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는 견뎌도 손해는 못 참는 더불어민주당

김남국의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이준석 저격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5월은 민주당 계열 정당의 달이기 마련이었다.

1961년 5월 16일에는 4ㆍ19 학생혁명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소장의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부터 매해 5월은 군사독재의 폭압에 저항하는 총력투쟁의 시기로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 5월 17일에는 전두환의 신군부가 5ㆍ17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전격 발표했다. 신군부 일당의 전면 퇴진을 요구하며 이튿날부터 전개된 5ㆍ18 광주민중항쟁은 한국의 5월을 피눈물로 가득한 추모와 애도의 달로 만들었다.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가 축제가 ‘대동제’로 불리게 된 배경이다. 낮에는 거리로 일제히 시위를 나가고, 해 질 무렵이 되면 삼삼오오 학교로 돌아와 밤새 술을 마시던 시절이었다.

세기가 바뀌어 2009년 5월 23일에는 검찰의 정치보복성 수사를 받고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의 불행하고 급작스러운 서거는 폐족 신세를 자처할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던 친노세력을 극적으로 부활시키며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권 탄생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므로 5월만 되면 이런저런 정신을 계승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민주당 계열 정당의 구성원들에 의해 전국 곳곳에 내걸리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렇지만 올해 2023년 5월은 더불어민주당이 공세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됐다.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돈봉투가 오간 사실이 폭로되면서 소속 국회의원들이 면피성 탈당을 감행하더니, 뒤이어 이재명 대표의 측근으로 활동해온 김남국 의원이 수십억 원의 암호화폐를 보유한 코인 부자였음이 드러난 탓이다.

필자는 나이를 먹으며 느슨한 기준과 잣대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젊었을 적에 고집했던 경직된 원칙론과 교조적 원리주의를 포기한 지 오래다. 따라서 전당대회를 치르려면 기본적 실탄은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 먹으며 당대표 선거운동을 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보적 노선과 가치를 표방하는 젊은 야당 정치인도 재테크 전선에 뛰어들어 부를 일굴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인생 100세 시대에 일평생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실명으로든 차명으로든 단 한 차례도 주식투자나 코인거래를 해본 경험이 없다. 향후에도 여간해선 하지 않을 계획이다. 고로 김남국 의원이 보유하고 있다는 가상자산에 관해 구체적으로 왈가왈부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 대목에 대해서만은 명징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다.

김남국 의원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논쟁에 참전시킨 결정은 하책 중의 하책이었다. 김남국은 코인거래로 돈 버는 인구가 우리 사회에서 한두 명이 아닌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는 식으로 이준석을 언급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준석은 돈을 죄악시하는 듯한 태도를 띠어온 김남국과는 판이하게 부자가 되고픈 욕구를 서슴없이 표출해왔다는 데 있다. 돈에 대한 이준석의 사랑이 요란한 공개 구애였다면 재산 증식을 향한 김남국은 연정은 금단의 몰래 한 사랑이었던 셈이다.

필자가 인지하는 범위 안에서 이준석 본인은 물론이고 이준석의 핵심 지지층인 2030 남성들은 김남국 의원에게 특별한 억하심정이 없다. 현재 그들의 주적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당권을 찬탈해간 구태 윤핵관들이다. 김남국은 쓸데없이 이준석을 자극하고 도발함으로써 중립국을 적국으로 돌리는 우를 범했다.

2030 남성들은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가상자산의 투자와 거래에 단연 활발하고 적극적인 집단이다. 지금은 김남국이 코인거래에 대한 해명을 내놓을 때마다 2030 남성들이 즉각적으로 반박에 나서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코인에 대한 그들의 식견과 전문성은 내로라하는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들의 관련 지식이나 주요 언론사 경제부 기자들의 정보력을 월등히 능가하고 있다. 김남국은 정무적인 판단 착오로 말미암아 결코 척을 져서는 안 될 사람들과 불필요한 대립각을 세우고 말았다.

코인거래에 대한 극도록 오만하고 오도된 인식은 윤석열 대통령의 오른팔 격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선도적으로 보여줬다. 박수영은 젊은 세대가 코인으로 돈을 버는 것 자체를 부도덕하게 여기는 인상을 주었다. 박수영은 하필이면 국민의힘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왜 전략 부재의 저지능 정당이 됐는지를, 현실감각이 마비된 공감력 제로의 꼰대 정당이 됐는지를 박수영의 사례가 여지없이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윤석열 일행에게 접수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눈이 빠져라 컴퓨터 모니터나 휴대전화 액정화면 들여다보며 코인을 거래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기존에 소유한 토지와 주택의 가격을 여당의 일원으로 편입되면서 더더욱 확고하게 장악한 정부의 인허가권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단숨에 수십~수백 배씩 폭등시키는 걸로 충분하다. 불로소득의 화신들이 총집합했을 집권당의 연구원장이 젊은이들의 코인 보유와 거래를 불온시하는 것으로 느껴지고도 남을 발언을 했으므로 청년층의 분노의 표적은 응당 용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됐으리라. 만약에 김남국이 이준석의 불가피한 방어적 개입만 강요하지 않았다면….

김남국, 87년 체제에 잡아먹히다

김남국은 포문을 이준석이 아닌 박수영을 향해 열었어야 마땅했다. 김남국 의원은 그와 동시에 부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욕망도 표현했어야만 옳았다. 그는 자기가 가진 자산을 숨기는 데 급급해하는 대신에 공공연히 자랑해야 했다. 김남국은 어째서 그와 같은 선택과 결단을 제때 내리지 못했을까?

더불어민주당은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질곡으로 진즉에 변질된 87년 체제의 최대ㆍ최고ㆍ최강의 수혜자이다. 87년 체제에서 민주당 계통의 정당은 정권을 세 번이나 잡았고, 의회의 입법권력도 주기적으로 거머쥐었다. 민주당이 입으로는 87년 체제의 빠른 종식을 외쳐도 실제로는 87년 체제의 유지와 연장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연유이다.

87년 체제가 발효된 1987년 당시의 대한민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 액수는 3,554 달러였다. 작년 2022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GDP는 32,236 달러이다. 거의 10배 가까이 뛰었다.

1987년 무렵에 야당 정치인들의 경제력과 생활수준은 국민들의 평균치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오늘날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의 재산규모와 소득수준이 국민 평균과 비슷하다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삶은 소머리가 앙천대소할 노릇이리라.

바로 여기에 김남국의 비애와 곤혹스러움이 가로놓여 있다. 그가 몸담은 정당은 몸으로는 3만 불 시대의 물질적 복락을 누리면서도, 마음으로는 3천 불 시대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존재와 의식이 따로 놀아도 단단히 따로 놀고 있는 환경과 풍토에서 82년생 김남국은 82학번 선배 정치인들의 위선과 내로남불을 흉내 낼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김남국이 엄청난 코인부자라는 데 상당수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도 놀랐다고 한다. 내가 진짜로 진지하게 놀라는 부분은 김남국 의원이 코인부자란 사실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을 “정치적 박해는 견뎌도 경제적 손해는 참지 못하는” 3만 불 시대의 웰빙 야당으로 전락시킨 주역들인 86세대 정치인들이 아직도 자신들을 춥고 배고픈 운동권 학생들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몸은 등 따시고 배부른데 마음만은 가난한 현재의 민주당 계열 정당 안에서 김남국이 코인에 투자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어떻게 감히 고백할 수 있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 독선과 오기 덕분에 한동안 운 좋게 은폐되어온 더불어민주당의 치명적 취약성이 이번 김남국 사태에서, 아니 김남국 소동에서 선연히 노출됐다. 민주당이 국민의힘만큼이나 청년세대 사이에 인기가 없는 정당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김남국을 두둔하는 누리꾼들의 대다수는 50대 이상의 중장년 남녀들이다. 김남국 의원 또래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의미겠는가? 청년세대는 더불어민주당의 위선에 대한 반감을 윤석열 정권의 시대착오적 극우화와 상관없이 거두지 않았단 뜻이다. 윤석열 이 청년세대의 극혐이 된 원인도 알고 보면 앞 다르고 뒤 다른 양두구육의 가식적 처신과 행태에 있었다. 민주당은 3만 불 시대의 부유함은 부유함대로 만끽하면서도 3천 불 시대의 논리와 이념으로 스스로를 언죽번죽 분칠하고 있다.

있으면서 없는 척하며 쓰지 않으면 위선이다. 있는 것 들켰으면서도 베풀지 않으면 인색이다. 계층 간의 소득 격차와 자신 불평등이 나날이 심화되는 작금의 남한 땅에서 민중은 인색함보다는 위선에 더욱더 분개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각종 ‘정신’의 현란한 경연장으로 군림해온 더불어민주당에 ‘자린고비 정신’을 추가할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자린고비는 인색하기는 하되 위선적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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