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11월20일 오늘은 세계어린이날 1959년 오늘 세계아동인권선언 1989년 오늘 유엔어린이헌장 채택. 오늘은 아프리카 산업화의 날. 오늘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11월20일=1865(조선 고종2)년 오늘 친일파 윤치호 태어남, 독립협회 주도, 서재필 이어 독립신문사장, 장지연과 함께 대한자강회 만들고 회장, 1911년 105인사건으로 체포 10년형 선고, 일제말기에 변절해 귀족원 의원 지냈고 광복후 친일파로 몰리자 자살.

윤치호(尹致昊)
1865~1945. 향년 81세. 정치가. 충청남도 아산(牙山) 출신. 본관 해평(海平). 호 좌옹(佐翁). 고종 18년(1881) 신사유람단 일원인 어윤중(魚允中)을 수행하여 일본에 건너가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을 비롯한 일본개화파 인물들과 교유하며 개화사상에 눈을 떴다. 이때 영어를 익혀 한․미수호통상조약 비준 때 초대 주한미국공사 L.H.푸트의 통역으로 귀국하였고,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가 되었으며, 고종과 푸트공사, 그리고 개화당간의 교량역할을 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김옥균․박영효(朴泳孝) 등과 친밀한 관계였으므로 정변 실패 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문과 기독교에 접하였다. 선교사 A.J.앨런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가서 밴더빌트대학과 에모리대학에서 영어․신학․인문사회과학 등을 공부하였다. 1895년 귀국하여, 외부협판․학부협판 등을 지냈으며, 1896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민영환(閔泳煥)을 따라 참석하였다. 귀국 후에는 서재필(徐載弼)․이상재(李商在) 등과 독립협회를 조직, 1898년에 제2대 회장 겸 《독립신문》 사장이 되었다. 그해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정부의 매국적 행위를 공격하면서 일본인에게 아부하지 말 것, 외국과의 이권계약을 대신(大臣) 단독으로 하지 말 것, 언론․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것 등 시정개혁안 6개조를 결의하고 국정에 반영시키려 노력하였다. 그 뒤 황국협회의 모함과 테러의 위협으로 피신하였으며 독립협회도 해산당하였다. 1899년 덕원감리겸 덕원부윤으로 임명되는 등 관직에 올랐으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퇴하였다. 1906년 장지연(張志淵)․윤효정(尹孝定) 등과 대한자강회를 조직,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교육사업과 국력배양에 힘썼다. 1910년 대한기독교청년회(YMCA)를 창설하여 청소년계몽운동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개성에 한영서원을 설립하고 평양의 대성학교 교장 등을 지냈다. 1911년 105인사건으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15년에 석방되었다. 출옥 후 YMCA 회장, 연희전문학교 교장 등을 지내며 국권회복을 위한 민족의 실력향상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는 친일단체에 깊이 관여하여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조선임전보국단 고문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일제 말기에 한때 변절, 일본제국의회의 칙선 귀족원의원을 지냈으나, 8․15광복 후 친일파로 규탄받자 자결하였다. 저서로 《우스운 소리》 《영어문법첩경》 등이 있다.

1921년 2월 6일 일요일  

▲ 윤치호 일기의 원보(原譜). 1940년 8월 10일 일기의 일부다. photo 산처럼

홍영후의 편지를 읽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작년 1~2월쯤 도쿄에 가서 음악을 공부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그가 간청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에게 100원을 주었다. 9월 언제쯤인가 또다시 수표로 100원을 주었다. 나중에 50원을 더 주어서, 유학비용으로 모두 250원을 대주었다.

한 달 전 그가 다시 편지를 보내와 바이올린을 사게 250원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공부하는 중에 250원짜리 바이올린을 사는 건 내 아들이나 동생이라도 절대로 승낙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답장을 썼다. 남에게 돈을 받아 공부하면서 생활비 전액을 대달라고 하는 것이나, 고학생이 250원짜리 바이올린을 갖고 싶어 한다는 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발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배달된 편지에서, 그는 구두쇠의 죄악에 대해 내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는 조선의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자기 재능을 계발할 만한 아무런 수단이 없는 조선의 천재와 영웅들의 운명을 비관했다.…

1931년 4월 중순의 일기에서 윤치호는 조선 사회에 만연한 지역주의에 대한 언급하고 있다.

1931년 4월 17일 금요일

두 가지의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조가, 다시 말해서 소수의 양반 가문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고 백성의 호전성을 제거한 이조가 1905년에 사라졌다. 하지만 파벌의 전통과 편견과 정신은 지금도 예전 못지않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안창호가 아끼는 서북파(평안·황해도 출신)가 기호파(서울·경기 출신)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와이나 미국, 시베리아나 중국 등 조선인이 살고 있는 모든 곳에서 이 두 파벌은 도저히 용해될 수 없는 적대감을 지니고 있다. 서북파는 기본 방침으로 일본인을 몰아내기 전에 기호파의 씨를 말려야 한다고 선언했단다. 해외에 나갔다가 돌아온 기호인은 한결같이 두 진영 사이에 적대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 점에서 서북파에 더 큰 잘못이 있는 것 같다. 모든 조선인이 폭풍우가 이는 바다 한가운데서 한 배를 타고 있는데, 안창호 같은 인사가 어떻게 이 하잘것없는 분파정신과 증오심을 고취할 수 있는 건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1935년 12월 일기에서는 여러 곳에서 최남선, 이광수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신사참배 문제로 갈등하는 사회에 대한 언급도 보인다.

1935년 12월 9일 월요일

최남선군은 태양-태양신-숭배가 조선과 일본 역사의 여명기에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조선인의 영적 생활을 소생시키려면 불교나 유교가 아니라 조선의 건국신화에 귀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일본인 당국자들의 계획과 잘 맞아떨어진다

1935년 12월 12일 목요일

교육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장로교 선교사와 군부 지도자의 명령에 복종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표를 내야 하는 총독부 당국자 간에, 신사참배 문제가 첨예한 쟁점이 되어가고 있다.

1935년 12월 27일 금요일

일본은 공식 발표도 하지 않은 채 조선인에 대한 이주제한법을 시행하고 있다. 조선인은 계층을 불문하고, 일본의 어느 지역을 방문하건 간에 여권을 지급받아야 한다. 한 도시를 방문할 수 있는 여권은 다른 도시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지난 봄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자 다소 친일적인 인물인 이광수군이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일본에 가려고 여권을 신청했다. 일본에 공부하러 간다는 이유로 그의 부인에게는 여권이 발급됐다. 그러나 이광수군과 그의 아들에게는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여권을 얻으려고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미국인을 비난하고 있다. 난 최근에 사가와씨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1937년 7월,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미국·영국과 갈등관계에 접어들었다. 1940년 일본은 독일·이탈리아와 삼국동맹을 체결했고,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제2차 세계대전에 가담했다. 일본은 자국과 조선의 국가체제를 전시동원체제로 전환시켰다. 윤치호는 중일전쟁 이후 전개되는 동북아 정세와 유럽 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1938년 3월 13일 일요일

신문 보도에 따르면,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될 거라고 한다. 히틀러가 빈에 갔고, 독일군이 이미 국경선을 넘었다고 한다. 이제 유럽 열강의 외교관들이 도장을 찍었던 역대 서류 중에서 가장 비열하고 비합리적인 베르사유조약의 마지막 장이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렸다. 그 당시 프랑스는 샤일록 역을, 미국은 윌슨을 통해 돈키호테 역을 맡았다. 또 영국은 프랑스를 편들면서 탐나는 것들을 모두 가로챘고, 윌슨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그를 국제연맹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평화기구의 아버지로 만들었다.

1941년 12월 26일 금요일

오늘 조간신문이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최근 18일 동안 일본군의 맹공에 맞서 홍콩을 끈질기게 방어해왔던 영국군 사령관이 어제 오후 5시50분에 끝내 항복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동양에서 찾기 힘든 인종적 편견과 거만함을 지녀왔던 영국 제국주의의 최후 거점이 함락됐다. 난 이것이 영원하길 빈다. 일본은 동양에서 백인의 지배를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모든 유색인종의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1896(고종33)년 오늘 독립협회 독립관 준공
1897(고종34)년 오늘 독립문 준공
1905년 오늘 장지연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 날을 어찌 통곡하지 않으랴)’ 씀 “저 개 돼지만도 못한 정부대신이라는 자는 자기의 영달과 이익을 바라고 위협에 겁을 먹어 머뭇거리고 벌벌 떨면서 나라를 팔아먹은 도적이 되어 4천년을 이어온 강토와 5백년 사직을 남에게 바치고 2천만 생명을 모두 남의 노예 노릇을 하게 하였다....동포여! 아 원통하고 분하도다. 2천만 동포여! 살았느냐, 죽었느냐, 단군 기자 이래 4천년의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끝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도다. 동포여! 동포여!”
1958년 오늘 농협중앙회 발족
1975년 오늘 대구 서문시장에 불 점포1.900개 불탐
1985년 오늘 제5차 남북한경제회담 판문점서 열림
1998년 오늘 북한간첩선 서해로 침투. 빌 클린턴 미대통령 방한
2002년 오늘 주한미8군군사법원 배심원단, 두 여중생 사망(2002.06.13)사고 관련 과실치사혐의로 기소된 궤도차량 관제병 무죄평결
2005년 오늘 이수일 전 국가정보원2차장 X-파일수사중 혐의 드러나자 자살
2007년 오늘 진도씻김굿 보유자 박병천 세상떠남.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려는 모임 반올림 결성
2012년 오늘 한국영화 연간관람객 사상처음 1억돌파, 2006년기록(9천174만명) 갱신
2014년 오늘 손영조씨(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 비전문산악인으로는 세계최초로 7대륙최고봉 오름
2015년 오늘 레즈비언 김보미씨 서울대총학생회장 당선
2016년 오늘 검찰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기소하면서 헌정사상 첫 현직대통령 박근혜 피의자 입건
1910년 오늘 레프 톨스토이 세상떠남, 이날 가출해 아스타포보의 조그만 정거장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침 『부활』 『전쟁과 평화』 “행복한 가정은 한결같이 같다. 불행한 가정은 각각 그 결말에 따라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머리
1915년 오늘 후야오방(호요방) 중국공산당 총서기 태어남
1945년 오늘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 시작
1954년 오늘 미8군사령부 일본으로 이동
1962년 오늘 케네디 미대통령 쿠바해상봉쇄 해제선언
1975년 오늘 스페인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 세상떠남(83세)
1977년 오늘 사다트 이집트대통령 이스라엘의회 연설
1989년 오늘 체코 반정부연합체 결성, 10만여명 개혁요구시위
1993년 오늘 마케도니아 비행기 스페인 오흐리트 공항에서 추락 승객.승무원116명 전원사망, 제네비를 떠나 스커페 공항 착륙 예정이었으나 공항 상공의 안개로 남부 오흐리드 공항 착륙시도하다 추락
2015년 오늘 영국가수 아델 앨범 ‘25’ 발매, 일주일만에 338만장 팔려 역대 일주일최다판매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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