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네트웍스의 뿌리 선경직물과 최종건 회장 기억돼야
"오늘날 온 나라에서 입는 것은 서양 직물이고 서양 물감을 들인 옷이며 온 나라에서 쓰는 것은 서양 물건입니다. 접견하는 사람도 서양 사람이고, 탐내어 침 흘리는 것도 서양의 기이하고 교묘한 것들입니다. 사는 것과 가까이하는 것과 지키는 일이 다 서양의 것이니 형체와 기질과 마음이 어찌 다 서양 것으로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고종실록> 고종 18년 윤7월 6일, 홍제학 등이 올린 척사 상소다.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이 되자 서양문물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특히 서양의 직물은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으로 옷감이 질기고 튼튼했다.
고급 서양 의복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대유행했고, 일반 평민들의 선망 대상이 됐다. 그 결과, 조선의 섬유 산업은 사양길로 접어 들었다. 서양 의복의 침투가 전통 산업의 쇠퇴를 앞당긴 셈이다.
일제 강점기가 되자 일본산 의류가 시장을 지배했다. 물산장려운동 등이 반짝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인간 생존의 기본 3요소인 의식주 중 '의(衣)'의 몰락은 조선 산업의 붕괴를 의미했다.
해방이 됐다. 이제는 미제 의류가 시장을 지배했다. 6.25전쟁으로 거의 모든 산업현장은 폐허가 됐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53년 SK네트웍스의 전신인 선경직물이 탄생했다. 선경직물의 시작은 6.25 전쟁의 폐허로 침체돼 있는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그룹 지주회사인 SK네트웍스의 전신이었던 선경직물은, 최종건 창업회장이 수원에서 폭격으로 불타버린 헌 직기 20대를 정비해 빛날 '鮮', 클 '京' 의 이름으로 출범했다.
당시는 온 국민이 못먹고, 못입던 시절이다. 미군부대에서 빼온 미제 군복이라도 얻어 입으면 행복했었다.
하지만 선경직물은 한국 섬유산업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만들었다.
마침내 선경직물에서 파생된 선경화학은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성공해 한국 섬유산업사를 새로 썼다.
최종건 회장의 분투는 지난 1953년부터 지금까지 70년간 언제나 고객과 함께하는 기업으로 우리 곁에 있는 SK네트웍스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SK도 그 당시 대한민국재건의 현장에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기업으로 함께해 온 모습과 맥락을 같이 해왔다고 자부한다.
이제 K-섬유는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구한말 서양의복에 밀려 자립기반도 없던 섬유산업을 의복의 독립을 실현시켰던 선경직물이 기억돼야 할 이유기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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