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사이

여기 영혼을 감동을 준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이야기지요. ​한 청년이 길을 가다가 어느 노인과 마주쳤습니다. 청년은 혹시 자기를 기억하는지 물었지요. 그러나 노인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청년은 오래전 노인의 제자였고, 노인 덕분에 지금은 대학교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청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은 그때 있었던 일이 궁금했습니다. 청년은 학창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시절 자기는 반 친구의 새 시계를 훔쳤고, 시계를 잃어버린 학생은 선생님에게 시계를 찾아달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시계를 훔쳐 간 학생이 자진해 나와서 용서를 구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을 도둑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모든 학생을 일어나게 하고, 절대로 눈을 뜨지 말라고 당부한 후, 직접 각 학생의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 선생님은 시계를 찾았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계를 찾았으니 이제 눈을 떠도 좋다.”

“그 날 선생님은 제가 도둑이라는 걸 친구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저의 자존심을 지켜주셨지요. 그때 선생님은 어떤 훈계도 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

노인이 여전히 청년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자, 청년은 노인에게 “이 사건을 기억하시느냐?”고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일은 물론 기억이 나네. 그날 모든 학생의 주머니를 뒤져서 없어진 시계를 찾았지. 하지만 난 자네를 기억하지 못하네. 왜냐하면 나도 그때 눈을 감고 주머니를 뒤졌거든.”

청년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뭉클해진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으로 자신과 제자를 보호할 줄을 아셨던 선생님이셨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신성(信誠)이란 이런 것입니다.

원불교의 2대 종법사를 역임하신 정산(鼎山) 종사께서는 스승님께서 어떤 일을 시킬지라도 한마음으로 받드셨습니다. 저 역시 소태산 부처님과 정산 종사, 대산 종사 그리고 제 스승님의 말씀을 제 생명과 같이 받들 뿐, 단 한 번도 의심하거나 명을 어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재주가 늘고 힘이 생기면, 스승을 자기 잣대로 재고, 사사로운 마음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그러하면 법맥(法脈)이 끊어지고 큰 사람이 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야말로 스승을 의심하지 않고, 스승의 지도에 순응하며, 어떤 지시도 다 달게 받고 불평이 없으며, 스승에게 자기의 허물을 도무지 숨기거나 속이지 않으면, 그 제자가 능히 불조(佛祖)의 법기(法器)입니다.

이러한 정산 종사에 대해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내가 송규(宋奎)와 그 아우 송도성(宋道成)을 만난 후, 그들로 인하여 크게 걱정하여 본 일이 없었고, 무슨 일이나 내가 시켜서 아니 한 일과 두 번 시켜 본 일이 없었노라.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이 되고, 그들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 되었느니라.”라고 하며 법을 전하셨지요.

이 어찌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아름다운 표본이 아니겠습니까? 도가(道家에서는 공부 인의 신성(信誠)을 으뜸 가치로 삼습니다. 신(信)이 바로 법을 담는 그릇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럼 그 신성이란 4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스승에게 사량심(思量心)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스승에게 오직 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 스승의 꾸중에도 불평하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 스승에게 자신의 허물을 도무지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네 가지를 이행하지 못하면 스승에 대한 신심이 아닙니다. 도가(道家에서는 공부 인의 신성(信誠)을 으뜸 가치로 삼습니다. 신(信)이 바로 법을 담는 그릇이 되기 때문이지요. 법기란 금강산 같은 인품을 조성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금강산 같은 인품이란, 순실(純實)하고 순연(純然)하여 본래 면목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신성(信誠)과 의지(意志)를 변하지 아니하면 분명 훌륭한 인격을 이루고 인격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고, 스승의 법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의 정의(情誼)가 부자(父子)같이 무간 하여야 가르치고 배우는 데에 막힘이 없고, 충고와 권장을 주저하지 아니합니다. 그러한 뒤에야 윤기(倫氣)가 바로 통하고, 심법(心法)이 서로 건네어서, 공부와 사업에 위업(偉業) 달성할 수 있지요.

저는 머리가 나빠 다른 도반이나 동지처럼 뛰어나거나 민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지요. 그러나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한 후, 서원을 세우고, 스승의 가르침 대로 신앙과 수행에 일직 심으로 달려와 저같이 아둔한 사람도 안빈낙도(安貧樂道)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우리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런 신성을 세우고 영생을 일관하면 어떨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2월 13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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