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의 노래

(베란다 시렁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탄조의 독백같기도 하고
신세타령의 노래같기도 한데
백여덞  개의 곶감이 이구동성이다...)

뜨거운  여름 햇빛 아래
새파랗게  탱탱하니 보암직 하던 시절은 진작에 지났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다른 과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
우리 족속의 오랜 전통이지.
천형같은 고통이지만 피할 수 없는 숙명 아니겠나.

잔잔한 가을 햇볕으로
발갛게 말랑말랑하니 먹음직해지면
우리는 살갓을 도려내야만 해.
그 다음 일이야 말해  뭣하겠어.

이렇게 발가벗겨져 찬 바람에 내맡겨진 채
온몸을 쥐여짜며 주름살 파이는나날을 감내해야  하느니.

우리 몸에 하얀   시설(枾雪)이 내리면 기꺼이 눈을 감아야지.
말라 쪼그라들수록 농밀한 향취를 더하는
우리의 팔자는  십자가의 영광과도 같구나.

그대여 수정과의 곶감를 드실 때는
잠시 눈 감고 우리네 삶의 종말을 기려주오.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곶감이라고.
ㅡ산경 11.4 시설(枾雪) : 곶감거죽에 돋은 흰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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