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의 메시지버스] 당대표 강신업, 정의롭지는 않아도 공정하기는 하다

강신업의 출사표를 세밀하게 톺아본다

시작은 우스웠고 중간은 으스스하고 마지막은 으리으리했다. 강신업 변호사의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선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숙독한 후에 필자 도출한 주관적 인상평가이다.

강신업 변호사는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흔히 목격되는 여느 평범한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건희사랑'의 창립자이자 실질적 운영자이기도 하다. 김건희 여사는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다정한 표정과 자세로 촬영한 사진을 김 여사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강 변호사에게 직접 전송함으로써 강신업에 대한 남다른 신뢰와 연대감을 과시한 바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부인의 직통 전화번호를 땄다는 건 웬만한 현직 장관이나 집권당 소속 정치인의 권력 못잖은 막강한 영향력을 강신업이 확보했다는 뜻으로 곧바로 해석될 수가 있다.

나는 김기현 의원의 당대표 출마선언문을 읽지 않았다. 당대표 주자 김기현은 윤석열과 윤핵관의 집권여당 장악에 동원된 '아바타' 인형일 따름이다. 김기현이 전당대회 경선에 나오며 피력한 포부와 비전은 각종 국경일 행사에서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대통령 명의의 기념사처럼 공허하고 의미 없게 여겨졌다. 졸리고 지루했다.

안철수 의원의 당대표 출마선언문은 예나 지금이나 기조와 맥락이 변함없었다. 그가 현실정치에 공식적으로 입문한 지 10년이 경과했음에도 안철수에게 정치는 여전히 더럽고 열등하고 비생산적 일로 치부되고 있었다. 안철수가 발신한 메시지에 감동도, 울림도 없었던 까닭이다. 안철수의 말에서 박진감과 짜릿함이 느껴지는 유일한 경우는 오직 그가 탈당을 선언할 때뿐이다.

반면, 강신업의 출사표는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언제 터질지 부르는 분노와 결기가 출마선언문 곳곳에 매설돼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당 대표에 출마한 '건희사랑' 전 대표 강신업 변호사. 돌풍이 될 것인가? 미풍이 될 것인가? 정치판에 주몫을 받고 있다 . (자료=강신업변호사 SNS)
국민의힘 당 대표에 출마한 '건희사랑' 전 대표 강신업 변호사. 돌풍이 될 것인가? 미풍이 될 것인가? 정치판에 주목을 받고 있다 . (자료=강신업변호사 SNS)

물론 그 분노와 결기는 오롯이 강신업 혼자만의 마음가짐은 아닌 걸로 보인다. 윤석열의 용산 대통령실과 장제원의 국민의힘 당권파가 합작해 자행한 나경원 전 의원 집단린치 사태를 계기로 그 위세와 존재감이 지금의 여권 내부에서 더욱더 강력하고 완연해진 김건희 여사의 무서운 노여움과 맹렬한 권력의지로 읽는 이에게는 다가오기도 했다.

“사람의 삶은 초목과 다르고 동물이나 물고기의 그것과도 달라 이미 정해진 길이 없고 어떻게 배워 행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달리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으니, 때로 익혀 세상에 나가 배운 바를 실천한다면 이를 어찌 보람 있는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강신업 출사표의 도입부의 일부를 인용해봤다. 기존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유발하는 주장이었다. 단군 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하며 표방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 이념의 공공연한 반복이었던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부부의 정신적 멘토를 자처해온 천공(본명 이병철) 스승이 개설한 유튜브 방송 채널의 명칭이 하필이면 '홍익인간 인성교육'이다. 강신업의 출마선언문 문구를 최종적으로 다듬어준 인물이 천공일지도 모른다는 남우세스러운 생각이 자연스럽게 솟구칠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저는 웰빙정당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국민의힘을 ‘행동하는 정당’으로 바꾸고 유승민, 이준석 등 내부투쟁에만 몰두하는 내부총질러들을 모두 일소하여 국민의힘을 명실공히 윤석열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여당다운 여당’으로 탈바꿈시킬 것입니다”

명색이 집권여당의 당대표 출마선언문에 저토록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구절을 노골적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신기한 노릇이었다.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이 대목을 접했다면 노련하고 냉혹한 킬러로부터 살인예고장을 받은 기분에 잠깐이나마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모두 일소하겠다는 건 윤석열 대통령에게 줄을 선 윤핵관들과 윤핵관 호소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당내 인사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국민의힘으로부터 쫓아내겠다는 공개적 선전포고였다. 문파들과 개(혁의)딸들이 차례로 극성을 부려온 더불어민주당에서조차 당의 비주류들을 청소도 아닌 아예 일소를 해버리겠다고 태연하게 선언하는 친문 당대표 후보자나 친명계 최고위원 출마자는 아직까지는 없었다. 강신업의 출사표는 이준석 숙청과 나경원 제거에 뒤이어 국민의힘에 또다시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칠 것임을 예보했다.

“저 강신업과 함께 영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지 않으시겠습니까? 시대가 맡긴 사명, 정치혁명을 저 강신업과 함께 완성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오로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천명과 당원동지 여러분들의 선택을 기다릴 뿐입니다”

가히 으리으리함의 극치를 이루는 창대한 결론이었다. 그를 여당 당수로 만들어 정치혁명을 완수하는 게 천명 즉 하늘의 뜻이라니, 강신업이 과대망상증 환자인지, 혹은 프랑스 대혁명의 기린아이자 찬탈자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버금갈 위대한 야심가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윤 대통령 내외는 강신업에게 진 빚을 갚아야

그럼에도 필자가 강 변호사를 잠정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유는 강신업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선출되는 일이 정의롭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공정하기는 할 테기 때문이다. 강신업 변호사는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작금의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전이 불공정한 난투극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공정한 경선진행이 보장되지 않으면 경선불복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당이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분연히 경고했다.

강신업이 이와 같은 초조함과 위기감에 휩싸인 원인은 당 지도두가 1차 예선, 곧 컷오프를 통과하는 인원을 최소화할 방침임을 발표한 데 있다. 대통령 부부, 특히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정치적 약진과 권부 안에서의 입지 강화를 위해 그동안 온갖 힘들고 치사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아왔을 강신업을 토사구팽하려는 노골적 움직임이 강신업의 촉각에 포착된 셈이다.

이준석을 당대표직에서 강제로 중도에 하차시킨 결정적 구실로 작용한 이른바 성접대 사건이 요란하게 공론화한 건 전적으로 강신업의 공로였다. 나경원 전 의원이 당대표 출마 의사를 눈물을 삼키며 접은 데에는 강신업이 주도적으로 조직화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친윤석열 성향 극우보수 당원들의 문자폭탄이 적잖은 기여를 했다.

정용인 경향신문 기자의 심층분석 기사에 의거하자면 이번 나경원 항명파동에서 나경원 전 의원을 겨냥한 강경대응에는 여권에서 V1로 불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결심보다는, V2로 통용되는 김건희 여사의 의중이 더 크고 강하게 작동했다고 한다. 여태껏 펼쳐진 여러 정황들을 신중하게 감안하건대 강신업을 배제하려는 기류와 동향은 아무래도 V2 쪽이 아니라 V1 측에서 발원·형성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강신업이 자신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국민의힘이 결딴날 거라고 큰소리로 호통을 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자 배경이리라.

공자는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악명 높은 악당인 도척의 사례를 예로 들며 도둑질에도 그 나름의 도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윤곽과 실체가 뚜렷이 드러난 윤석열식 정치는 그 살벌함과 무지막지함에서 강남 유흥가의 영업권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조폭들 간의 세력 다툼을 연상시킨다.

허나 도둑질에 도(道)가 있으면 조폭스러운 짓들에도 역시나 도가 스며있기 마련이다.

강신업에게는 윤 대통령 정적들의 약점을 먼저 알아채는 성(誠)이 있었다. 앞장서 공격에 나서는 용(勇)이 있었다. 남들이 이미지 관리를 의식해 손 털고 일어날 때 최고 권력자의 적수들을 최후까지 물고 늘어지는 의(義)가 있었다. 누구를 우선적으로 사냥해야만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좋아할지를 분별하는 지(知)가 있었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눈엣가시들이 일망타진된 다음 차려진 잔칫상에 김기현과 안철수가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얌체처럼 나타나도 이를 기꺼이 용납하는 인(仁)이 있었다.

강신업 변호사가 국민의힘의 차기 당대표로 왜 최적임자인지 이쯤이면 충분히 소명됐을 것으로 필자는 믿는다. 대통령 윤석열에 집권당 당대표 강신업, 상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도통(道通)한 라인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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