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대전동물원에서 사육사 관리 부실로 탈출했다 이날 밤 사살된 퓨마 '호롱이'의 생전 모습./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2014년, 경기도의 한 동물원 여느때처럼 악어쇼가 이어지는 도중, 악어가 갑자기 조련사의 손을 물었다. 조련사의 오랜 학대에 이상 행동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3년 전에는 폐쇄된 동물원에서 희귀동물이 죽은 채 버려져 큰 충격을 줬다. 왈라비, 코아티, 비단뱀 등 보호종 17마리가 쓰레기통 등에서 발견됐다. 동물원에서 끊이지 않는 학대 사고를 막기 위해 이른바 '동물원법'이 재작년 제정됐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역사적 순간을 남긴 18일 저녁, 화제의 중심은 다른 곳에 더 많이 쏠렸다. 다름 아닌 퓨마였다.

이날 5시10분쯤 대전 동물원 '오월드'에서 퓨마 한 마리가 탈출했다는 소식이었다.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사육사 부주의였다. 이에 태풍·지진 때나 보던 긴급재난문자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갔다. 외출을 자제하고 주의해달란 내용이었다.

탈출한 퓨마 이름은 '호롱이'. 8년생 암컷이었다. 몸무게는 약 60kg으로 성격은 온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8년간 갇혀 지낸 호롱이는 우리 밖으로 처음 뛰쳐 나왔다. 탈출을 지속했던 시간은 약 4시간34분 남짓. 멀리 가지도 못했다. 동물원 내에서 배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동물원 대부분이 여전히 동물을 우리에 가둬놓는 관람형이기 때문이다. 18일 대전 중구 대전 오월드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 호롱이가 끝내 사살되면서 동물원의 존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동물을 해치는 동물원을 폐지해주세요’ ‘관리 소홀히 한 사육사와 퓨마 죽인 엽사 처벌해주세요’ 등의 제목으로 비슷한 청원 글 70여 건이 올라왔다. 18일부터 이틀간 올라온 동물원 폐지 청원에만 4만8100여 명이 동의했다. 청원인들은 “퓨마를 충분히 살릴 수도 있었는데 사살을 감행했다. 잘못은 동물원 관계자들이 해놓고 죄 없는 퓨마를 죽였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아닌 넓은 평지에 동물을 풀어놓는 방식이 도입되기는 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동물보호 단체들은 동물원의 본래 기능이 종의 보존인 만큼 동물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쪽으로 동물원이 운영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 동물학대가 불가피한 체험동물원과 동물원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소규모 야생동물카페를 관리할 방안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동물보호 시민단체 케어는 19일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동물원에가지않기' 해시태그를 공유하자”며 “죄 없는 감옥을 탈출한 퓨마는 단 4시간의 짧은 외출로 삶이 끝났다”며 동물원 안 가기 운동을 촉구하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인 동물해방물결도 이날 공동 성명서를 내고 “대전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 한 마리가 결국 사살됐다. 관리에 소홀했던 점, 동물원을 채 벗어나지 않고 소극적 태도를 보였음에도 사살하기로 결정한 점 등의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야생동물이 있어야 할 곳은 동물원이 아니라 자연”이라고 강조했다.

짧게 맛본 자유의 대가는 컸다. 마취총을 쐈지만 듣지 않자 이날 밤 9시44분쯤 결국 사살됐다. 오월드를 관할하는 대전도시공사 유영균 사장은 19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일몰 후 날이 어두워지고 원내에 숲이 울창해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될 경우 시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상황에 따라 사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도한 사살이었단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마취총을 더 쏘지 그랬느냐, 동물원 내에 가만히 있었다는데 생포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었다.

▲ 18일 대전 오월드에서 사육장을 탈출한 암컷 퓨마 호롱이가 수색 끝에 결국 탈출 4시간 반 만에 사살됐다. - 연합뉴스 제공

이와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방에는 19일 오후 기준 퓨마 관련 청원만 80여건이 쏟아졌다. 해당 동물원을 폐쇄해달라는 청원은 하루 만에 4만명이 넘는 지지를 받기도 했다.

호롱이의 죽음을 계기로 동물원 내 야생동물들의 복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퓨마만 해도 굉장히 넓은 지역을 점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세력권을 되돌아보는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보고도 있다. 저지대 열대우림, 습지, 초원, 건조한 덤불지역 등을 가리지 않으며, 해발 3350m에도 사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야생성을 가진 동물들을 좁은 사육장 안에 평생을 가두는 것이다.

대형 동물원은 사육 환경 기준이 있어 그나마 낫지만 소규모 동물원들 사정은 더 열악하다.

스트레스를 받은 야생동물들은 이상 행동을 보인다. 대표적인 게 '정형 행동'이다. 동물행동심리전문가인한준우 서울연희실용전문학교 교수는 "울타리에 갇힌 동물들이 같은 장소를 계속 왔다갔다 하는 게 정형 행동"이라며 "난폭한 행동도 아무래도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동물원 동물들의 복지를 위한 세심한 법제화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5월부터 시행 됐지만, 동물원 동물들의 복지는 요원한 실정이다. 동물원 설립 및 운영 근거만 나와 있고, 구체적인 동물권 관련 조항은 미비한 '반쪽짜리 법안'이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전시 동물의 복지가 미비하다. 해외에서는 100년 전부터 중시하고 고민해오던 것들"이라며 "콘크리트 사육장에 가둘 것이 아니라, 야생동물들의 생태적 습성을 고려한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야생동물들의 본능을 일깨우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한 교수는 "동물들이 사냥감을 잡아 먹는다던지 번식행동을 한다던지 구애행동을 한다던지 그런 걸 자연스럽게 해야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며 "먹이를 줄 때도 (사냥 본능을 자극하는 등) 무언가 일해서 스스로 먹을 수 있게, 그런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시에 따르면 오월드 동물원에서 암컷 한 마리가 18일 오후 5시 10분경 우리를 탈출했다. 사육장 내부를 청소한 사육사가 뒤쪽 철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됐다. 탈출한 퓨마는 201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2013년 대전으로 옮겨온 암컷으로 몸무게 60kg에 이름은 ‘호롱이’였다. 동물원 측은 5시 15분경 119에 신고를 접수했고 대전광역시청은 5시 38분경 긴급재난문자를 보냈다. 그때부터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수색을 시작한 지 1시간 20분 만인 오후 6시 35분경 수색대가 오월드 내 우리에서 200m 떨어진 뒷산에서 퓨마를 발견하고 마취총을 쐈지만 퓨마는 시야에서 다시 사라졌다. 이후 오후 8시 20분경 다시 발견됐지만 역시 포획에는 실패했다. 결국 날이 어두워지면서 퓨마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한 오월드 측은 “퓨마가 오월드 울타리를 넘어 도망갔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매뉴얼에 따라 사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결국 경찰과 소방당국은 오후 8시 38분경 엽사와 사냥개를 투입했고 퓨마는 탈출한 지 4시간 30분 만인 오후 9시 44분경 엽사에 의해 사살됐다.

▲ 대전 오월드 퓨마 호롱이의 생전 모습. - 대전 오월드 제공

● 동물 복지 선진국에서도 시민 위협 판단 땐 동물 사살

탈출한 동물을 사살하는 일은 동물복지 선진국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다. 앞서 올해 6월 독일 서부 룩셈부르크 인근의 아이펠 동물원에서도 사자 2마리와 호랑이 2마리, 재규어 1마리, 곰 1마리 등 총 6마리가 우리를 탈출하는 사고가 있었다. 전날 밤 태풍과 뇌우로 인해 우리가 망가지면서 동물들이 우리 밖으로 탈출한 것이다. 다행히 맹수 5마리는 물이 빠지자 다시 서식지로 돌아왔지만 계속 우리 밖에 있었던 곰 1마리는 결국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사살됐다.

아이펠 동물원과 라이프치히 동물원을 비롯한 독일 내 동물원 대부분은 야생과 유사한 환경으로 조성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먹이를 숨겨 놓거나 사냥해서 먹도록 하는 훈련 프로그램도 실시한다. 동물들이 우리 안에 있지만 최대한 야생에 가깝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동물복지 운동이 활발한 네덜란드의 동물원들도 야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광경으로 동물들의 복지는 물론이고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동물원에서도 동물이 탈출하는 사고는 벌어진다. 2016년에는 라이프치히 동물원에서 두 마리의 사자가 우리를 탈출해 한 마리는 포획되고 한 마리는 사살된 바 있다. 독일 뒤스부르크 동물원에서는 2015년 오랑우탄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해 시민들을 위협하면서 사살됐다. 지난해에는 독일 오스나브뤼크 동물원에서 곰이 우리 밖으로 나가 사살한 일이 발생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 된 로테르담 동물원은 2007년 우리를 탈출한 고릴라 한 마리가 시민 4명에 부상을 입히는 등 위협을 일으켜 사살했다.

동물원 안전 관리와 동물의 복지는 별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동물원 및 수족관 연합회(BIAZA) 회장인 커스텐 풀렌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동물의 복지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생명이 항상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며 “시설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안전을 고려해야 하지만, 만약 위험한 동물이 동물원에서 탈출해 시민들이 있는 공공 장소로 나온다면 그 동물은 사살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독일 아이펠 동물원의 사자. - 아이펠 동물원 제공

동물 보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동물원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동물원에서 좁은 우리에 갇혀 있거나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동물들이 하나같이 이상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근거도 다수 발표됐다.

폴 로즈 영국 엑스터대 동물행동연구센터 연구원 팀은 동물원 동물들이 계속 안절부절 하며 한 자리를 맴돌거나 자신의 배설물을 먹고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는 등 야생 동물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한다고 지난해 3월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베테리너리 비헤이비어’에 밝혔다.  2016년에는 영국 플리마우스대 연구진이 코끼리, 기린 등 동물원 동물들을 대상으로 행동을 관찰한 결과, 낯선 사람과 있을 때 동물들의 이상행동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밝혀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어플라이드 애니멀 웰페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 멸종위기종 보호, 동물 대신 사람이 갇혀 관람…동물-인간 상생 길 찾는 동물원

그러나 동물 학대와 사살을 막자고 동물원을 아예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동물원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년 간 동물원은 시민들에게 동물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애호 정신을 길러 주는 교육 현장이자 도심에서 휴식과 오락을 제공해 주는 곳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야생에서 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거나 연구하는 역할도 해왔다. 환경 파괴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동물원 폐지가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마다가스카르의 멸종 위기종 알락꼬리여우원숭이는 2000년 이래로 야생 개체 수의 95%가 사라졌다.

끊임 없는 동물 복지 논란에 휩싸이며 존폐 위기에 놓였던 동물원들은 이제 생존 방식을 바꾸고 있다. 우선 동물 학대의 온상으로 지목됐던 각종 쇼가 사라지고 있다. 2013년 서울동물원(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있었던 제돌이를 제주 바다에 방류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동물원의 인기 쇼였던 돌고래 쇼가 폐지됐고 뒤 이어 홍학 쇼, 바다사자 쇼도 폐지됐다. 2016년에는 동물 복지를 고려한 동물원 시설과 운영에 대한 기준을 담은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도 새롭게 제정됐다.

미국 시애틀의 우드랜드 파크 동물원은 1980년대부터 관람객이 코끼리를 만지고 함께 놀 수 있는 코너를 대표적인 관람 상품으로 내세웠었는데, 2014년 이 코끼리가 기대 수명보다 일찍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해당 코너를 폐지했다. 당시 타임지는 “우드랜드 파크 동물원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전보다 줄어들 것을 감수하고 코끼리 관람 상품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야생 코끼리는 40~60년을 살지만 동물원의 코끼리는 길어야 20년밖에 살지 못한다.

▲미국 필라델피아 동물원. 사람들 머리 위로 사자, 호랑이 등이 자유롭게 다닌다. - pinterest

우리 안에 가두고 동물을 구경했던 기존 방식을 탈피한 신개념 동물원도 속속 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된 필라델피아 동물원은 최근 ‘동물원(Zoo)360’이라는 동물복지 이니셔티브를 출범했다. 이를 통해 필라델피아 동물원은 동물을 가두는 대신 사람들이 동물원 속 제한된 공간에서 호랑이 같은 위험 동물들을 관람하도록 바꾸고 있다. 맹수가 철조망 구름다리를 통해 사람들 머리 위로 자유롭게 다니기도 한다. 동물에게는 자유를, 관람객들에게는 생동감을 준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동물원은 최근 1600억 달러를 들여 북극 환경을 재현한 북극곰 전시관을 론칭했다. 면적이 약 1124평인 이 전시관 내부에는 5마리의 곰이 개별적으로 자연 환경을 즐길 수 있도록 바다와 빙하, 해안가, 툰드라 지역을 널찍하게 조성했다. 동물원 측은 이들이 사회적인 활동을 하기 충분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730평 남짓의 북극곰 헬스케어 시설도 마련됐다.

동물 보호기관의 역할도 점차 강화하는 추세다. 환경보호단체, 정부기관과 협력해 멸종 위기 동물들의 개체 수를 늘리고 있다. 올해로 설립 109주년을 맞은 국내 최대 규모의 동물원인 서울동물원은 올해 3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점박이물범의 새로운 개체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탄생시켰다. 올해 6월 서울 어린이대공원은 국내 동물원 최초로 동물복지윤리위원회를 설치했다.

다만 영국, 미국 등 동물보호 관련 법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는 여전히 동물 학대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날 또 다른 청원인은 “우리나라에서 동물은 민법에서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물건으로 취급되며 동물원뿐만 아니라 펫샵, 집단사육장 등 동물들의 생활은 전혀 존중되지 않은 채 그저 인간의 돈벌이로 이용되고 있다”며 “동물과 공존이 아닌 학대를 하고 있는 동물원과 기타 관련 산업들에 대한 제도적 해결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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