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광양 버꾸놀이 보존협회 이사장... 버꾸농악 12마당 재현 발표회 가져

전수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양형진 명인 [사진=이동구 기자]

[뉴스프리존,전남=이동구 선임기자] 전남 광양 태생으로 평생을 전통북 연구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버꾸놀이 12마당을 재현하고 최초로 최연소 농악명인의 호칭을 받게 된 양향진 북 명인을 만나 너 댓살 어린 나이부터 그가 북과 함께 살아오면서 전통을 되살리고 우리 고유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해 후계자 양성에 힘써 전세계에 북 전수자를 양성하고 있는 그의 전수관을 찾았다.

기자가 전남 광양시 광양읍 사곡리 본정부락에 위치한 전수관을 찾은 날에도 양 명인이 직접 지도하는 1박 2일의 수련을 받기위해 전국에서 모인 전수생들이 방안 가득 모여 꽹과리, 장구, 북 등 신명나는 수련에 열중이었다.

[양향진 명인과 잉문 일답으로 진행한 인터뷰]

기자 : 여기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이고 누구인지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양 이사장 : 광양 지역단위 마을에서 농악놀이 버꾸농악으로 불리는 것을 오래전에 12마당을 재현 했고 제가 배우고 자료조사 한 것을 집대성한 것을 체계적으로 전승 전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광양 버꾸놀이 보존협회 양향진(56)이사장입니다.

기자 : 버꾸놀이보존협회의 오늘이 있기까지 과정에 대한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양 이사장 : 저는 광양읍 용강리 와룡마을에서 태어나 너 댓살 때 부터 마을의 정월 대보름이나 백중굿 등을 따라다니면서 어른들에게 배워 왔고 대학 시절에는 어릴적부터 배워 왔던 풍물에 대한 악보를 만들어서 정리하고 모라라거나 놓친 부분이 있나 싶어서 광양 관내 농악을 한다는 마을을 다 돌면서 수집한 자료를 악보화 하고 전국단위로 보급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도 32세 되던 나이에 광양버꾸놀이 한국농악명인 즉 최연소 나이로 농악명인의 반열에 오르고 그때도 서울 경기쪽에 유명세를 타던 곳에서 함께 해 줄 요청도 있었지만 고향을 떠나지 않고 아버님이 여기에 계시기 때문에 아버님 연세에 계신 분들을 모시고 버꾸놀이보존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부터 모든 직업과 생업을 버꾸놀이를 가르치는데 두고 광양관내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럽 호주 아메리카에 까지 제자들이 나가서 활동하고 있을 만큼 확장을 했고 30여 년을 전승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까 제 손을 거쳐 간 사람들만 해도 75,000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광양읍 사곡리 본정마을에는 3년 전부터 이곳을 임대해서 터를 잡고 전수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기자 : 버꾸놀이를 계승발전해야 겠다는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양 이사장 :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세계에 모든 존재하는 악기들은 소리를 내서 연주를 하고 신호를 하는 그 기원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유추를 하게 되고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공부하게 되면서 논문을 쓰고 자료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제가 결론 내어진 것으로는 그게 북이었다는 것이지요.

버꾸라는 악기는 현재 대한민국의 사물놀이나 관혁악이나 모든 국악에서 쓰이는 그 북에 대해서는 가장 원초적이다고 볼 수 있고 샤먼들이 썻던 바이칼의 집행을 할 때도 북을 사용했다는 역사성에 대해 직접 바이칼을 방문해 인류의 시초의 음악이 북이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제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먄 광양을 포함한 전남 서 남해안권이 남해에서 출발해서 영광까지 이르는 지역이 공통적으로 버꾸라는 악기를 이용하게 되는데 이 북은 광양과 한국을 떠나 세계적인 것이다.

역사성을 아우를 수 있고 인류가 현재까지 음악을 만들고 춤을 추고 의식을 집행하고 하는데 결코 빠져서는 안되는 공통적인 악기이다.

현재 광양의 지형적인 위치나 광양에서 향해지고 있는 국제적인 항만도시 철강도시를 포함해 남해바다랑 연결 돼 있는 여건에서 북 하나를 가지고 세계적인 문화의 공감대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지금까지 제가 해오고 있는 일들이 정평을 얻었고 그것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가치가 있고 발전가능성이 있는 최고의 수준에 달 할 수 있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저랑같이 전수에 임하고 타 지역에 까지 전수 하고 보급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기자 : 음악교육학을 전공한 것으로 아는데?

양 이사장 : 경영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다가 광고 심지어 TV광고 까지 손 대보았고 공연 전시 뿐만 아니라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광양의 이경모 선생 사진전 기획 같은 경우도 있었고 후진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음악교육학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음악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역사성과 민속적인 영역들을 그동안 연구해왔던 자료들을 논문으로 발표하고 책자화 하기 위해서 민속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어떻게 보면 학자로서 음악교육의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은 많고 많은 곳을 혼자서만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제가 방향제시를 해 드리고 같이 하고자 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공부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듯이 역사적으로나 현대적 증명을 해 내는데도 그 만큼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기자 : 버꾸놀이 본존협회의 앞으로 계획

양 이사장 : 1차적으로 1998년도 광양버꾸놀이 12마당 재현 발표회를 제 1회 전어축제를 통해 추진 했고 20여 년이 지났는데 그만큼 어떤 양 질적으로 큰 굿 한마당을 치루어내지 못했습니다.

관심있는 주변과 매칭해서 추진을 했어야 하지만 개인의 힘의 한계 등 환경적인 측면의 걸림돌이 많았지만 이 전수관에서 배출된 사람들 그리고 새롭게 찾아 오실 분들과 같이 연구하고 다듬어서 다시 한번 12마당을 재현 발표하는 것 하고, 좀 더 시설이 좋은 곳으로 건물을 지어서 옮긴다던지 임대를 하던지 해서 광양농악하고 광양의 민속적인 것을 행할 수 있는 광양시립이던지 전통연예단을 꾸려 준다던지 하는 것이 가장 바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지정문화지정자나 국가문화지정자로 심사중에 있는데 저희 아버님 연배때에 문화지정자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룰 수 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광양 초.중등 학생들을 모아서 청소년전통문화예술단을 꾸려 보는 것이 근자에 치루어 낼 수 있는 목표이고 그 이후의 목표는 치루어 나가면서 계획하도록 할 예정이다.

기자 :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양 이사장 : 광양버꾸를 비롯한 북을 사용하는 것은 사냥이나 정보전달을 위한 부호와 문자 등이 있었지만 청각적인 북이 만고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국가적인 위기상황일 때 광양북을 들고 광화문과 탑골공원으로 직접 올라가서 참여해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극복했고 위급할 때 언제나 북이 앞장 섰다는 것과 지역이 어려울 때도 북이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열심히 북을 치고 있으며 그 소리를 들어 주시고 관심가져 주시고 거기에 걸맞는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잇는 지자체와 도 단위 광역단체 나아가 국가적인 정책들에 반영돼서 더 늦기전에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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