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批判)이란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뜻으로 애정이 깔린 충고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자가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가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계엄 문건’을 고발한 시민단체 대표를 향해 쏟아낸 막말이다. 김대표가 이런 말을 한 저의가 무엇일까? 기무사의 계엄문건을 정당화시키고 싶은가? 아니면 군인권센터 소장 개인을 공격하기 위해 한 말인가? 국군 기무사 계엄문건은 주권자를 살상하겠다는 군사반란 계획이다. 민주국가에서 계엄령이란 전시 때나 필요한 것이지 맨손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국민들을 학살하겠다는 군사반란이다.

해야 할 말이 있고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다. 그런데 박근혜 탄핵 후 야당이 쏟아 붓는 막말을 듣고 있으면 박근혜의 유체 이탈화법을 닮아도 너무 닮았다.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된다’는 이 말은 마치 ‘사오정’ 시리즈처럼 자신과 관련된 잘못된 일을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국가의 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마귀같은 짓이며 양승태사법부의 재판거래를 비호하는 걸 보면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인지 의문이 든다.

야당 사람들은 이런 유체이탈화법으로 막말을 하면 지지율이 떨어지는지 올라가는지 구별이 안 되는 모양이다. 아니면 대중의 판단 능력도 없는 수준 이하의 개돼지 취급을 해서 하는 말인지... 야당이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집권을 준비하고 있는 당이다. 그런데 입만 열면 표 떨어지는 막말을 쏟아내 국민들의 약을 올리고 있으니 이 사람이 하는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된다. 김성태원내대표뿐만 아니다. 막말의 대가하면 홍준표를 비롯한 김성태, 조원진. 이언주....등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있다. 국정농단의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마치 남의 얘기처럼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는걸보면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 같다. 이 사람들은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게 야당이 하는 일이라고 착각 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2004년 창원대 신문사에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악역에 돌팔매질 하는 사회”라는 주제로 글을 썼던 일이 있다. 글의 내용은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배우가 길을 가다 시청자에게 욕을 먹는다는 이야기다. 드라마에서 배역과 실재 인물을 구별 못하는 시청자의 수준을 들어 우리사회의 후진성을 지적 했던 글이다.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에 악역을 맡은 배우가 시청자들로부터 곤욕을 치르거나 전화로 욕을 듣기도 했다는 사실은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후진성이다. 국민소득(GNI)이 1인당 3만달러라면서 버려야할 전근대적인 의식수준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공(公)과 사(私)를 구별 못한다든지 흑백논리가 먹혀들어가는 선거판이 그렇고 빨갱이니 좌파라는 딱지가 붙으면 그 사람은 모든 게 끝나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이 그렇다. 개인의 인품이란 사회적 지위와 구별되어야 한다.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그 사람이 인격도 낮은게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라면 대통령이 기장 훌륭한 사람이요, 그 다음이 국무총리.,.. 이런 순인가? 이런 전근대적인 가치관은 직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장의 상사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상사다. 사회적 지위가 곧 그 사람의 인품이 되는 것이다.

좌파니 빨갱이라는 말도 그렇다. 사실 이 말은 친일세력이 해방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지만 해방 7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아니 입만 열면 좌파니 종북, 빨갱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빨갱이나 좌파가 무엇인지 왜 나쁜지...’를 물어보면 구체적인 대답을 못한다. 그냥 빨갱이니까... 빨갱이는 악마요,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헌법에는 평등이니 복지사회를 지향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평등이니 복지라는 말만 하면 어김없이 종북이니 좌파 딱지가 따라 붙는다.

이런 세상에 합리성이 통할리 없다. 비난(非難)이란 상대방을 헐뜯기 위해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거나 과장해 못되기를 바라는 심리다. 그러나 비판(批判)이란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뜻으로 애정이 깔린 충고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듯이 비판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는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판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까지도 비판을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문빠라는 사람들도 그럴 개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낸 상명대 중어중문학과 김경일교수는 역사법정에 나와 ‘△인문 의식 △온고지신(온고지신) △조상 숭배’라는 가치관을 지적한 뒤 검은 곰팡이처럼 자라고 있는 유교의 해악을 바로 찾아내고 솎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던 일이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전통 사회의 가치관인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아집, 흑백논리, 표리부동, 왜곡, 은폐...와 같은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분단국가에서 살다보니 건드리면 안 되는 역린(逆鱗)이 자기 비판이요, 상호비판이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 중에는 촛불정부를 세울 만큼 성숙한 민주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해 떳떳해야할 주권자들이 권력 앞에 작아지는 부끄러운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자기 비판과 상허비판에 입과 귀를 막고서야 어떻게 건강한 사회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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