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력직이나 정규직 부재 

지난 3월 14일 관리소장의 갑질을 폭로하는 호소문을 남기고 숨진 경비원이 일했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앞에서 동월 20일 동료 경비원 70여명이 관리소장의 갑질 처벌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경비원 투신 사망사건이 일어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 걸려 있던 추모 현수막
사진: 경비원 투신 사망사건이 일어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 걸려 있던 추모 현수막

이 아파트에서 11년간 경비원으로 일한 박모씨는 “관리 책임자의 갑질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동료들에게 보낸뒤 아파트 9층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국민의 약 70%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거주하면서 전국의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는 2021년 말 처음으로 30만 명을 돌파했다. 앞으로도 아파트 건설과 함께 종사자 수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오피스텔이나 군소단지 종사자를 합하면 더 많아진다. 이들 ‘공동주택 관리종사자’ 중심부가 갑질의 원흉이라면, 피라미드 구조상 대표적 약자는 아파트 경비원들이다.  

지난 2020년 강북구 우이동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행·폭언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고 최희석씨 사망을 계기로 아파트 경비원 갑질 피해를 막기 위한 법안으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 구조적 속성 때문에 실효성이 제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바로 고용불안에서 갑질에 속수무책 무력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경비 일은 경력직이나 정규직이 없다. 매번 새롭게 신규 고용계약을 맺고 연장계약을 할 뿐이다. 민원이 자주 발생하거나 주민들이 동의해 주지 않으면 계약이 불가능하다. 

아파트에서 횡행하는 단기근로계약 관행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어 근로계약서를 보고도 사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통상 경비용역계약기간은 1~2년인데 근로계약기간을 3개월 등 단기로 설정하는 것은 경비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고용불안을 안겨준다. 이른바 쪼개기 계약이다.

3개월에서 6개월 미만 쪼개기 계약이 만연하고 있다. 이처럼, 단기 계약을 맺은 뒤 이를 반복 갱신하는 것을 말한다. 아파트 지역에 따라 3개월 미만 단기계약 비율이 절반 이상인 곳도 있다. 비상식적인 계약 방식은 점차 확산하는 추세이다.

아파트의 안전을 살피는 경비노동자가 자주 대체되거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면 그 피해는 입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인데, 퇴직금 등 경비를 아끼려고 어처구니없는 비인륜적 행태을 답습하고 있다.

▶ 지자체 ‘인권 조례 유명무실’ 

각 지자체가 공동주택에 대한 지원금을 산정할 때 평가 항목에 ‘단기근로계약 지양’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특히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지자체가 보호 조례를 제정하고 있으나 공동주택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아파트 경비원 처우 개선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비원 투신 사망사건이 일어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 걸려 있던 추모 현수막
사진: 관리자의 '갑질'을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이 일했던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앞에서 20일 동료 경비원들이 관리자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2022년 9월 기준 245개 광역·기초 지자체 중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방지하겠다며 전국 100여개 지자체가 아파트 노동자 인권 조례를 만들었음에도 절반가량은 구체적인 복안이 수반되지 않은 미봉책 선언적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지원사업을 하는 51개 지자체 중에서도 아파트 단지 측이 경비원 처우 개선에 나서도록 ‘고용지원금’ 유인책을 시행 중인 곳은 서울시, 부산 수영구, 충남 당진시, 충남 아산시 등 4곳에 불과했다. 서울 자치구 중 경비원 단기 계약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고용지원금을 주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지원 사업도 대체로 휴게실 개선 등 시설 지원에 국한돼 있으며 지자체별로 예산 편차도 들쭉날쭉 이다.

아울러 이들이 처한 환경은 여전히 양호한 편이 아니다. 공동주택 경비·청소 노동자의 열악한 휴식 공간 개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올 1월 12일, 고용노동부는 대학교 및 아파트의 청소·경비 근로자에 대한 휴게시설 설치 의무 이행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실태 조사는 지난해 8월 18일부터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됨에 따라 이뤄졌다. 고용노동부는 상대적으로 휴게 환경이 열악한 청소·경비 등 취약직종 근로자를 다수 고용하고 있는 대학교 및 아파트를 이번 점검 대상으로 삼았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휴게시설을 갖추는 경우 크기, 위치, 온도, 조명 등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설치·관리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 9월 19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279개 사업장(대학교 185곳, 아파트 94곳)에 대해 휴게시설 설치 여부 및 설치․관리 기준 여부를 조사했다. 점검 결과, 279개 사업장의 44.4%에 해당하는 124개소에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휴게시설 설치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중 12개 사업장(대학교 10곳, 아파트 2곳)의 일부 직종 또는 협력업체 근로자의 휴게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

▶ 얽히고설킨 ‘이해 관계’

아파트에는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입주자,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업체(관리사무소)가 있다. 

여기에는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2020년 고 이경숙 소장 피살사건 이후, ‘관리소장 부당간섭방지법’(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등)은 입주자대표회의 및 입주자등이 소장의 업무에 대한 부당한 간섭 또는 업무의 방해를 금지하는 규정이다. 

사진: 관리자의 '갑질'을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이 일했던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앞에서 17일 아파트노동자 서울공동사업단,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관계자 등이 추모 기자회견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올해 2월 11일, 시행 1년을 맞은 관리소장 부당간섭방지법은 관리소장에 대한 금지행위 유형을 구체화하고 구제 가능성을 넓히는 등 개정이 이뤄졌다. 

이 법은 부당간섭의 주체로 입주자대표회의 입주자등을 추가하고 △공동주택관리법 또는 관계 법령에 위반되는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하는 등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 △폭행, 협박 등 위력을 사용해 정당한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등을 하지 못하도록 부당간섭 금지행위 유형을 구체화해 규정하고 있다.

관리소장에 대해 구체화된 금지행위 유형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사실조사 의뢰를 할 수 있고, 금지행위에 대한 중단 요청이나 거부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아파트의 특성상 입주자대표회의가 있고, 관리업체도 대표들을 통해 선정되는 이해관계가 있어 업체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관리업체들에 따르면, 실제로 동대표 등이 본인들과 맞지 않는다며 부당하게 관리소장 교체를 회사에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관리업체 입장에서는 계약 유지를 위해 부당하더라도 동대표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관리소장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해임 요구 등을 막기 위한 제재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이처럼, 여전히 ‘입주민 등의 갑질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함께 관리소장의 갑질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이를 예방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이에 고용구조 개편 등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2017년 기준 1000세대 이상 대규모 단지 아파트 경비원 가운데 용역회사 고용이 87.5%, 위탁관리회사 고용이 10.0%인데 반해 입주자대표회의 직접 고용은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아파트 경비원은 실질적인 사용자인 입주자대표회의가 직접 고용하는 대신 위탁관리회사, 경비용역회사 등이 고용해 아파트에 배치하는 대표적인 간접고용 노동자여서 사용자의 책임이 불명확하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입주민들은 경비원을 근로자로서 정당하게 대우하고 정부는 임기응변식의 제도개선이 아닌 당당한 직업군으로서 경비원들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포용적 ‘윈윈 상생전략’을 실효성 있게 강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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