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대로의 우리말글사랑] 교과서 글부터 말 다듬기를 해야 한다

일본 강점기에 우리 겨레말과 겨레 얼은 일본 식민지 정책과 교육에 짓밟히고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광복 뒤에 조선어학회(한글학회)가 앞장서서 우리말을 도로 찾아서 쓰자는 운동을 하고 배움 책을 우리 말글로 만들었다. 그런데 일본 식민지 국민 교육을 착실하게 받은 이들이 우리말을 도로 찾아서 우리 글자인 한글로 쓰자는 것을 반대했다. 바로 서울대 이숭녕교수와 조윤제 교수, 고려대 현상윤 교수들이 그 우두머리다. 그러나 조선어학회 최현배, 이병기 교수들은 미국 군정청 학무국에 들어가 일하면서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과서를 우리 말글로 만든다. 참으로 잘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 뒤 1969년에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교수가 어문회(회장 이희승)를 만들고 다시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흐름을 막아버렸다.

광복 위부터 조선어학회(한글학회)는 우리말 도로찾기를 하면서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광복 위부터 조선어학회(한글학회)는 우리말 도로찾기를 하면서 한글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을 세우고 한글학회 사람들인 안호상, 백낙준, 김법린 들이 이어서 문교부장관을 하고 최현배가 미국 군정청 편수과장에 이어서 다시 문교부 편수국장을 맡아 우리 한말글로 교과서를 만든다. 그런데 1962년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교과서를 일본처럼 한자혼용 하겠다고 해서 1967년에 국어운동대학생회가 조직되어 한글전용을 외치고 한글학회 이은상, 한갑수들이 설득하니 1968년에 박정희 정부는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펴겠다고 발표한다. 그러니 1969년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교수가 중심이 되어 ‘어문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것을 반대하면서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적자고 나선다. 그리고 서울사대 출신들이 문교부를 장악하고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던 교과서를 한자말로 바꾸게 하고 한자조기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먼저 이들은 연세대 최현배, 김윤경 교수들이 문법을 말본이라면서 이름씨, 그림씨 같은 우리말로 쓰던 용어를 쓰지 못하게 서울대 이희승이 주장하는 명사, 형용사 같은 문법용어로 통일한다. 그리고 광복 뒤 서울사대 이기인 교수는 생물학 교육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었는데 한자혼용을 하자는 어문회가 출범한 뒤 서울사대 출신들을 중심으로 문교부를 장악하고 자연책에 있던 쑥돌을 화강암으로, 붉은피톨과 흰피톨을 적혈구, 백혈구처럼 한자말로 바꾸는 식으로 교과서에서 살리던 토박이말을 한자말로 바꾸면서  교과서 글(지문)에 일본식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이희승 같은 이들 글을 많이 넣고 우리 한말글을 살려서 쓰자는 최현배 같은 이들 글은 넣지 않는다. 그래서 학생들이 일본 한자말과 말투에 길들고, 그들이 공무원과 언론인이 되고 교수와 선생이 되어 계속 한자말을 쓰고 가르치니 일본 한자말과 일본말투가 자리 잡고 토박이말은 점점 사라진다.

광복 뒤 조선어학회(한글학회)는 이렇게 순 우리말로 말본 낱말도 만들고 우리 토박이말로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쳤으나 일본식민지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자들이 토박이말을 몰아낸다.
광복 뒤 조선어학회(한글학회)는 이렇게 순 우리말로 말본 낱말도 만들고 우리 토박이말로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쳤으나 일본식민지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자들이 토박이말을 몰아낸다.

그래서 나는 1997년 한국바른말연구원 이름으로 한글회관에서 글쓰기 교육을 바르게 하도록 하려고 한양대 서정수 교수와 우리말 바로쓰기를 외치는 이수열 선생들을 모시고 “이런 교과서로 교육을 하디니”라는 주제로 이야기 마당을 열고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나섰다. 그러나 일본 법전을 베낀 우리 육법전서를 달달 외워서 판검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된 자들과 일본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교수들에게 교육을 받고 공무원과 언론인이 된 이들이 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어 우리 뜻이 먹혀들지 않았다. 교과서와 신문 글이 일본식 한자말과 일본 말투이고 방송이 그 글말을 그대로 내보냈다. 그리고 이 사회 기득권자인 조선일보, 전국경제인연합회 들이 이들을 밀어주고 거기다가 영어 바람이 일어나 우리 한말글은 바람 앞 촛불 꼴이 되었다. 

1997년 한글회관에서 한국바른말연구원(원장 원광호) 이름으로 토론회를 열고 사무총장인 내가 사회를 봤다. 그리고 교과서에서부터 우리말을 살리고 일본 한자말을 몰아내려고 했다.
1997년 한글회관에서 한국바른말연구원(원장 원광호) 이름으로 토론회를 열고 사무총장인 내가 사회를 봤다. 그리고 교과서에서부터 우리말을 살리고 일본 한자말을 몰아내려고 했다.

그때 이수열 선생은 신문 글부터 바로 써야 한다고 신문 논설이나 논단 글을 빨간 펜으로 고쳐서 수십 년 동안 글쓴이들이게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오덕 선생도 우리글 바로쓰기에 힘쓰고 한말글사랑겨레모임(대표 이대로)는 이희승 교수 잘못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한강물을 바가지로 퍼 말리려는 것처럼 성과가 없었다. 거기다가 영어바람이 일어나니 우리말은 더 힘들어졌다. 지금이라도 광복 뒤 처음 나라 세울 때처럼 교과서 지문을 바르고 깨끗한 우리 토박이말로 쓴 글을 담아 교육해야 한다. 또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들고 쓴 머리글과 미국인 헐버트가 가장 처음 한글로 만든 교과서 ‘사민필지’ 머리글, 주시경 선생이 1911년 보중회보에 쓴 ‘한나라말’이란 글들을 오늘날 우리말로 다듬어 교과서에 넣어 한말글 사랑 정신도 키워야 한다.

이수열선생이 신문 글을 교정해 글쓴이들에게 보낸 것(왼쪽)과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자고  한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교수가 문체부 선정 문화인물이 되는 것은 반대한 보도 글(오른쪽).
이수열선생이 신문 글을 교정해 글쓴이들에게 보낸 것(왼쪽)과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자고  한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교수가 문체부 선정 문화인물이 되는 것은 반대한 보도 글(오른쪽).

그리고 일제 때에도 우리말로 바르고 아름답게 쓴  김소월, 윤동주 시와 좋은 글들을 교과서 글(지문)로 올려서 학생들이 우리말을 알고 쓰게 하고 영어교육보다 국어교육에 힘써야 한다.  말글정책을 다루는 문체부장관과 말글교육을 책임 진 교육부장관이라도 제 나라말을 사랑하는 이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과 국가기관부터 국어기본법을 지키고 바른 말글살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자주정신이 살아나고 자주독립국이 되어 선진국이 되고 통일도 이룰 수 있다. 그래도 한글로 국민수준을 높이고 중진국까지 왔으나 자주정신이 약하고 사대주의 식민지 근성이 남아있어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외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루빨리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과 미국말부터 해방되어 겨레 얼을 살리고 빛내자. 

* 글쓴이는 '우리말글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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