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B 뉴욕 라디오 코리아 앵커에서 스피치 전문가 변신 최유라 운율스피치연구소 원장
스피치 교육 모토, 상대방 말 '경청'하는 것
"말하기 교육 못지 않게 듣기 교육도 필요"
"말을 안 하는 것보다 잘못하는 게 문제"
"가짜뉴스, 말의 무게 두려워하지 않아 생긴 일"

[인천=뉴스프리존]김경은 기자= 말하기는 일상이다. 사람은 말로 산다. 대화로 관계를 맺는다. 감정을 표현한다. 지식도 공유한다. 하지만 만족한 대화 경험은 흔치않다.

오히려 반대다. 상황에 맞지 않는 농담, 무심히 드러낸 속내, 의미도 없는 싱거운 소리, 에두르다가 전달하지 못한 의미,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 시의에 맞지 않는 언사, 어색한 침묵을 부르는 호칭, 오해를 산 말투. 이들 모두 후회를 부르는 말과 행위다. 후회는 화법의 오류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말로 인한 후회는 나만 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잘한다고 여기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말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3년 넘게 진행된 코로나 팬데믹은 사회를 단절시켰다. 이 시기에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단어는 사회적 현상의 한 단면이다. 마스크, 비접촉,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배달 식사, 사회적 거리·······. 비대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역설적이다. 비대면 현상이 확대될수록 ‘정확한 말하기’의 중요성은 커진다. 비대면 상태에서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배제한 채 말을 주고받는다. 몸짓과 손짓 그리고 표정을 파악할 수 없다. 그만큼 말에 몰입해야 한다. 인류 역사상 말의 역할과 책임이 이만큼 막중했던 때는 없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를 ‘말의 시대’라고 규정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게 말을 잘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을 ‘정확’하고 ‘능숙’하게, 그리고 '센스'있고 ‘세련’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역량은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재능일까. 교육과 훈련을 통해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말하기 전문교육가로 변신한 최유라 전 KRB 뉴욕 라디오 코리아 앵커를 24일 오전 운율 스피치 연구소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는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했다. 질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절로 신뢰가 간다. 말하기 달인이다. 

 최유라 운율스피치연구소 원장

-언제부터 ‘말’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까.

“직업적인 이유였습니다. 저는 KRB 뉴욕 라디오 코리아 앵커, KBS·TBN 리포터 등을 지냈습니다. 앵커, PD, 아나운서 등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시청자가 보내온 사연을 전달할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연에 생명을 불어넣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사연 소개를 하면서 애드리브를 넣거나 마무리 코멘트에 변화를 줬습니다. 오히려 어색했습니다. 보내온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 듯했습니다. 좋은 표현보다 정확한 표현이 전달력을 높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화법’에 관한 자각이었던 셈이죠. 그런 자각이 없었다면 스피치 전문가로 변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뒤에 스타트업 IR피칭 컨설턴트, 기업 프레젠터, 공무원 면접학원 전임강사, 키즈 스피치 전임강사, 기업 사내 커뮤니케이션 코치 등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운율스피치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 방송사에 보내온 사연에 진행자의 발언이 추가되면 이야기가 더 풍성해질 것 같은데요.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연보다는 ‘나의 말’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죠. 상대에 집중한다는 것은 곧 경청입니다. 대화에서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경청이 없는 대화는 자기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됩니다. 저의 스피치 교육의 모토도 경청입니다.”

-말 잘하기 교육이 아니라 경청하기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예. 말을 잘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싶어 고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말 잘하기보다 잘 듣기가 먼저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잘 듣는 게 아닙니다. 잘 듣는 사람이 말을 잘하는 것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할까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의 말에 귀기울입니다. 들을 준비를 철저히 한다는 얘기입니다. 말하기 교육의 초점과 비중이 말하기에서 경청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나운서와 리포터를 하면서 유명 인사부터 슈퍼마켓 주인까지 다양한 뉴욕 한인을 만났습니다. 아나운서와 리포터는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전달하는 게 중요한데요. 그들의 얘기를 듣지 않고 가치 있는 뉴스를 생산할 수 없죠. 잘 들어야 할 말이 생깁니다. 질문을 위한 질문은 쓸모없습니다.” 

-그럼 경청을 잘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세요.

“경청에도 방법이 있어요. 먼저 귀로 듣고 내용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눈으로 비언어를 듣는 것입니다. 눈으로 말투, 표정, 손짓 등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마음으로 들어야 할 차례입니다. 진심으로 말속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본심이죠. 예를 들면 친구들과 어울려 남편의 욕을 했다고 칩시다. 본심은 위로받고 싶은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만일 어떤 친구가 자기 말에 맞장구치면 싸움이 날지도 모릅니다. 내용 즉 언어적 정보만 듣고 화자의 얘기를 다 들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랬을 경우 자기중심의 소통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중심의 소통이란 무엇입니까.

“말하는 사람이 자기만 이해하는 내용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독백과 같은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대화를 하는 사람은 자기 얘기에 빠져서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서 상대방의 말을 나의 문제로 바꾸는 경우도 다반사죠.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최유라 운율스피치연구소 원장

-상대방의 말을 나의 문제로 바꾼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이를테면 퇴근한 남편이 아내에게 ‘오늘 회사 일이 너무 많아서 무척 힘들었다’라고 넋두리를 했다고 해요. 아내로부터 ‘오늘도 고생했어요’라는 말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나도 집안일 하느라 앉아보지도 못했다’며 자신의 수고를 내세웠다고 해봐요.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는 더 진행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아내가 남편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었다면 말하는 사람의 마음도 읽었을 것입니다. 화자의 마음을 읽으려는 마음이 부족하면 남의 얘기를 자기의 얘기로 치환하게 됩니다. 그런 것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럼 타인 중심의 대화를 하면 말주변이 없어도 대화를 잘할 수 있다는 얘긴가요.

“그렇습니다. 대화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소통이죠. 소통은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말입니다. 말로 상대방의 공감을 얻어야 합니다. 말의 궁극적인 목적은 설득과 공감이죠. 설득이란 내가 하는 말을 이해시키는 과정이죠. 설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게 타인을 위한 대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대화방식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누구나 대화의 주도권을 갖길 원합니다. 듣기만 해서는 주도권을 잡을 수 없지 않나요.

“그렇죠. 얼마 전에 도성훈 인천시 교육감을 만났습니다. 올해 핵심 교육 정책목표를 ‘읽걷쓰’라고 소개하더군요. ‘읽걷쓰’는 ‘읽고, 걷고, 쓰자’라는 약자입니다. 저는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머리에 들어 있는 게 없으면 할 말이 없어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지식 소양이 있어야 합니다. 말하기와 독서는 병행해야 합니다. 독서에서 간접적 체험과 여행 등에서 직접적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런 자신의 정보는 실감 나는 대화의 화제가 될 것입니다.”

-일상적인 말하기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없을까요. 

”말을 공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말은 인간과 뗄 수 없습니다. 삶 그 자체라고 느끼는 게 중요하죠. 일상적인 말하기부터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목적 지향적 대화법을 배우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런 과정 없이 면접, 시험, 프리젠테이션, 수행 발표 등에 관한 스킬을 배우려는 것은 스트레스가 될 것입니다. 가벼운 말하기에서 점차 목적에 맞는 대화법으로 가는 게 훈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방적 소통 부재는 더욱 심화했죠. 특히 코로나가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코로나가 진행된 3년 반 동안, 우리 아이들은 ‘묵언수행’을 강요당했습니다. 비대면 교육받은 아이에게 대면 소통의 기회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입이 아니라 손으로 또래와 소통했죠. ‘콜포비아(전화공포증)’, ‘토크포비아(대화기피증)’과 같은 신조어가 생겨날 지경이었습니다. 손으로 하는 대화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의사소통이 쌍방향으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대화할 때 스스로는 상대방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상은 다릅니다. 자신의 생각하는 이미지를 상대방의 잔상에 남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다 보면 서로 자기 말만 하는 대화가 됩니다. 진정한 소통이 안 되는 것이죠. 면대면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다면 이메일이나 문자보다는 전화를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문자에는 전혀 없는 비언어적 신호가 다소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과 소통할 때 소통 매체도 중요하군요.

“카톡이나 메일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전화도 진정한 의미의 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화 통화에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끼어들 틈이 크지 않습니다. 표정, 태도, 손짓, 눈짓, 몸짓 등 비언어적 요소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의미와 목소리만 전달되죠. 대화에서 비언어적 정보가 미치는 영향은 무려 93%라는 연구 결과(멜라비안의 법칙)가 있습니다. 즉, 비언어 정보가 없는 전화 통화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크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간단한 메시지만 오가는 카톡이나 문자 소통은 설명이 필요없죠." 

-옛날 일본 여성은 이에 검은색을 칠하거나 눈썹을 지우는 화장법이 있었는데요. 그런 상태에서도 진심에 우러난 대화가 불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이를 검게 물들이는 화장을 오하구로, 눈썹을 뽑고 이마에 새로 눈썹을 그리는 화장을 히키마유라고 합니다. 그런 화장을 했다면 표정이 지워집니다. 표정이 지워지면 마음이나 감정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표정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상태에서 진정한 대화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하는 대화 역시 소통에 큰 장애가 되겠군요.

“물론입니다. 어린아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입 모양을 보면서 말을 익혀가는데요. 마스크가 입을 막았습니다. 아이들도 마스크에 길들였습니다. 마스크가 입을 가린데 그친 게 아닙니다. 아이의 언어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심각한 언어 지체가 생기기도 합니다. 코로나가 지나간 상황에서 ‘코로나 부작용'을 찾아보고 반드시 고쳐야합니다.”

-단지 유아기의 어린이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니죠.

“그렇습니다. 초·중·고교에서 짝꿍에게 말 거는 것조차 꾸중 거리가 됐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상당수 학생은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소통 부재로 사회성 발달이 늦어지는 학생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최유라 운율스피치연구소 원장

-인공지능의 시대엔 소통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챗GTP가 인공시대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챗GTP가 대중화된다면 인공지능이 지식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인간의 정보력은 경쟁력을 상실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하기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이 소통력이라는 얘기입니다. 올바르게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 그런 능력을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쉽게 말하면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인공지능의 답변은 달라집니다. 질 높은 질문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훈련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말의 자존감도 중요하지 않은가요.

“물론입니다. 말을 자존감이 낮아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나 실수하지 않을까, 질문 때문에 업신여김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합니다. 아니면 잘 난 채 한다는 비난받는 걸 우려하죠. 그것은 일방적으로 받아 적는 수동형 수업이 이뤄질 때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자존감이 낮아서 말을 안 하는 어린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하기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교육 현장에서 토론과 발표 기회가 아주 많습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소통이 안 되고 어울리지 못해 외톨이로 지내는 아이가 매우 많습니다. 이 역시 자존감에 영향을 주죠.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말이 맞는다는 자신감과, 상대방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존중감을 가져야 합니다. 대화는 하나의 도화지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그림을 그리는 과정입니다. 말의 자존감은 그림처럼 훈련할 때 훨씬 좋아집니다.” 

-최근에 가짜뉴스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책임감 없는 말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말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평범한 얘기로는 관심을 끌 수 없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더욱 독하고 험한 말을 내뱉습니다. 말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을 망각한 데서 비롯된 현상이죠. 말하는 것에도 준비와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하는 말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이죠.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말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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