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취이모(勿取以貌)

물취이모(勿取以貌)라는 말이 있습니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저는 오래전, 삭발(削髮)한 후부터 그 많은 멋진 양복을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겨울과 여름 두 벌의 한복을 입고 지냅니다.

걷옷치레 하기 싫어서입니다. 그렇다고 어디를 가더라도 무시 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언제나 당당하게 처신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느 회사의 면접 시험 장에서 면접 관이 얼굴이 긴 응시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마치 넋 나간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얼굴이 무척 길구먼, 자네 혹시 머저리와 바보가 어떻게 다른지 알겠나?”

이 말을 들은 청년이 얼굴을 붉히고 화를 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결례되는 질문을 하는 쪽이 머저리이고, 그런 말에 대답하는 쪽이 바보입니다.” 시험 결과 이 청년은 합격 되었지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일화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저의 모교인 ‘배재학당(培材學堂)’에 입학할 때 미국인 선교사 앞에서 구술 시험을 치렀습니다. 선교사(宣敎師)가 물었습니다.

“평양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800 리 쯤 됩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공부하지 않고 왜 먼 서울까지 왔는가?” 그러자 도산이 선교사의 눈을 응시하면서 반문하였지요. “미국은 서울에서 몇 리입니까?” “8만 리 쯤 되지.” “8만 리 밖에서 가르쳐 주러 오셨는데, 겨우 800 리 거리를 찾아오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구술 시험이 끝났고, 도산은 배재학당에 합격했습니다. 그의 재치, 배짱 그리고 면접 관의 심리를 꿰뚫는 지혜가 노련한 선교사들을 감동하게 한 것이지요.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 비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남루 한 옷차림의 노 부부가 하버드 대학교에, 기부하겠다며 총장을 찾아왔는데, 남루한 옷차림을 본 비서가 순서를 늦추는 바람에, 몇 시간이나 기다려 서야 겨우 총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총장은 거만한 말투로 귀찮다는 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습니다.

“우리 학교 건물은 1개 동 당 750만 달러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대형 건물입니다. 얼마나 기부하려고 요?” 그때 부인이 남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보! 겨우 750만 달러 정도로 건물 한 동을 지을 수 있다면, 죽은 아들을 위해 대학교 전체를 통째로 세우고도 남겠네요. 여보, 갑시다.” 노 부부는 죽은 아들을 위해 유산을 모두 교육 사업에 기부하려고 하버드 대학교를 찾았다가 거만한 그들의 태도를 보고 발길을 돌렸지요.

그러고는 캘리포니아에 대학을 세웠고, 그렇게 탄생한 대학이 노부부의 성을 딴 스탠퍼드 대학입니다. 현재 스탠퍼드 대학은 세계 최고의 일류 대학이 되어 하버드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을 뒤늦게 알게 된 하버드 대학에서는 학교 정문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붙여 놓았다고 하네요.

『Don’t judge a book its cover.』

서양에서는 사람의 외모를 책의 표지에 비유하면서 ‘책의 표지가 멋지다고 해서 반드시 그 책의 내용이 좋을 것, 이라고 판단하지 말라’ 고 한답니다.

《현우경(賢愚經)》 <빈녀 난타 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석가세존께서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에 계실 때 일입니다. 사위 국에 ‘난타’ 라고 하는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국왕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공양(供養)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한탄했지요.

「나는 전생에 범한 죄 때문에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모처럼 부처님을 뵙게 되었는데, 아무것도 공양할 것이 없구나.」

이렇게 슬퍼한 나머지 온종일 돌아다닌 끝에 겨우 돈 한 푼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돈 한 푼을 가지고 기름 집에 가서 기름을 사서 등불을 켰지요.

이윽고 밤이 깊어 등불은 하나, 둘 꺼졌는데, 하나의 등불 만은 시간이 갈수록 밝기를 더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시자(侍子)인 ‘아 난’이 등불이 켜져 있으면 부처님께서 주무시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끄고자 하였으나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자 등불은 더 밝아질 뿐이었지요.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그만두어라, 아난아. 그 등불은 한 가난한 여인이 간절한 정성으로 켠 것이어서 너의 힘으로 그 불을 끌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여인은 지금은 비록 가난한 모습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빈자일등(貧者一燈)이란 말이 생겼고, ‘부자의 만 등보다 빈자의 한 등이 낫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종교도 돈이면, 못할 것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돈만 있으면, 사찰도, 교회도, 교당도 크게 성장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다 같은 하느님의 자식이고, 부처님의 혈육인데, 절과 교회나 교당 안에서도, 있고, 없고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기 때문에 오히려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 종교, 이 일은 장차 어찌하면 좋을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4월 25일

덕산 김덕권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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