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의 메시지버스] 윤석열 정권의 야만성 앞에선 나경원마저 불쌍하게 보여

자르려면 이상민을 잘랐어야

보스는 사건 당일 일부러 먼 곳에 가 있다. 알리바이 확보가 목적이다. 보스가 부재증명에 필요한 요란한 이벤트성 공개행보를 과시하는 동안 행동대원들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대로 희생자를 전광석화 같이 기습해 무자비한 복수를 가한다. 한바탕의 잔혹한 유혈극이 완료된 다음 보스는 마치 자기는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일상으로 복귀한다.

한때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더불어 한국영화의 양대 장르를 형성했던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한 범죄 느와르 영화의 전형적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이러한 상투적 스토리텔링이 극장 스크린을 벗어나 현실세계에서 바야흐로 펼쳐지고 있다. 심야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강남 유흥가를 무대로? 아니다. 양복 입은 중장년 신사들이 온갖 점잔을 빼며 근엄하게 앉아 중요한 나랏일을 다루는 용산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인 국힘의힘이 밤거리 조폭들이나 저지를 법한 집단린치와 보복테러의 배경 구실을 하며 공포의 악명을 떨쳐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영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정상외교를 이유로 아랍에미리트(UAE)로 출국하자 세간의 시선은 대통령 전용기의 비행경로를 따라 중동으로 모아지지 않았다. 대중의 이목은 용산의 대통령실 청사와 여의도의 국민의힘 중앙당사로 일제히 집중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요한 불출마 압박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입장을 굳힌 나경원 전 의원을 표적으로 윤 대통령의 측근들을 뜻하는 윤핵관들이 과연 어떠한 수법을 동원해 보복에 나설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나경원 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나경원 숙청은 정치력 실종 뿐 아니라 누구를 위한 당대표인가를 묻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도, 그의 심복들도 기존 공식에서 단 한 치도 이탈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전에 이준석에게 그랬던 것처럼 떼를 지어 나경원을 융단폭격했다.

용산 대통령실의 지시와 명령에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는 특정 정치인 한 명을 겨냥한 여권 수뇌부의 조직적 집단린치와 살벌한 보복테러가 자행될 여건과 분위기는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벌써 진즉에 충분히 조성해둔 터이다. 그는 나경원 전 의원을 대통령 직속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은 물론, 기후환경대사직에서까지 가차 없이 쫓아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29 핼로윈 참사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재신임을 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공공연히 밝힌 바 있다. 나경원의 잘못이 아무리 크기로서니 앞길 창창한 수많은 대한민국과 외국의 청년들을 졸지에 불귀의 객으로 만든 비극적 사건에 도의적·행정적 책임을 져야만 마땅할 이상민의 과오보다야 더하겠는가?

필자는 윤 대통령이 이미 스스로 사의를 표명한 나 전 의원을 그가 맡고 있던 비상근 정무직 직책들에서 느닷없이 아예 해임해 버린 조치는 윤핵관들에게 나경원을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조리돌림 하라는 취지로 윤석열 대통령이 쏘아올린 신호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경원, 난가 아줌마에서 난다르크로

이후 상황은 현재 국민들이 생생하게 목격하는 바와 똑같다. 아랍에미리트 국빈방문의 휘장 아래 숨어 알리바이를 마련한 윤 대통령이 탑승한 비행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하기 무섭게 친윤세력은 나경원을 정조준해 맹렬한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켜보는 국민들이 오히려 민망해질 지경으로 볼썽사나운 광경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윤핵관 또는 윤핵관 호소인으로 지칭한 여러 여당 정치인들에 의해 빚어지는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위세를 부려온 장제원 의원은 나경원을 제2의 유승민으로 비난하며 친박들의 유승민 찍어내기에 버금갈 친윤들의 나경원 찍어내기의 선봉에 섰다. 심지어 장제원은 윤석열을 절대로 거슬려서는 안 될 ‘유일한 지도자’로 칭송하기도 했다.

문제는 장제원이 그토록 열심히 윤석열을 치켜세우는 한편에서 장 의원의 친아들인 래퍼 노엘(본명 장용준)은 그의 음주운전과 경찰관 폭행 이력을 질타하는 또 다른 래퍼에게 전두환 시대였다면 지하실로 끌려갔을 거라는 상스러운 협박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장제원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혐오감만 더욱더 고조시켰다는 점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일종의 ‘미니 계엄령’을 선포했다. 정진석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당내 인사들은 제재당할 각오를 하라고 엄포를 놓으며, 국민의힘에서는 친윤과 비윤의 구분이 없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했다.

여기에서도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정진석이 친윤과 비윤의 대동단결을 강조하는 뒤편에서 장제원 계파의 계보원인 장예찬 청년재단이사장은 ‘윤석열 키드’를 소리 높여 자처했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우리나라 전래속담이 딱 어울리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영화 속 조폭들의 세계나 현실공간의 정치권이나 실제로 손에 피 묻히는 작업은 말단 행동대원들이 담당하기 마련이다. 이준석이 윤핵관조차 되지 못하는 윤해관 호소인으로 분류한 배현진 의원은 나경원에 대한 인신모독 성격이 농후한 인터넷 게시물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떡하니 공유하며, 이제는 정적을 해치우는 잔인무도한 연장질에서도 젠더, 즉 남녀의 벽이 사라졌음을 씁쓸하게 증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쯤 대통령 부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부하들이 골치 아픈 장애물들을 말끔하게 처리해줄 걸로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허나 윤 대통령이 단단히 착각한 부분이 있다.

나경원은 ‘난가 아줌마’라는 듣기에 거북한 별명을 갖고 있다. 나 전 의원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중요한 선거를 맞이해 소속 정당에서 유력한 후보자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그게 나인가?”하며 무턱대고 김칫국부터 마시고 본다는 의미다.

그런데 젊은 누리꾼들로부터 ‘난가 아줌마’로 놀림받아온 나경원이 제도권 정치 입문 20년 만에 ‘난다르크’로 화려하게 환골탈태를 당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득권 구태 정치인으로 손꼽혀온 나경원은 어떻게 해서 길 가다 로또 맞은 격으로 갑작스러운 환골탈태를 당하게 된 것일까? 한국사회의 주류 중의 주류로 평생 유복한 인생을 살아온 나 전 의원을 향해 동정여론이 일어날 정도로 윤석열 대통령과 그 부하들이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말아야 할 몹쓸 짓을 나경원에게 태연히 하고 있는 덕분이다.

정치권에서는 “지지율이 깡패”란 표현이 오래전부터 널리 인구에 회자돼왔다. 지지율 중에서 가장 무섭고 위력적 지지율이 민심의 연민이 선물해준 지지도이다. 윤석열 일행이 나 전 의원의 당대표 경선 입후보를 막겠다며 벌이는 짓들마다 나경원에 대한 동정여론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 역시 살다 살다 나경원을 응원하는 칼럼을 쓰게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나경원이 윤석열에게 종국에는 굴복할지, 아니면 윤석열 일행의 핍박과 집단 이지메를 끝내 극복하고 당대표 출마를 선언해 국민의힘의 당권을 극적으로 쥐게 될지는 작금의 시점에서 정확히 예단하기 어렵다.

관건은 이준석 숙청공작과 나경원 제거작전에서 명징하게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의 폭력성과 윤핵관 무리의 비열함이 변함없이 계속 이어진다면 민심은 나경원을 비롯한 그 어떤 기상천외한 카드를 수단으로 활용해서든 윤석열 정권을 기어이 단호하고 준엄하게 심판·응징하리란 것이다. 잠시 이기고 영원히 죽는 길, 윤석열 일행이 거침없이 어리석게 폭주하고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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