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 최정간(매월다암 원장 차 문화연구가)

[경남=뉴스프리존]김회경 기자= 지난 2월4일부터 13일까지 통영시민문화회관 대전시실에서 통영출신 진의장 화백의 ‘그림은 바다를 품고’란 주제로 전시회가 개최됐다.

해마다 소품 20여전을 가지고 자신의 예술세계와 지성을 낳아준 고향 통영분들께 보은의 전시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진의장 화백은 필자가 볼 때 전형적인 르네상스형 화가이자 문화인이다. 동아시아 문명권에서는 흔히들 생이지지(生而之知), 무불통지(無不通知)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현암 최정간(매월다암 원장 차문화연구가)./뉴스프리존DB
현암 최정간(매월다암 원장 차문화연구가)./뉴스프리존DB

그는 뼛속까지 통영인이다. 통영의 역사와 예술혼이 그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통영과 진의장의 사유세계와 예술세계는 등가적(等價的)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는 통영 세병관(조선수군총사령부) 아래서 태어나 7살 때 이중섭을 만났고 초∙중∙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대학은 미대를 지망하지 않고 서울법대로 갔다. 거기서 잠깐 미술 세계와 다른 길을 갔다.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의 간청을 이해하고 행정고시를 보고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게 된다. 

자신의 예술적 DNA와는 전혀 같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 1970년대 중반 경남 마산세무서에 근무하면서 마산의 예술가들과 교류를 하게 됐다.

이러한 계기로 마산 예총 회장이란 직책도 맡게됐다. 이때 가곡 선구자 작곡가 조두남 선생을 만나 그의 음악세계에 공명해 조선생을 위해 단 하루 전시회를 개최했다.

조두남 선생은 이 하루 전시회에 매우 감동했고, 한국전시회 역사상 새로운 기록도 쓰게 된다. 

2021년 진의장 화백 운심석면화랑 전시회(왼쪽부터 김용식:인문학당 당주. 진의장 화백, 권병현: 전 주중대사, 현암 최정간).(사진=현암 최정간)
2021년 진의장 화백 운심석면화랑 전시회(왼쪽부터 김용식:인문학당 당주. 진의장 화백, 권병현: 전 주중대사, 현암 최정간).(사진=현암 최정간)

마산시절 시인 이성관, 이광석, 작곡가 조두남, 안종배, 화가 최운등과 어울리면서 가고파의 고향 마산을 예향으로 만든 초석을 놓기도 했다.

1980년대는 서울로 상경해 국세청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샤갈이라고 불려진 내고 박생광 화백과 교류하면서 그로부터 엄청난 예술적 영감의 지도를 받게 됐다.

재불화가 백영수 화백, 서양화가 박고석, 하인두, 전상수 등등 많은 대가들과 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하게 된다.

이 당시 그림들은 주로 유화로 터치가 굵고 간결해 한국 서양화단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룹전과 프랑스 공모전을 통해 이미 한국서양화단의 중견작가로서 자리매김을 했다.

진의장 화백 작품.(사진=현암 최정간)
진의장 화백 작품.(사진=현암 최정간)

▶하동과의 인연

1986년 하동의 봄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벚꽃이 꽃대궐을 이룰 때 점심나절에 하동군 진교면 새미골 필자의 도방에 키가 크고 한눈에 보아도 대장부 같은 중년 신사가 찾아왔다. 

“현암 최정간씨가 누구죠?” 필자는 갑자기 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방(禮訪)한 분이라서 정중히 머리 숙여 인사를 드리면서 “소생입니다”라고 답을 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동서양의 철학, 예술, 역사 등을 주제로 해, 밤을 세워 먹걸리를 마시면서 담론을 했다. 진의장 화백은 서울의 도회지 생활이 실증이 나서 지라신 자락 산자수명한 하동을 일부러 지망해 내려왔던 것이다.

진의장 화백과 필자는 시골에서의 문화운동에 의기투합이 돼, 그 첫 사업으로 하동출신 요절 천재화가 김경 화백의 미술상을 제정해 하동 청소년들에게 예술가 지망의 희망을 줬다.

이어 김경 화백의 행적을 필자가 발굴해서 지역인사들에게 알리고 진의장 화백과 지역인사들이 동참해 하동군 진교 초입에 김경화백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김경화비를 건립했다.

이어 청소년의 심성을 순화하기 위해 시낭송회도 개최했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필자와 도방에서 철화로 도화(陶畵) 작업을 했다.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진의장 화백을 예방하러 필자의 도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들 예술인들과 밤 세워 나눈 문화예술에 관한 담론들은 아주 수준이 높았다. 이때 하동시절은 ‘아카데미아보자르’를 방불케하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진의장 화백 작품.(사진=현암 최정간)
진의장 화백 작품.(사진=현암 최정간)

▶양주팔괴(楊州八愧)를 능가하는 필력

진의장 화백은 하동에서의 3년 생활을 뒤로하고 고향 통영으로 귀향했다. 그는 통영을 문화예술의 도시로 부흥시키고자 민선 통영시장을 7년 동안 지냈다.

오늘날 통영이 전국적인 문화관광의 명소가 되기까지는 진의장 화백의 안목 높은 문화관광 시정의 기초 때문이다. 

진의장 화백의 회화세계의 변화는 70이 넘어서면서부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분출했다. 즉 완전 불계공졸(不計工拙) 도법자연(道法自然)의 경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통영의 쪽빛바다 색깔과 힘찬 묵선의 필력은 정말 청나라 말기 양주팔괴들의 필력을 능가하는 또 다른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단지 신문인화의 세계가 아닌 기운생동의 우아일심(宇我一心)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진의장 화백 작품.(사진=현암 최정간)
진의장 화백 작품.(사진=현암 최정간)

2021년 서울 운심석면(雲心石面)화랑 초대전에서 보여준 대작들은 서양화, 한국화의 경계를 통섭한 실로 거장다운 판타스틱한 추상세계를 펼쳐보였다.

그의 필력은 통영바다가 노래하고 춤을 추는 즉 묵무필가(墨舞筆歌)로 우리들을 초대했다. 붓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대작들은 이미 화선(畵仙)의 경지에 들어간 작품들이다. 

이번 통영 전시회도 날로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진의장 만의 독창적인 화법이 고향 통영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언젠가 통영의 맑은 햇살과 쪽빛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이 시대 붓과 색채의 마술사, 진의장 미술관이 소박한 모습으로 건립돼, 통영의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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