법고시도 폐지된 작금엔 빈부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흙수저로 태어나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을 실증(實證)한 그를 보면 복싱인의 한 사람으로 무척 자랑스럽다. 최용만 회장과 필자의 첫 인연은 1991년으로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SBS 창사 특집으로 은하수를 아시나요라는 복싱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 필자의 대뷔작 복싱 드라마

당시 필자가 소속된 88체육관에서 복싱을 수련한 텔런트 최재성이 복싱선수로 출연한 드라마였다. 1984년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하면서 주목을 받은 최재성은 청춘스타였다. 필자는 이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 최재성과 맞대결 KO패 당하는 역할이었다. 드라마에서 최재성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쓰러지자 이덕화 백일섭 김영란등 동료 텔런트 들이 환호성과 함께 손뼉을 치면서 상황이 종료되는 드라마였다.

1991년 12월 방송 촬영장에서 필자와 텔런트 최재성(우측).
1991년 12월 방송 촬영장에서 필자와 텔런트 최재성(우측).

방송 촬영이 끝나자 배우 최재성이 KO패 당한 필자를 위로(?)해 주기 위해 분위기 좋은 고급레스토랑으로 초대 함께 식사 를 했다. 그때 최재성은 좋아하는 선배 한 명을 식당으로 불러 식사를 했는데 그분이 바로 복싱계에서 사나이중에 사나이로 불리는 의협심 강한 박석규 선배였다. 그때 그 인연으로 박석규와 필자가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박석규의 동향 후배인 최용만을 알게 되었다.

▶ 독사 별명의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 박석규

여기서 잠깐 독사라는 닉 네임으로 활약한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을 지낸 박석규에 대해 알아보자. 1959년 12월 28일 전남 해남 출신의 박석규는 1978년 11월 원진 체육관 소속으로 프로에 대뷔한 파이터다. 격투기 챔피언 이효필과 동향의 친구인 박석규는 1979년 11월 78년 MBC 신인왕전에서 김득구를 꺽고 라이트급 신인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종실을 3회 KO로 잡고 주목을 받았다. 이후 고생근. 염동균. 이 이다노. 황복수.등 국내 정상급 복서들과 일합을 겨뤘던 43전의 베테랑 복서 일본의 요시다 슈조를 날카롭고 묵직한 강타로 상대의 몸통과 안면을 강타 10회 2분 41초 KO로 잡으며 정상급 복서로 발돋움한다.

성남 모란역 월호텔 최용만회장
성남 모란역 월호텔 최용만회장

탄력을 받은 박석규는 1982년 2월에는 33전 26승 (14KO) 7패를 기록한 극동 서부의 최규운을 10회 판정으로 잡아낸 경기는 압권(壓卷)이었다. 최규운은 동아체육관 박항을 잡아낸 복서였고 박항은 동양웰터급 챔피언에 오르는 박정호에게 신인 시절 KO패의 쓴맛을 안겨준 복서였다. 박석규 복싱의 하이라이트는 1983년 1월 7전 전 KO승을 기록한 최상우와 벌인 라이벌전 경기다. 이대결 에서 박석규는 세 차례나 다운을 당하며 패배 일보 직전에서 10회 극적인 역전 KO승을 연출하면서 독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9월 최상우와 한국 라이트급 타이틀을 걸고 벌인 재대결에서 4회 KO로 꺽고 한국 라이트급 정상에 오른 그는 29전 20승 (12KO) 3무 6패를 기록한 복서였다.

이런 이력을 지닌 박석규와 친형제처럼 지낸 최용만은 구천서 한국 권투 위원회 (KBC) 회장 재직시 사무총장으로 군림한 전 WBC 슈퍼 밴텀급 챔피언 염동균 사단의 핵심 멤버 (김영덕 박석규 채승병 최용철 최용만)중 막내였다. 3년간 근무한 한국권투 위원회 사무직을 접고 1995년 미리노 프로모션 사장으로 취임한 염동균 챔프와 동행 복싱계에 컴백 흥행의 마술사로 불린 염동균 챔프가 주최한 프로 복싱경기에서 숨은 조력자(助力者)로 활약하였다.

▶ 복싱계를 떠나 사업을 시작한 최용만

1998년 최용만은 복싱판을 떠나 강남에서 개인사업을 시작 성실하게 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2001년 살고 있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아 남양주시 진접읍에 보증금 2억에 월세 3천만원에 모텔업을 시작한다. 

행사장에서 함께한 김준홍관장 백인철챔프 최용만회장(우측)
행사장에서 함께한 김준홍관장 백인철챔프 최용만회장(우측)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업무에 매진한 그는 2011년 현재 운영 하고있는 성남시 중원구 에 위치한 월 호텔을 보증금 8억에 월세 2천5백에 인수 영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2015년 7층 건물에 42개 룸(Room)을 보유한 월 호텔을 60억에 사들여 영업을 재개한다.

현재 이 호텔은 백억이 넘는 가치를 지닌 건물이다. 주말에 만석일 경우 5.6백 만원의 하루 매출을 올리는 등 탄탄하게 입지를 구축했다. 월 호텔 최용만 회장은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흐릿한 불씨처럼 존재하던 위태위태한 상황을 훨훨 타오르는 뜨거운 불길로 만들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흔들림 없는 몰입을 꼽았다. 그는 말한다. 인생 자체가 도박이다. 합리적이든 무모하든 도전하는 자에게 결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업에서 롱런(long run)하려면 롱런(long learn)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이 오래토록 배우면서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요즘같은 격동기에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근육운동보다 뇌(腦)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웃으며 말한다. 

최용만회장과 큰딸 최서연양의 요인 외고시절(우측).
최용만회장과 큰딸 최서연양의 요인 외고시절(우측).

물 위에 뜬 것은 언젠가 뒤집어 질때가 있고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라 할지라도 언젠가 멈출때가 있다는 고사(古事)처럼 지금 왕성하고 번창한 호텔사업이 언제가 사양길에 접어 들때를  대비해 초심을 잃지 않고 호텔을 운영한다고 말한다. 최 회장은 사업에 수차례 흔들리고 부침(浮沈)을 겪으며 쓰러졌어도 결코 포기 하지않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선 자기가 맡은 분야를 좋아하거나 사랑만 해선 성공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치고 또 미쳐는 끊임없는 열정을 지녀야 수많은 경쟁자를 밀어내고 앞설수 있다고 첨언(添言)한다.

 최용만 회장은 복싱 행정가 출신답게 현재도 음지에서 일하는 복서들을 소리소문없이 돕고 있다. 마음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는 자는 지금은 헛되이 보일지라도 인과응보(因果應報) 법칙에 의해 언젠가는 열매를 거두게 되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소설가 이외수 선생은 생전에 이런 글을 썼다. 지갑에 돈 마르는 것 걱정하는 사람 많아도 가슴에 정(情)이 마르는 것 걱정하는 사람 드물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인생은 삭막해진다.

베푼다는 것은 가슴속의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다. 사막처럼 황폐해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는 사람은 특별한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마음 자세를 갖고 사는 사람이다. 두 딸의 아버지인 최용만 회장은 자식 농사도 풍년이다. 현재 국내외 명문대학에 두 딸 이 재학 중이다. 특히 큰딸은 용인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일본 동경의 최상위권 명문 사립 종합대학인 게이오대 경제학자 4학년에 재학 중인 재원이다. 

이승선 월호텔 전무이사와 최용만회장(우측).
이승선 월호텔 전무이사와 최용만회장(우측).

현재 평촌에 살면서 호텔이 있는 성남으로 출퇴근하는 최 회장은 이승선 전무가 호텔을 총괄하면서 완전무결하게 일 처리를 해 자신은 할 일이 없다고 겸연쩍게 웃는다. 필자가 30년 이상 지켜본 최용만 회장은 가진 멋보다 풍기는 맛이 묻어난 사업가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엔 각계각층 인맥을 다양하게 형성하고 있다. 2007년 12월 25일 자양동 광진구민 체육회관에서 열린 헤리 아몰 (인도네시아)과 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 매취 에서 12회, 헤리 아몰에게 판정승을 거두고 2008년 1월 3일 안타깝게도 삶을 등진 최요삼 선수도 최용만 회장을 친형처럼 따르던 선수였다.

경기 전날 최요삼은 자택인 의정부시에서 최용만 회장이 모델을 운영하던 남양주에 찾아와 식사를 하고 경기를 하러 현장으로 떠났는데 세월이 흘러가도 자꾸만 그의 마지막 뒷모습이 떠오른다면서 눈씨울을 붉혔다. 그는 험난한 역경을 극복하고 굳건하게 입지를 구축했다. 마치 호숫가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호수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도 수면 아래에서는 물에 뜨기위해 부지런히 발길질을 수없이 하고있는 것처럼 그도 성공의 저편 뒤안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삶과 처절하게 항전했다. 그는 말했다. 기회는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라고 역설한다

 우연한 영광은 없다. 그를 취재하면서 느낀 소회다. 단 카스터가 지은 정신력의 기적이란 책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생은 스릴 에 찬 모험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저항하면서 정신적인 마술의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복싱이나 우리네 인생의 성패는 마음가짐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유추해 볼수 있는 대목이다. 끝으로 신년에 즈음하여 스포츠 산책 열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 올리면서 새해에도 변함없는 연재를 약속드립니다.

성남시 모란역에 위치한 윌호텔 전경.
성남시 모란역에 위치한 윌호텔 전경.

조영섭기자는 복싱 전문기자로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현재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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