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러 종교에서 각각 자신의 교리가 진리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막상 어떤 것이, 진리냐 들어가 보면 거의 쉽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무엇인 가를 정확하게 알아보면 좋겠네요.

진리는 현실과 일치하는 사실이나 원리를 의미합니다. 즉, 진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간주(看做)됩니다. 하지만,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이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의 진리는 종교의 신앙, 신념, 교리, 윤리 등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종교에서의 진리는 종종 인간의 삶과 관련된 깊은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부 종교에서는 진리가 유일무이하며, 그 진리를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종교들은 종종 종교적 교리나 성서(聖書) 등을 통해 진리를 전달하며, 진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종교적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럼 기독교, 불교, 원불교에서의 진리관이 무엇인가요?

첫째, 기독교의 진리관입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구원에 대한 이해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해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제시합니다.

둘째, 불교의 진리 관입니다.

삶의 고통과 불안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변화와 무(無) 상태를 거듭하며, 인간의 고통과 불안은 이러한 변화와 무 상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진리관은 이러한 변화와 무 상태를 깨닫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비로소 삶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셋째, 원불교의 진리 관입니다.

원불교는 1916년 전남 영광 백수면 길용리 영산(靈山)에서 우주의 진리를 대각(大覺)하신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새 부처님이 창교(創敎)한 새로운 불교입니다. 원불교의 진리관은 일원상(一圓相)입니다.

일원은 우주 만유의 본원(本源)이며, 제불제성(諸佛諸聖)의 심인(心印)임을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옛날의 불교를 개혁한 새로운 불교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기존의 불교와는 차별화된 점이 있습니다.

넷째, 원산 나환정의 진리 오성(眞理五性)이 있습니다.

우리 덕화만발 카페 <원산 나환정 한문 공부 방>의 주인이신 원산 나환정(경주) 선생께서 수 년 간을 두고 진리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

진리의 다섯 가지 성질

1) 진리의 상대성입니다.

진리의 상대성이란 우주 만물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남과 여, 시작과 끝, 밝음과 어두움, 상과 하, 유(有)와 무(無),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선과 악 등 헤아릴 수 없는 상반된 성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2) 진리의 다양성입니다.

남자 중에도 여러 유형의 남자가 있고, 여성 중에도 여러 유형의 여성이 있습니다. 음식 맛도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고소한 맛 등이 있고, 또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수백 가지 맛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색깔, 나무의 종류, 물고기 종류, 종교의 종류, 사상의 차이, 직업의 종류 등등, 다양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3) 진리의 점진성(漸進性)입니다.

모든 것은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라 차츰 차츰 변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성격도 그렇고, 능력도 그렇고, 성공도 그렇고, 타락도 그렇고, 우주 만물이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차츰 차츰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4) 진리의 선택성입니다.

진리는 우리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 의지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음식도, 정치도, 종교도, 취미도, 특기도, 무엇 하나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택하도록 하였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로봇이나 기계 부품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 선택성은 좋은 점도 있지만 잘못 선택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무서운 점입니다.

5) 진리의 절대성입니다.

절대성은 진리 그 자체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도전할 수 없고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 이 진리의 절대 성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경지입니다. 다만 성자들은 이 자리를 짐작하고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지만, 성자 역시 앞에서 말한 진리의 네 가지 성질에 순응해야만 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러한 절대성을 가진 진리가 이 우주에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하는 문제도, 우리 인류에게는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하지만 이 ‘진리의 다섯 가지 성질’로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되지 않았는지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3월 28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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