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안데레사 기자] 한진그룹 총수 일가 퇴진을 주장해온 대한항공 직원들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가입할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한다. 새 노조가 출범하면 대한항공은 현재 3개 노조 체제에서 4개 노조 체제로 바뀐다. 대한항공 직원연대의 4차 집회가 열린 지난 5월 25일 보신각. 이날 모인 300여 명의 직원들은 직원연대의 창립선언문을 숨죽여 듣고 있었다. 낭독은 마드리드 행 비행 중인 박창진 사무장이 맡았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음성이 통신 불량으로 끊길 때면 직원들은 환호와 박수로 공백을 채웠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폭언이 담긴 ‘조현민 녹취록’ 공개를 계기로 모인 카카오톡 익명 단체카톡방 ‘직원연대’가 정식 단체로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가면을 쓰는 이유, 오너 가의 괴성보다 무서운 회사의 직원관리

5일 대한항공 직원들로 구성된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4일 진행한 직원연대 확대운영위원회에서 대한항공 전체 정규직, 비정규직 직원(운항승무원 제외)을 대변할 새로운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직원연대의 목표는 ‘조씨 일가 퇴출 및 갑질 경영 방지’다. 선명한 목표지만 이루기란 쉽지 않다. 경영진 갑질 이면에는 직원들의 입을 막는 인사고과 남용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이날 선언문을 읽은 직원연대 임시공동대표 박창진 사무장 역시 피해자다. 박 사무장은 2014년 12월 근무 중 견과류 봉지가 개봉되지 않은 채 제공됐다는 이유로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무릎을 꿇으라는 요구와 비행기에서 내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이후 조사 과정에서 조 전 부사장 측이 해당 항공편의 승무원과 접촉해 사건을 사전은폐하려 했다고 고발했다.

직원연대는 확대운영위를 마친 뒤 새 노조 결성을 위한 발기인 대회를 열었으며, 조만간 직선제 선거를 통해 새 노조 대표를 선출하기로 했다. 선거관리위원 2명을 선출했으며 선관위 논의를 통해 오는 6일 노동조합 임원선거 및 전체 조합원 투표총회 일정을 공지하기로 했다. 2016년 4월, 산업재해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 박 사무장은 더 이상 ‘라인장(각 항공편의 팀장)’ 직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한영 안내방송 말하기 시험에서 라인장의 요건인 A등급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측은 박 사무장의 영어 발음이 유창하지 않다는 근거를 들었지만, 한국어 안내방송 역시 A를 밑도는 81점을 받은 점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 라인장이 될 때는 모두 A를 획득했던 시험이다. 이에 박 사무장은 지난해 11월 부당징계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변호를 맡은 내부고발자 보호단체 ‘호루라기재단’ 이영기 변호사는 박 사무장의 직위 강등이 적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취업규칙상 직위의 강등은 징계에 해당한다”며 “이는 사전고지와 징계위원회 소명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변호사는 대한항공 내부 홈페이지 규정 공지에 따르면 박 사무장의 기존 라인장 시험 결과가 2017년 10월까지 인정되는데, 이것이 부인된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새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로 출범한다. 객실·운송·정비 등 각 분야 노동자들이 속한 일반노조(한국노총)와 조종사 노조(민주노총), 조종사 새 노조 등에 이어 4번째 노조를 출범하게 된다. 인사고과의 칼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은 박창진 사무장만이 아니다. 노동운동 등으로 회사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직원에게 불이익은 교묘하지만 확실하게 가해졌다. 직원연대 3차 집회에 나온 한 기장은 ”사측의 ‘X맨’이 승무원으로 탑승해 직원들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객실 승무원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주장했다. 가령 사측은 열 시간이 넘는 긴 비행에서 사무장이 승무원 좌석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는 사진을 찍어 징계 사유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매 항공편마다 팀원이 바뀌는 (항공업계의) 특수성 때문에 사측이 마음먹고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듯하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외면받는 일반노조

일반노조는 대한항공 2만여 직원 중 1만1000명 가까운 조합원을 거느린 최대 노조지만, 1994년 위원장 선출 방식을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꾸고 3년에 한 번꼴로 노사 임금협상을 회사 측에 위임하는 등의 행태로 인해 조양호 회장 등 한진그룹 일가 경영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직원들 상당수는 이들을 회사 편에 선 어용(御用)으로 여긴다. 경영진의 위협은 가깝지만 노조의 도움은 멀었다. 대한항공에는 대한항공 노조(일반노조)와 조종사 노조, 조종사 새노조까지 총 세 개의 노조가 있다. 이중 일반노조는 조종사를 제외한 대한항공 직원 1만여 명이 가입한 대한항공 내 최대 노조이지만, 집회에 나온 이들은 그간 일반노조가 회사의 부당행위로부터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한 객실 승무원은 일반노조가 대의원 간선제가 시작된 1994년부터 지금까지 총 여덟 차례에 걸쳐 임금협상을 사측에 위임한 사실을 언급했다. 또 다른 객실 승무원은 “아이 생일이나 학예회 등으로 휴가를 미리 신청해도 신청한 날짜에 휴가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며 임금과 복리후생 등, 직원들의 문제에 노조가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반노조는 '땅콩 회항'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이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일반노조를 '어용노조'라고 언급하자 노조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박 사무장을 제명했다. 박 사무장은 징계 사유와 절차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조합원 제명처분 무효 확인소송을 냈다. 일반노조가 노동자의 권익보호에 소극적인 것은 사측의 압력을 차단하기 힘든 노조 운영의 문제 때문이다. 일반노조의 위원장은 대의원 간선제로 선출되고 3년 임기를 세 번 연임할 수 있어 최대 9년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대의원 역시 사측 노무팀의 추천을 통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아 노동자 입장을 대변할 여지가 적다. 한 기장은 2003년 당시 일반노조 내 객실 승무원 지부에서 시작한 민주노조 만들기 운동을 회고하며 “당시 (민주 객실 지부에서) 회사로부터 들어오는 소송에 대비해 구제금을 갹출했다. 하지만 회사가 민주노조 측 활동가와 대의원들을 접촉해 회유했고, 구제금 횡령에 대한 소송이 직원 간에 걸렸다”고 말했다. 이후 이들 중 다수가 소송과 징계 등으로 인해 회사를 떠나면서 운영과 관련된 문제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문제제기의 부재는 결국 부정(否定)으로 이어졌다. 지금 대한항공 직원들은 “일반노조가 없기에 우리가 더 잘 뭉칠 수 있다”고 말한다. 직원연대는 단체행동에 나서고 있지만, 기존의 노동조합과 행동을 같이하지는 않는다.

직원연대는 새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과 관련해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 촉구는 물론 조합원 보호를 위한 법률 대응과 필수공익사업제도개선 등 분야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합가입 신청과 관련한 별도의 조합원 가입신청서를 배부할 것"이라며 "변화를 원한다면 함께해 달라"고 가입을 독려했다. 노조에 호의적이지 않은 직원연대가 발족하자 일반노조는 대응에 나섰다. 직원연대가 출범한 지 이틀 뒤인 5월 28일, 한국노총 산하의 일반노조는 직원연대에 민주노총 배후세력이 개입했다며 이들이 일반노조를 와해시키려 한다는 성명을 냈다. 박창진 사무장이 일반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민주노총 측 변호사를 선임한 것과 집회에 민주노총 인사가 참가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박 사무장은 일반노조의 성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는 “집회에서 노동 얘기를 하지도 않았고, 기존 노조에 관한 비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성명은 일반노조가 발표하기 전에 사측 홍보팀이 먼저 이를 언론사에 배포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반노조 측은 <경향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료가 넘어간 경위에 대해 확인이 필요하다”고만 답했다.

노조가 파업하면 사측은 웃는 ‘필수공익사업장제도’

노동자의 쟁의활동을 제한하는 제도 역시 대한항공 노동자들이 넘어야 할 산이다. 노동조합법상 항공업이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되어 쟁의를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수공익사업장이란 ‘공익사업 중 그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그 업무의 대체가 용이하지 않은 사업’을 의미한다. 이로 지정된 산업은 파업 중이라도 일정 비율 이상의 ‘필수유지업무’를 수행해야한다. 쟁의 기간에도 공익에 필수적인 업무는 유지함으로써 노동자의 쟁의권과 공익의 조화를 이루겠다는 취지다.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 필수공익사업장제도는 노동자에게 매우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했다. 2016년 12월, 항공업이 필수공익사업장에 지정된 이래 처음 진행된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은 전체 가용 조종사 2,314명 중 20%가량인 482명에 불과했고, 이중 189명만이 파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부분적 파업의 이유는 80%에 달하는 필수업무유지 비율에 있다. 필수공익사업장은 노사 간 협정을 통해 필수업무유지비율을 정하되, 협정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 노사 중 한쪽이 노동위원회에 결정을 위임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사측의 제안에 따라 노동위원회에 결정을 위임했고, 결국 기종별로 평균 80%가량의 유지율이 설정됐다. 항공업이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된 국가도 몇 안 될뿐더러, 그 중 하나인 이탈리아가 최소업무유지비율을 평상시의 50%, 필수유지업무에 투입되는 인원은 평상시의 1/3을 넘을 수 없도록 제한한 것과 대조적이다.

항공안전정책연구소 이기일 소장은 이것이 “노동자의 쟁의 수단을 사실상 무력화한 것”이라 지적했다. 필수유지업무비율이 높은데다 쟁의 시 감축되는 노선을 사측이 정하기 때문에 파업이 오히려 사측에게 적자 노선을 감축할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파업 당시 국내 수송에 주로 쓰이는 B737기 기장은 파업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대한항공 측은 국내선을 비롯한 적자노선의 15%(1,482편 중 221편) 감축을 단행했다. 반면 국제선 감편은 1%(2,586편 중 38편)에 그쳤다. 이 소장은 이를 두고 “파업이 장기화되면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노동자의 고통은 커지는 반면, 회사는 수익률은 향상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공익의 저해’ 측면에서도 항공업계의 파업이 철도‧수도‧전기‧가스‧병원‧한국은행 등 여타 필수공익사업장과 동일하게 다뤄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기일 소장은 “항공사의 파업은 공익을 현저히 저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체 항공업의 여객‧물류 운송중 개별 항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아 한 항공사가 파업해도 다른 선택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2016년 항공연감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국제노선에서 차지하는 여객수송 비율은 2011년 37%에서 2015년 28.6%로 꾸준히 줄었다. 국내노선은 여객과 물류 모두 국내 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에 불과한 데다 선박‧열차 등으로 대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이기일 소장은 나아가 필수공익사업장 제도가 오히려 안전이란 공익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소장은 “조종사의 근무환경은 승객 안전과 직결된다”며 “사측과 노조가 이를 두고 균형 있는 협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0년 5월 발족한 조종사노조는 첫 번째 단체협상에서 조종사 1명 당 연간 비행시간을 1,600시간에서 국제 규범인 1,000시간으로 축소하고 1일 이륙 횟수를 5회에서 4회로 줄이는 데 성공한 바 있다. 협상 초 사측은 비행시간을 단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이후 조종사노조가 사흘 간 파업하여 사측의 양보를 이끌어내며 단협이 타결됐다. 항공업이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되며 이 같은 타결이 이젠 어려워졌다. 파업의 부재 속에서 단협이 연속으로 부결되자 사측은 조종사와 개별적으로 계약했고 사측의 요구에 따라 비행시간은 다시 1,000시간에서 1,050시간으로 늘어났다.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문제제기는 집회 현장에서도 이어졌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부문 법률원 김영관 변호사는 4차 집회가 열린 필수공익사업장 관련 강연에서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제시한 규범대로 관제업무에만 적용해야 한다”며 항공업을 필수공익사업장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간다

사측의 위협과 노조의 견제, 그리고 불리한 제도까지. 이 모든 어려움 속에 직원연대는 첫발을 내디뎠다. 그들이 꿈꾸는 직원연대는 어떤 모습일까. 박창진 사무장은 자신이 임시대표일 뿐이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일종의 연대체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대한항공을 넘어) 같은 항공업계 종사자들과의 연대를 생각한다“며 프랑스 노동조합을 예로 들었다. 그는 “프랑스의 경우 한 회사 노조가 파업하면 다른 회사 노조도 함께 파업하거나, 적어도 다른 회사가 파업한 노선을 추가운행 해 수익을 올리지 않는 식으로 연대한다”며 항공사 직원들이 함께함으로써 문제제기가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직원연대가 일반 시민에게도 열린 조직을 지향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박 사무장은 대한항공 갑질 사태가 “한 회사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에 만연한 ‘갑을’의 문제”라며 대한항공뿐 아니라 사회 속 ‘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직원연대가 나아갈 길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단톡방에는 노조를 탈퇴하자는 의견, 새로운 노조가 필요하다는 의견, 직원연대가 노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 등이 올라왔다. 이를 어떻게 조율한 것인지 묻는 질문에 박창진 사무장은 직원연대의 의의는 방향을 관철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과 함께 방향을 모색해보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직원연대를 노조의 전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노조를 만들고 싶은 이들은 앞으로 그렇게 하면 된다. 기존 노조를 쇄신하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이 원하는 길로 나아가면 된다. 다만 그 전까지, 직원연대는 다양한 의견이 나누어지는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으면 한다”고 말한다. 직원들을 대변하는 동시에 민주적인 논의가 열려있는 공간, 이제까지 대한항공 노동자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그 공간을 향해 직원연대는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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