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봉 정건남선생, 국내140바퀴 돌며 신인작가 발굴

일봉 정건남 선생님 작업중인 그림 옆에서 / 사진 =문지선기자

[뉴스프리존=김하경, 문지선 기자] 화실 한켠에 마을 한 곳이 엿보인다. 밭이 없지만, 동네 사람들은 뱃일을 해 빨간 창고에 양식을 채워놓는다. 한 아이와 그 엄마는 머리에 음식을 올리고, 아이는 강아지와 앞서가며 옆 동네 친척집을 간다. 저고리가 짧아 살이 저 멀리서도 다보인다.

'고향'작품을 그린 일봉 정건남 선생님을 만났다.

한국 최초 국제 미술전을 열은 단체의 장으로 전국을 140여바퀴를 돌며 신인작가들을 발굴해 왔다. 복지없는 예술가들의 연합으로 서로 보호해주고 어떻게 작가들을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단체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활동해왔다. 그는 함께하는 동료들을 위해 아직도 연구하고 40여년째 앞서서 신인 작가 양성을 위해 애쓰고 있다. 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으로 남다른 입담과 바른 소리로 유쾌함을 주는 일봉 선생님의 걸어오신 인생 길을 들어보았다.

<약력>

국가 공인. 대한민국문화체육예술총연합회 명예회장

국회종합에술진흥원,국제종합에술대전 대표

중국 훈춘 서화함수대학교, 명예부총장, 중국 훈춘 서화학회 부회장

서울 특별시 의회 교육문화상

한국미협 자문위원, 부산미협한국화 자문위원

자랑스런 한국문화 예술 대상, 심사위원장

일봉 정건남 선생님 작품 - 고향 / 사진 = 문지선기자

1.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국제종합예술진흥회 대표 정건남 (78) 입니다. 지금은 대한민국문화대상심사위원으로 있습니다. 작가로서는 저는 일봉 선생이라고 합니다.

2.주로 그리시는 그림은?.

▶저는 자연을 담은 동양화를 그립니다.

3.서양화는 그렸다가 지울 수있지만, 동양화는 먹으로 그리기 때문에 한 번 그린 다음엔 수정 할 수 없습니다.

▶항상 자연과 함께하지요. 어딜 가든 무엇을 보든,  멋진 풍경은 눈으로 사진을 찍어 여기 화실에서 그립니다. 그런데 행정일도 봐야 하다보니 1년에 6개월 정도 밖에 그림을 못그려요. 작가들은 가만히만 있어서는 안되고 계속 그려봐야 합니다.  회장이고, 심사위원맡고 하다보면 이곳 저곳에서 좋은 말 한말씀씩 하러 와달라고 하지만, 그런 명예가 아니라 그림을 그려야지요.

4.그릴때는 내가 그림 안으로 들어가서 그려요. 구도도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따라 그리는게 아니라 나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들어오면서 봤던 '고향'이라는그림도 그리고 나니 동네에 밭하나도 없는거에요. 어떻게 먹고사나 싶어 배한척그려놓고, 창고도 그려놓았습니다. 마을사람들도 먹고살  수 있도록요.

3.국제종합예술진흥회 소개 해주세요.

▶90년대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계대전이 열렸는데 바로 우리 단체에서 했어요. 국내 최초였지요. 대한민국의 많은 대가 들과 함께 했었어요. 지금은 연세가 있으셔서 하늘에서 지켜봐주시는 분도 있으실겁니다.

옛날부터 돈은 걱정하지않고,  남다르게하기도 했어요. 작품 실은 책도 옛날에 칼라로 책을 칼라로 만들었어요. 그때 당시에 색깔별 도수도 맞춰서 해야 했기에 다른 단체에서는 흑백으로 작품 책 만들때였습니다. 칼라로 작품 책 내놓으니 집 팔아서 만드냐는 얘기도 들었습니다.(웃음)

4.어떻게 국내도 아닌 국제로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85년도 중국으로 가서 우리나라와 작품 교류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통일부에서 허가 봤고, 중국의 예술단체를 다니면서 대가들이 소개 해 달라했습니다. 중국의 대가들이 그림 20점씩 들고 왔었지요. 왜냐면 공산국가다 보니 외국엔 나갈수 없기에 작품을 주시며 한국에서 소개 시켜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북 작품은 필요없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러더니 북한 작품과 소련작품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한국에가지고 오게됐고, 미국,영국,프랑스 각2명 씩 심사위원을 세워 90년도에  한국 최초로 세계국회 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국제 종합에술대전을 열어 세종회관에서 한국의 유명한 작가님들이 외국 작가들에게 시상하고 포상했습니다. 국제 종합예술대전은 한국의 자랑, 세계의 자랑이였습니다.

4.단체 만드시게 된 이유는?

▶예술인들 도와주어야 예술단체지요. 제가 잘 아는데, 그림 잘 그리는 우리 작가들은 정말 가난합니다.  그림 그릴 때 들어가는 색은 그림의 멋을 내주면서 돈이지요. 그래서 우리 작가들을 돕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작품에는 메이커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 단체에서 받은 상으로 그 가치는 달라집니다. 단체가 되어야 보호해줄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작가들을 위해서도 이런 단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5. 이렇게 되기까지 전국을 안 가본 곳 없이 곳곳을 다니며 140 바퀴는 돌았을 거예요.

▶미술 학원 등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신인 작가들을 다 찾아다녔어요.  상 받으면 그 상도 갔다 주고 했습니다.

6.앞서서 하시며 하고 싶으신 일은?

▶30대 때부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지금의 동양화는고개를 점점 더 숙이고 있습니다. 대가들도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줄어들고요. 내가 더건강하면 더 돕고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작가들을 보호하고, 함께 위상을높일 수 있도록 만드는 길을 닦아주고 싶습니다. 앞으로 봉사와 신인 발굴에도 우리가 더  신경써야 합니다.

7.전하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다면?

▶술이 취해도 집에 들어가 그림하나라도 그려봐야합니다. 전에 한번 동양화 대가를 찾아갔습니다. 그 분에게 100여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가인 분은 신문지가 잔뜩 쌓아 놓고 앉아서 붓을 들고 줄긋기 연습을 하는 겁니다. 미술 초보자들이 하는 것 똑같이 하고 있는거예요. 이 관경을보고  저는 "선생님, 뭐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선 하나 제대로 긋지 못하는데, 선생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래"라고 하시며 대한민국의 대가가  제자들과 앉아 그렇게 연습하시는 한결같고 기초에 충실한 모습을 보고 이런 사람이기에 대가가 될 수 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기초에 충실하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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