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칠레 대통령에 리카르도 라고스 당선

2008
서울 중앙 지방 법원, 북한 동조 혐의로 사형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 대해 47년 만에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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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사법 연수원, 판검사 임용자의 54%가 여성이라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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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대우자동차, 생산직 직원 2,794명 정리 해고 계획서를 노동부에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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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조선 좌초, 갈라파고스제도 오염 극심(2001)

2001년 오늘,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960km 떨어진 갈라파고스 해역에서 유조선이 좌초됐다.

이 사고로 원유 600여 톤이 유출됐다.

기름띠가 퍼진 면적이 1,200㎢에 이르렀다.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갈라파고스제도의 여러 희귀 동식물이 큰 피해를 입었다.

1997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 기자 회견에서 노동법 기습 처리 대국민 사과 및 국회 정상화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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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창원 지방 법원 문흥수 판사, 신한국당이 기습 처리한 노동법과 안기부법에 위헌 제청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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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문화공보부, 광주 민주화 운동 소재로 만든 영화 〈오, 꿈의 나라〉 제작진을 치안 본부에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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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국전을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개편

1977
미국방부, 1978년까지 주한 미군 철수·재배치 계획 없다고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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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대한 농구 협회, 〈박정희 장군배 쟁탈 동남아 여자 농구 대회〉의 세계 대회 승격 및 격년제 개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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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대한 상공 회의소, 서울 근로 소득자 66.8%가 적자 생활이라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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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박정희 대통령, 국영 텔레비전(KBS)에 광고 방송 없이 운영토록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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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체코슬로바키아 청년 분신자살(1969)

소련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으로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이 좌절된 1969년 오늘!

21살 체코슬로바키아 청년 장 팔라크가 소련의 내정간섭에 항의해 분신자살했다.

장 팔라크가 분신한 장소인 웬시슬로스 광장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공산당 제1서기장 두브체크는 1968년부터 민주화조치를 단행했지만 소련군의 침공으로 좌절됐다.

1967년 11월11일 오후 6시께, 다음날로 예정된 사토 에이사쿠 총리의 미국 방문을 저지하기 위해 데모대가 속속 모여들고 있었던 도쿄 도심 나카타초. 총리 관저 앞 사거리에서 한 노인이 가슴에 가솔린을 뿌리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화염이 살을 파고들었고 노인은 바닥에 쓰러졌다. 노인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 노인의 이름은 유이 주노신(由比忠之進).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에 태어났으니 사건 당시의 나이는 73살이다. 유이는 유서 등을 통해 분신자살의 이유를 밝혔다. 두 가지였다. 베트남 인민을 학살하는 미국에 반대하고 미국에 협력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항의하기 위해서가 첫 번째 이유였고, 미군의 베트남 폭격 기지였던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가 두 번째 이유였다.

그는 1920년대부터 에스페란토의 열렬한 신봉자이면서 활동가였다. 그는 1920년대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열린 정치 공간’의 틈새가 만들어낸 국제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였다. 전시에 만주의 일본 기업에서 이른바 ‘식민자’로 일했던 부끄러운 경험에 대한 성찰이 평화주의·민주주의·국제주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고하게 만들었고 이런 믿음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알베르 카뮈가 <반항하는 인간>에서 “오늘날 모든 행동은 직접이든 간접이든 모두 살인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듯이,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일본이 베트남 인민 학살에 가담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고, 그 현실에서 제국주의 시대 일본과 그 일본에 가담했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린 듯하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관방장관이 담화를 발표해 유이의 행동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민주주의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논의를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선거를 통해 비판하는 것에 있다. 어떤 형태이든 직접행동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분신이었을까? 유이 이전에 일본에서 분신자살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연이나 불륜, 개인적 원한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적 분신자살로는 유이가 일본에서 첫 번째다. 역시 1963년 베트남에서 일어난 승려들의 연이은 분신자살, 즉 소신공양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이때부터 분신은 숭고한 사회적 항의 수단으로 세계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1965년 앨리스 허즈라는 퀘이커 평화주의자 여성이 베트남전 반대를 내걸고 분신자살을 감행했고 이후 미국에서 8명이 허즈의 뒤를 이어 분신자살을 시도한다. 1969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얀 팔라흐라는 청년이 소련의 군사개입에 항의하기 위해 가솔린을 몸에 끼얹고 불을 붙였다.

일본에서도 정치적 분신자살 사건이 뒤를 잇는다. 1970년 10월6일 신주쿠 부근에 자리한 신사에서 한 청년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1945년에 태어나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재일조선인 2세였다. 1975년에는 빈민활동가 후나모토 슈지(船本洲治)가 오키나와의 가데나 미군기지 앞에서 분신자살을 감행했다. 적군파 활동가인 에모리 다카오(檜森孝雄)는 2002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분신자살을 했다. 정치적 우파로 분류되는 자위대 출신인 에토 고사부로(江藤小三郞)가 1969년에 분신자살한 사례는 매우 예외적이다. 이처럼 사회적 항의 수단으로서의 자살에도 우파와 좌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통에서 차용한 할복자살이 우파라면,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서 비롯된 분신자살은 인터내셔널리즘을 드러내는 자살 방법이다.

1957
조경규 국회 부의장, UN에 ‘휴전 협정 즉시 폐기’ 등 4개항 채택 제안

대한민국사 연표

3) 영암선 개통(1956)

1956년 오늘!

경북 영주와 강원도 철암을 잇는

영암선 철길이 완공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영암선 승구역에서 열린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영암선은 1,555m 이상의 고지대를 통과하는 철도다.

우리 나라 철도건설 사상 최대의 난공사로 3년 3개월이 걸렸다.

영암선의 개통으로 삼척지역 탄광개발과 태백산 일대의 천연자원 개발이 촉진됐다.

1949
김구 한국 독립당 위원장, 당 중앙 집행 위원회 개회사에서 남북 통일과 남북 협상을 희망

대한민국사 연표
1949
서울 시내 폐렴 만연, 매일 평균 3백여 명 사망

대한민국사 연표

1948
최초의 오페라 ‘춘희’(감독 임원식), 단성사에서 공연

대한민국사 연표
1948
조선 식산 은행, 한국 산업 은행으로 새로 발족

대한민국사 연표
1946
서울 덕수궁에서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 예비 회담 개최

대한민국사 연표
1946
한민당, 박헌영의 신탁 통치 찬성, 소련 속방 희망 발언에 배격 결의

대한민국사 연표

1) 미·소 공동위원회 예비회담(1946)

1946년 오늘!

한반도에서 신탁통치문제로 좌우세력이 대립하기 시작한 가운데 미-소 공동위원회 예비회담이 미 군정청에서 열렸다.

미군정 장관 아놀드 소장과 소련의 북조선 주둔사령관인 스티코프 중장이 각각 대표로 참석했다.

얼마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한반도 신탁통치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양국은 3.8선을 도 경계선으로 바꾸고 북한내 소련의 군장비를 감축하는 문제 등을 협의하고자 했다.

그러나 회담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미-소 공동위원회는 이듬해 8월 말 완전히 결렬된다.

1942
조선총독부, 태평양 전쟁 비용 조달 목적으로 철도 운임 30% 인상 공포(2.1. 시행)

근대사 연표
1934
김병로·여운형·이광수·장두진 등 20여 명, 조선 소작령 제정 촉진회 조직

근대사 연표

5) 아인슈타인 미국 천문대 방문(1931)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1931년 오늘,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윌슨 천문대를 방문했다.

당시 52살인 아인슈타인은 이 천문대의 거대한 광학망원경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30
서울 시내 여학생 1,200여 명, 총궐기 만세 시위 운동 전개. 남녀 학생 480여 명 체포됨

근대사 연표
1925
일본 도쿄 한국인들, 한글 인쇄를 위해 자본금 1만 원으로 동성사(同聲社) 설치

근대사 연표

4) 미국 금주법 시행(1920)

1920년 오늘!

미국에서 모든 종류의 술 제조를 금지하는 금주법이 발효됐다.

술을 제조하던 양조 시설과 술병들이 모두 파기됐다.

그러나 미국의 금주법은 단속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8년간 지속된 미국의 금주법!

미국의 애주가에겐 고통스런 기간이었지만 알 카포네 같은 마피아는 이때 밀주장사로 큰 돈을 벌었다.

1907
〈대한매일신보〉·〈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 고종 황제의 을사늑약 인허, 친서 부인 보도

근대사 연표
1881
[음]통리 기무 아문을 궐내에 두고 내아문(內衙門)이라 함

근대사 연표
1826
[음]내탕고의 물품을 내려 흉년으로 궁핍한 백성들의 진휼에 보탬

조선왕조실록
1774
[음]함흥에서 화재로 소실된 200여호에 집을 지어 주도록 함

조선왕조실록
1765
[음]도성 안의 떠돌이 거지들에게 쌀과 옷을 주게 함

조선왕조실록
1764
[음]예조 판서 서명응이 친경의변(親耕儀辨)을 올렸으나 받아들이지 않음

조선왕조실록
1764
[음]근무 성적이 높은 수령의 이름을 기록한 〈속대주첩(續代柱帖)〉을 만듦

조선왕조실록
1756
[음]사족 부녀의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를 쓰게 함

조선왕조실록
1732
[음]평안도 안릉현을 안주목으로 승격시켜 옛 이름을 회복함

조선왕조실록
1687
[음]전라도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52명이 죽음

조선왕조실록
1635
[음]해주와 수원에서 돈을 주도하도록 함

조선왕조실록
1610
[음]중국에서 화약의 재료인 염초(焰硝)를 수입하게 함

조선왕조실록
1600
[음]평양에 주둔하며 폐단을 일으키는 명나라 군에게 속히 출발하도록 독촉함

조선왕조실록
1584
[음]이조 판서 이이(율곡) 사망

조선왕조실록
1560
[음]전 홍문관 교리 김인후 죽음

조선왕조실록
1538
[음]흙비와 눈이 섞여 내림

조선왕조실록
1521
[음]직제학 서후가 노궁(弩弓)·극적궁(克敵弓)을 만듦

조선왕조실록
1492
[음]소 도살자의 가족을 외딴섬에 옮기게 함

조선왕조실록
1465
[음]원각사 종을 완성함

조선왕조실록
1450
[윤]의주의 읍성 및 행성을 고쳐 쌓음

조선왕조실록
1413
[음]경상도 거창에서 지진이 20차례 발생함

조선왕조실록
1407
[음]관리들의 녹과(祿科)를 개정함

조선왕조실록
1402
[음]돈과 곡식의 출납과 회계 등의 법을 정함

조선왕조실록
1298
[음]왕이 세자에게 양위한다는 교지를 내림

고려사
1160
[음]연등회를 열고 왕이 봉은사에 행차함

고려사
1108
[음]이자겸의 딸을 왕비로 맞이함

고려사
1056
[음]낡은 제기를 소각하고 땅에 묻게 함

고려사
1009
[음]강조가 반란을 일으킴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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