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안데레사 기자] 빈소에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만 명을 훌쩍 넘겼다. 정치인답지 않게 소탈했던 고인을 각별히 기억하는 일반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故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의 장례가 26일 부터 27일 동안 국회장으로 승격돼 마무리된다. 노 의원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문화제도 이날 오후 7시 서울과 노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창원에서 동시에 열리고, 장례 마지막 날인 27일은 오전 9시 발인식을 거쳐, 오전 10시에는 국회에서 영결식이 엄수된다.

고인은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생전 고인이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 남긴 과제는 무엇일까?

고(故) 노회찬 원내대표의 장례가 5일장으로 치러진다. 정의당은 23일 고인의 장례를 5일장인 정당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상임장례위원장을 맡는다고 밝혔다.

상주는 배우자 김지선씨, 동생 노회건씨다. 1956년생인 고인은 1988년 12월 두 살 연상의 김씨와 결혼했다.

그 즈음 노 원내대표는 인민노련 결성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신혼과 함께 수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듬해 경찰에 체포됐고 그는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받고 1992년까지 2년6개월 간 만기 복역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열린 정의당 정당연설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은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갑질 논란이 일고 있는 대한항공에 대한 청문회를 추진할 예정이다.

노 원내대표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녀가 없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둘 다 늦게 결혼했고, 또 제가 7년간 수배당하다가 교도소 갔다 오니까 첫 아이를 갖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됐다. 사실 그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한약도 먹고 용하다는 병원에 다니면서 꽤 노력을 했지만, 지금은 포기했다”고 말이다.

입양도 시도했지만 당시엔 국회의원 신분도 아니었고 수입이 일정치 않아 거절당했다고 한다. 생활고도 고백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집사람이 제 옥바라지를 하면서 살림을 꾸렸다. 집사람이 ‘여성의 전화’에서 일을 하면서 ‘다만 얼마라도 좋으니 생활비는 꾸준하게 벌어다 달라’라고 하더라. 그래서 (매달) 30만원을 약속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다”며 “(생활고 때문에) 옷은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품 모아놓은 데서 주워다 입었고, 또 TV같은 것은 아예 살 생각도 못했어요. 결국 누가 쓰다 버린 걸 가져다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는 2000년 권영길 전 의원과 함께 민주노동당을 창당, 2004년 17대 총선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민노당 바람’을 이끌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2012년 19대 국회의원(노원 병), 2016년 20대 국회의원(창원 성산)으로 당선됐고 20대 국회 입성과 동시에 정의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사망 전까지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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