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릴것 많아 시간 알뜰히 쓸것"
안부사절...페이스북에 담담히 밝혀

[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박서보 화백은 이렇게 담담히  밝혔다. 그것도 23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에서다. 마른 기침이 잦아 병원에 가신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박서보 화백
박서보 화백

“평생 담배를 물고 살았다.그러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서야 끊었다. 내 나이 아흔둘, 당장 죽어도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한다.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요즘 많이 걸으며 운동하는 것은 더 오래 살기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그리기 위한 것이다. 사는 것은 충분했는데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 그 시간만큼은 알뜰하게 살아보련다”

박 화백은 지인들에게 특별한 당부까지 했다.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연락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하지 마라. 내게는 이제 그 시간마저 아깝다. 그래도 말을 남기고 싶으면 문자를 넣어라. 문자가 공허한 사람들은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라. 쉬는 시간에 정성껏 읽어 보겠다”

박 화백은 오히려 주변의 걱정스런 모습을 일축했다.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이 들어 마른기침이 많아졌다 생각한 것에 폐암 판정을 받은 것 뿐이다. 종합병원을 학교 다니듯 했고, 온갖 검사를 다 받아보았다. 그저 뒤늦게 폐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늘 대비해도 이렇다. 얼마나 많은 의사를 거쳤던가. 의사를 탓할 일도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굳이 범인을 꼽자면 담배일 거다”

박 화백은 앞으로 페이스북으로 이렇게 소식을 간간히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간곡히 안부전화 하지 말라며,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했다.

‘박서보 사단’이라 칭해질 정도로 한국 화단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그가 지난 2010년 팔순 잔칫날 후배 작가들에게 보내는 당부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작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와 작품을 꿰뚫는 통찰력과 본능적 감각’이라고 생각해. 그것에 용암이 분출하는 듯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이 뒷받침된다면 세계 미술 반열에 우뚝 설 수 있다고 확신하지. 나는 이것들을 잃지 않으려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어.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남과 다르게 행동하며, 남과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자 애써왔지. 좋은 술이 오랜 숙성 과정을 거치듯이”

박 화백은 이날 친지들과 화업 동지들 앞에서 지나온 길을 잔잔히 회상하기도 했다.

“변변치 않은 삶이지만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어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내일을 계획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저는 늘 어제를 되돌아보면서 제 자신을 혹독하게 매질하곤 했습니다. 그런 세월 속에서 날아가는 새도 손을 뻗쳐 잡을 기세였던 내가 이제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박 화백은 이미 곁을 떠난 많은 이들을 되뇌이기도 했다.

“감성이 여려서 눈물 많았던 하인두 형도, 수려한 문장으로 날카로운 평문을 쓰던 이일 형도 옆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때때로 ‘인생 뭐해?’하고 전화를 걸면 ‘뭐야’하던 윤형근 형도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정박’하고 전화 걸면, ‘박박’하고 받아주던 다정다감한 정창섭 형도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서보, 잘 있었어? 엊그제 돌아왔어. 푹 쉬었다가 피로 풀리면 만나자’는 친교 54년의 김창열 형이 있어 삶의 위안을 받습니다”

지금은  김창열 화백도 떠났다.  박 화백은 점점 마음 터놓고 전화 할 사람이 없어져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림이 있어 버틸 수 있다고 토로했다.

분명 그도 이제 인생이 서산에 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후학들은 팔순 잔치때 그가 한 말을 믿는다.  

“현대 미술의 5대 요소인 SIMPLE, CLEAR, SHARP, VITALITY, RELIEF를 향한 제 그림은 아직도 갈 길이 먼데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저물라면 저물라지 뭐. 인공조명으로 밝힐 테니까”

병마도 차마 그의 붓을 꺾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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