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토끼의 해인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누구나 자유롭게 색칠 해 나갈 수 있는 2023년의 깨끗한 캔바스를 공평하게 선물 받았다. (본문 중)

새로운 해가 다시 또 시작됐다. 시의 첫 줄은 신(神)이 준다는 말처럼 1월은 아직 흰색이니, 누구나 자유롭게 색칠해 나갈 수 있는 깨끗한 캔바스를 공평하게 선물 받았다. 이제 시작이니 하얀 바탕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하면 될 일이다. 

중국에서 64년을 해로한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나 이제 갈게…울지 마"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영면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평범한 말 속에 숨어 있는 뜻은 마치 삶 속에서 나누었던 모든 언어를 함축해 놓은듯한 느낌이다. 공감(共感)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같은 감정(感情)을 가지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일상적인 언어 속에 숨겨진 깊고도 가슴 저리는 마지막 인사를 들은 아내는 한없이 슬피 울었었겠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마음에 평화를 찾았으리라. 

코로나19로 모든 모임이 줄어들었다가 지난해 연말에 비로소 다시 송년회를 나가 보았다. 몸이 좀 아프시다던 한 선배가 지난날 후회되는 옛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대면서 나가시길래 부축해 드리자 “아, 삼십년이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갔어...”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귀가하셨다. 지나온 날들의 경험과 지식, 살아온 날들이 꿈만 같다던 그 말에 공감하는 것은 대개의 심사가 같기 때문일 것이다.

노익희 기자
노익희 기자

가까이 지내던 한 화백이 어느 갤러리에서 소박한 전시회를 한다고 해 가 보았다. 70세가 되신 그는 소년처럼 부끄러워 하면서 전시회 소식을 전하려 하자 극구 사양하면서 “이십 년 전의 반쪽도 안되는 실력의 작품”이라며 진심을 전했다. 내가 한 일이 부끄러워지고 초라해 보이는 나이가 완숙해지는 나이라던 옛말이 떠 올랐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술가면서 각종 직책을 두루 지냈던 사람의 겸손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었다.

아직도 활발하게 강의를 하고 활기와 파워를 지닌 한 사교육업계의 한 유명 강사는 알고 보니 팔순의 어른이었다. 고전에 관심이 있어 찾게 된 그곳에서 인문학을 교수하면서 헤어질 때 상대가 의아할 정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보았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와 태도에 궁금해진 필자가 옆 사람을 통해 나이를 알게 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태도를 바꾸지 않으셨다. 노랫말로만 듣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공감되었던 대목이다.

많은 이들이 닮고 싶어하는 기업가 GE의 창업자 잭 웰치는 그의 경영철학서에서 끝없는 도전과 용기를 강조했다. 무사안일주의와 보신주의를 철저히 타파하고 끊임없이 최고를 향해 혁신하고 변화를 선도하라던 가르침. 타성과 고정관념을 배격하고 선구자적 희생과 결단,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불의에 굴절되지 않고 소신을 견지하라던 가르침이 새롭게 느껴진다. 오히려 평범한 말로 감동을 주고,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툭 내 밷고 등을 보이던 선배의 말이, 예전의 반밖에 안된다던 저명하지만 겸손한 화가의 그 말이 더 공감이 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영하 20도, 격하게도 시원한 1월의 어느 날에 느끼는 공감되는 이야기들이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