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프리존]이동근 기자=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판정이 법원에서 나옴에 따라 원·하청 관계에 큰 혼란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정용석 부장판사)는 12일,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전국택배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한 중노위의 재심 판정은 이 법원의 결론과 동일해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 간판 (사진=연합뉴스)
CJ대한통운 간판 (사진=연합뉴스)

택배기사들은 택배사 하청업체인 집배점(대리점)에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직이다. 이들로 구성된 택배노조는 2020년 3월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CJ대한통운이 이를 거부했다. 택배노조가 제기한 구제 신청 초심에서 지방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의 손을 들어줬으나 재심에서 중앙노동위는 판단을 뒤집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중앙노동위는 당시 "원·하청 등 간접고용 관계에서 원청 사용자가 하청 근로자의 노동 조건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에는 원청의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CJ대한통운은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2021년 7월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CJ대한통운은 "집배점 택배기사들과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아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동조합법 제81조 1항 3호는 사용자가 노조의 단체교섭을 이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정하는데, 여기서 사용자란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을 맺은 자'를 뜻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다. 이 판례대로라면 CJ대한통운을 사용자로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재판부는 그러나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기본적인 노동 조건에 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 역시 사용자로 봐야 한다며 종전 판례보다 기준을 넓게 해석했다.

이 같은 사용자 기준은 종전 대법원 판례에선 사용자의 '노조 조직 개입'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를 판단할 때 적용했는데, 이를 '단체교섭 거부' 사례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게 이번 판결의 취지다.

재판부는 "원사업주(집배점)에 비해 거래상 우월한 지위의 다른 사업주(택배사)가 원사업주 소속 근로자의 노무를 자신의 지배나 영향 아래 이용하는 계층적, 다면적 노무 제공 관계가 확산하고 있다"며 "원사업주가 근로조건의 일부에만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되는 문제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지배력이나 결정권이 없는 원사업주에게만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담시키면 근로조건 개선과 유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의 근로 3권이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법원 판단에 CJ대한통운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고, 경제단체들은 원·하청 관계에 큰 혼란이 예상된다며 우려하는 반응을 내놨다.

CJ대한통운은 12일 하청업체인 대리점에 노무를 제공하는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법원 판결에 대해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1심 판결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 연합도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대리점연합은 "이번 판결은 전국 2천여개 대리점의 경영권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자 택배 산업의 현실과 생태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하청 노조가 원청과 교섭을 통해 배송구역, 수수료율 등을 변경하게 되면 대리점과 택배기사 간 계약이 무력화되고 대리점 고유의 경영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경제단체들의 우려도 이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추광호 경제본부장은 "산업현장에서 법 해석을 둘러싼 혼란이 증가하고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 증가에 따른 갈등과 분쟁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나아가 우리 산업의 원·하청 생태계 붕괴로 이어져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이라며 "향후에는 산업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한 합리적 판단이 내려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공식 입장을 내지는 않았으나 아직 판결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라는 점에서 추이를 신중히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한상의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노사관계가 불안한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현장 혼란을 더 가중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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