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3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겨우 이렇게 대접한 단 말인가!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를 무시하였다 생각하니 불쾌하고 섭섭하였다. 생활형편이 어렵다면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나 같으면 성찬은 아니더라도 삼겹살 파티나 닭 도리탕 정도로 간단하지만 먹음직하게 차렸을 것이다. 우리가 메마르고 허전한 식사를 마치자 그의 남편이 돌아와서 커피를 마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원한 베란다 쪽으로 옮겨서 화투를 치기 시작하였다.

“어렸을 때 너 이것 일등이었잖아!”

언제나 삔 따먹기와 화투에서 나에게 졌던 은지는 그 옛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민화투를 치자고 하며 나에게도 화투를 던졌다. 나는 그것을 밀치며 구경만 하고 따분하게 하품을 하였다. 옆에는 미자가 등에 업고 온 승재가 재롱을 떨고 있었다. 화투를 깔고 있는 자리에 아이가 다가와서 화투를 집으려고 하였다. 영석은 그 아이를 자신도 모르게 밀쳐내려 하다가 볼을 어루만지고 귀여워하였다. 아이는 초승달이 떠 있는 화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커다란 눈동자를 깜박였다.

“아이! 귀여워! 우리는 왜 아기가 생기지 않는 거야, 너 때문이야!”

늘 습관적으로 내뱉던 말인 듯 그는 자연스럽게 쏟아 부었다.

순간 은지는 가장 불행한 표정으로 나락하고 있었다.

“왜 그런 기계는 안 나오나? 이 여자와 남자가 결혼하면 아이가 생기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아맞히는 기계 말이야!”

기가 막혔다. 나는 은지가 인물도 볼품없고 하는 짓도 덜 돼 보이는, 이 남자에게 무엇에 반하여 결혼하였는지 의아하였다. 정말 은지가 아까웠다. 은지의 표정은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지만 애써 그 표정을 감추려고 명랑한 척 하였다.

“자, 어서 해. 네 차례잖아!”

은지는 신경질적으로 못들은 척 하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 미자에게 다그쳤다.

“응, 아! 벌써 만원이나 잃었어!”

미자가 돈을 잃어 좀 따분해 하며 시계를 쳐다보았다

“어머? 벌써 아홉 시네! 이제 일어나자, 더 어둡기 전에!”

“왜 벌써 가려고?”

잠깐 돈 따는 재미에 빠져있던 은지는 과장하며 뭔가 잊어버리려 애쓰는 듯하였다. 집에 돌아가려고 현관 입구에서 비스듬히 열려있는 방이 보였다.

“여기는 무슨 방이니?”

내가 그 문을 밀치며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피아노가 놓여 있고 첼로도 놓여 있고 클래식 기타까지…… 그리고 방안의 벽엔 명화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화와 초상화가 여기 저기 놓여 있었다. 그것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실내 장식이었다.

“너 전시회 할 거야? 왜 이렇게 그림이 많지?

“응, 좋은 것 사모아 두었던 거야. 아기가 생기면 정리하려고 그래!”

말끝을 흐리며 말하던 은지의 표정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손님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마음을 쓰니 무슨 복을 받겠어!’

그날 몹시도 서운하였고 은지에 대한 친구관계도 멀어져갔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은지와 나는 바다를 끼고 있는 조그만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소꿉놀이를 같이 하는 단짝동무였다. 은지는 우리 마을에서 논과 밭을 제일 많이 소유한 부잣집 딸이었다. 부잣집의 딸이라 그런지 피부도 곱고 키도 크고 또한 가족 중에 막내라 형제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 하였다.

▲시골의 어느 민박집 모습

내가 부러워하는 모든 풍족한 것을 다 가졌고 거기다가 공부도 잘하여 나와 언제나 전교 1,2등을 다투었다. 나는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었고 일곱 남매 중에 첫째인 장녀였다. 맏딸로서 가난한 식구들의 경제난에 동참해야 했다. 은지네 마당에는 겨울 내내 따뜻하게 난방 할 땔감의 볏단이 높이 올라가 쌓여 있었지만 우리 집의 조그만 마당에는 갯벌을 막아서 자라난 잡초들을 땔감으로 쌓아 두었는데, 그것은 낮고 엉성하게 쓰러질 듯 말듯 초라하였다. 겨울의 땔감을 미리 떨어지기 전에 나는 갯벌의 허허벌판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잡초들을 자르러 나가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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