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의 메시지버스] 다른 인물이 당 대표가 되면 자신의 검찰기반이 무너질까 두려워 하는 것

원인은 이승만이 아닌 이기붕이었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을 끝장낸 1960년 4·19 민주혁명의 도화선은 직전 달인 3월에 전국적 규모로 자행된 3·15 부정선거였다.

집권당인 자유당이 사상 최악의 관권 선거와 금권 선거를 불사하면서까지 지키려던 자리는 야당의 유력 후보 조병옥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이승만이 사실상의 부전승을 거두게 된 대통령직이 아니었다. 국회의장 이기붕이 출마한 부통령 직위였다. 민주당 소속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되어 고령의 이승만의 유고시에 대통령 권력을 이어받을지도 모른다는 집권세력 수뇌부의 초조함과 불안감이 자유당을 희대의 정치적 자살극으로 몰아갔다.

민주당 정치인 장면이 정권을 잡으면 자유당을 겨냥한 대대적 정치보복에 나서리라는 당시 집권세력의 공포와 두려움은 머잖아 근거 없는 기우임이 판명됐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의원내각제 헌법이 잠시나마 채택·실시된 제2공화국에서 국무총리에 선출된 장면은 박정희 소장이 주동하는 5·16 군사 쿠데타가 발발하자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대응조치를 전연 취하지 못한 채 제 한몸 건사하기에 급급했다. 장면이 과감한 적폐청산에 착수했을 정도의 당차고 용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60만 국군 가운데 한 줌도 안 되는 어중이떠중이 정치군인들이 가담·참여한 어설픈 역모에 그토록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으리라.

무책임하고 유약하기로는 장면 뿐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대통령 윤보선은 반란 진압에 긴요하고 필수적인 군병력 동원을 노골적으로 반대·방해함으로써 박정희의 18년에 걸친 1인 장기독재 체제에 결과적으로 앞장서 길을 터줬다. 윤보선 또한 민주당 식구였음은 물론이다. 샌님들과 도련님들 집합체로 물러터질 대로 물러터진 그즈음의 민주당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대평가가 자유당을 부정선거라는, 죽음보다도 더 치명적인 유혹으로 내몰았던 셈이다.

나는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어떨지 몰라도 나경원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은 윤석열을 엄청 무서워하고 있다고 여태껏 생각해왔다. 한데 필자의 판단은 어쩌면 심각한 오판이었을 수도 있다. 편집증적 공포심에 정작 사로잡힌 당사자는 안철수도 아니고, 나경원도 아닌 윤석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친윤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당대표 후보인 김기현 전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총선 공천개입' 가능성 질의에 "대통령 의견도 들어야 한다. 대통령 의견을 무시하고 그러면 공천을 진행할 건가"라고 답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친윤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당대표 후보인 김기현 전 원내대표. 윤석열 대통령의 적극적인 김기현 후보 지지는 다른 사람이 당 대표가 되면 자신의 검찰기반이 무너질까 두려워 하는 것에서 나온 것인 아닌지? (사진=연합뉴스)

당대표직에서 무도하게 숙청된 이준석의 후임자를 뽑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반칙과 파행의 연속이었다. 몰상식과 후안무치의 향연이었다. 반칙과 파행의 몸통에는, 몰상식과 후안무치함의 이면에는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똬리를 틀고 있음은 지금은 하나의 기정사실처럼 통용되는 상태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경선 관여 사태는 이제 근본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집권여당의 차기 당대표 선거에 용산 대통령실이 공직선거법 제57조 ⑥항에 명시된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당내경선에서 경선운동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공공연히 어겨가면서까지 조직적 차원에서 개입해왔음을 입증하는 구체적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연유에서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포괄적’을 유달리 선호해왔다. 이를테면 박영수 특검팀의 일원이었던 시절의 검사 윤석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죄로 최순실(본명 최서원) 씨와 함께 묶어 차가운 감옥으로 직배송했다. 그는 박근혜가 새누리당의 총선 공천 작업에 끼어든 일을 포괄적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엮어 이미 이런저런 죄목들에 연루되어 가뜩이나 중벌이 선고된 박 전 대통령에게 2년의 형량을 추가로 적립시키기도 했다.

윤석열의 괴이쩍은 안철수 울렁증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는 포괄이 마침내 윤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김대기 대통령실장이 나경원 전 의원을 정면으로 겨냥해 저격한 사건은 포괄적 공직선거법 위반의 전형적 사례였다. 아니, 이건 굳이 포괄도 아니고, 시쳇말로 그냥 직빵으로 선거법 위반일 수가 있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단순한 사적 친분의 지인 관계에 불과했지만, 윤석열과 김대기는 동일한 관공서 건물 안에서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로 근무하는 명명백백한 공식적 직무 관계로 연결된 탓이다.

대통령실의 체계적이고 위법한 여당 전당대회 개입 책동은 윤석열 대통령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을 용산 대통령실 근무자들의 작태에서 압권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몇몇 행정관들은 안철수 의원을 비방하고 음해하는 불순한 무리를 단체 카톡방에 일부러 초대하거나, 또는 김기현 의원을 지지해 달라고 당원들을 자신의 육성으로 독려했다. 대통령실에 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근무하는 인간들의 범죄적 행위를 윤석열 대통령이 몰랐다면 지독한 무능이다. 알았다면 윤 대통령은 빼도 박도 못하는 공범 처지가 되고 만다.

다시 자유당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를 몸소 지시했다는 뚜렷한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역사와 후세는 그를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사악하고 부도덕한 부정선거의 최종적 책임자로 주저 없이 지목·평가해왔다. 부정선거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한 고위급 실무자들 거의 전부에게 이승만이 임명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들이 벌인 학교폭력 사건으로 인해 사무실 의자에 제대로 한번 앉아보지도 못하고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불명예 퇴진한 정순신 전 검사 유형의 내로라하는 법률 기술자이다. 정순신이 그랬듯, 윤 대통령도 평범한 일반 국민은 꿈도 못꿀 현란하고 교묘한 법리를 구사하며, 공직선거법과 관련된 불법 행위의 책임추궁으로부터 벗어나려 시도할 게다.

‘율사 윤석열’이 아직 깨닫지 못한 진리가 있다. 정치는 무한책임을 지는 직업이란 사실이다. 용산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공직자들의 크고 작은 불법행위의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마치 깔때기의 원뿔 끝을 향해가는 물처럼 종국에는 흘러갈 것이다. 그러한 소행들에는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연이은 대구경북 나들이도 포함될지 모른다. 영부인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도, 포항 죽도시장 탐문도 포괄적 맥락으로 해석하면 김기현을 당대표로 만들려는 목적의 의도적 지원 유세였다.

김기현 외의 주자가 당권을 쥐면 윤석열은 당에 어렵게 심은 검찰 출신 인사들이 죄다 쓸려나가리라고 두려워하는 기색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공포가 자기충족적(Self-Fulfilling) 예언으로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면 자유당 인물들은 흔적조차 없이 몽땅 잘려나갈 거라는 두려움이 이승만 정권을 재기 불능의 파멸적 몰락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알고 보면 덩치가 산만 한 사람들이 은근히 겁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중 한 명일 터이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