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칼럼니스트

인연(因緣)이란 무엇일까요? 인(因)과 연(緣)! 불교에서는 일체의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하여 생기거나 그치며, 또 변화하거나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다른 것으로부터 간섭하는 초월적(超越的)인 작용을 배제합니다. 인연이라는 것은 전생이던 이생이던 관련이 있는 이들이 꼭 만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 그 많고 많은 인연 중에 가장 소중한 인연은 누구일까요?

안녕 김경희 시인은 참으로 오랜 전생부터 깊은 인연을 맺어 왔던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다음 카페 [덕화만발(德華滿發)]에 몇 년 전 김 시인이 등장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가 많은 독자의 감동을 몰고 왔습니다. 인연이라고 직감한 저는 즉각 차를 달려 안동 경희 시인과의 반가운 해후(邂逅)를 하고 의기가 상통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었기에 이생에서 또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나의 운명에 큰 이로움을 주었고 다시 또 내생에 태어난다 해도 우리는 상생의 선연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에 진리 전에 서로 기도 올리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인연이란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우리들의 성실한 만남 속에서 인생의 행복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연인 우리 경희 시인이 이번에 시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펴낸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저를 보고 시평(詩評)을 쓰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아직 다른 사람의 시집에 시평을 쓸 능력이나 자격이 모자라기에 완강히 사양을 했습니다.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평은 아니고 경희 시인과의 인연을 장황히 밝힙니다.

경희 시인의 시는 아름답습니다. 때로는 처연하기 짝이 없어 독자들의 가슴속에 세찬 비를 뿌립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경희 시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보듬고 함께 울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 중 두 편의 시를 감상해 볼까요?

가끔은 뵈었으면 합니다./ 편지 한 장 써서/ 빨간 우체통에 띄우고/ 당신 올까 우편함 열어 보고 싶습니다./ 가끔은 바람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손끝 사이로 빠져나가는/ 라일락 보랏빛 향기이기에/ 화원에 들러 한 아름 사고 싶습니다.

가끔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휘휘 저어 노랗게 물들이고 싶습니다. /정처 없이 떠도는 바람이 가여워/ 바람을 잡아 푸르게 색을 입혀/ 노랗게 물든 하늘 속에 넣고 싶습니다./ 마음대로 내동댕이친 그리움/ 손꼽아 기다리는 간절함/ 살아가는 의미조차 흔들리기에/ 가끔은 눈물 나도록 보고 싶습니다. -<그리움 II>-

가을비 내리는 날/ 구멍 숭숭 뚫린 몸으로/ 먼 길을 나섰다./ 꿈꾸듯 거닐던 초록의 향연/ 홍 엽의 물듦으로 이제 깨어나/ 걸머진 삶 비워 냈다/ 바람이 데려다 놓았던 오늘/ 어제 왔던 그 길로/ 바람은 데려갈 채비가 한창이다.

바스라져 형체가 없다 한들/ 처음부터 내 것은 아니었기에/ 설음도 미움도/ 배부른 투정이겠지/ 가을비 내리는 그 밤/ 구멍 뚫린 몸도 바스라져/ 이별 식도 사치였을까?/ 그렇게 빗물조차/ 젖지 못한 채/ 바람이 데려온 곳으로/ 난/ 가고 있다. -<낙엽>-

어떠신가요? 때로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달리고, 때로는 처연함이 독자들의 심연(深淵)에 난폭하게 돌을 던집니다. 아마 그것은 본디 경희 시인이 심성이 해맑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들어내서일 것입니다. 때로는 처연한 삶을 노래하는 것은 아무래도 한참 행복을 노래할 시기에 그만 건강에 자신을 잃었을 때의 처절한 절규였음을 저는 압니다.

이제 김 시인은 마음껏 아름다운 시로 독자들에게 심금을 노래할 때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지 않던가요? 그 아름다움을 미당문학회장 이언 김동수 교수님은 다음 네 가지에서 온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아름다움(美)은 생기(生氣)에서 온다고 하였습니다.

주역(周易)에서는 ‘미(美)’의 근원을 생기(生氣)에서 찾고 있습니다. 생기(生氣)는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필수 조건이지요. 이러한 생기는 사물의 탄생과 발전 곧, 생존과 생장에 유리한 기본 덕목입니다. 그만큼 생기는 우리의 생(生)을 이롭게 하는 유쾌한 체험, 곧 미의 근원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아름다움은 ‘음(陰)과 양(陽)’의 조화에서 온다고 하였습니다.

일체의 사물은 음과 양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성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이질적인 양자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 즐거움이 발생합니다. 음과 양, 모남과 둥글음, 강함과 약함이 서로 어우러짐으로써 우리의 성정(性情)이 더욱 아름답고 윤택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셋째, 아름다움은 대칭의 미감(美感)에서 온다고 합니다.

주역 64쾌의 배열과 구조를 보면 모두가 두 개씩 일음일양(一陰一陽)이 서로 대치하면서 균형과 역동의 미감(美感)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대 예술가들은 이러한 쾌상과 형식에서 미적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예술 창작에 응용하였습니다.

넷째, 아름다움은 신비로운 기운에서 온다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움(美)의 종결은 신비롭고 영묘한 가운에서 옵니다.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의 아우라에서 오는 오묘한 분위기가 아름다움 아닌가요?

어떠신가요? 우리 안녕 김경희 시인의 시에는 이 네 가지 아름다움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시에 생동감이 있고, 조화로우며, 균형과 역동의 미감이 뛰어난 아름다움을 우리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신비로움이 더해졌으니 아마 그 이상의 작품은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김경희 시인이 세상 모든 인연들에게 아름다운 시의 세계를 마음껏 선사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경희 시인과의 인연이 있는 모든 독자들이 서로 경희 시인과 상생의 선연으로 길이길이 이어가기를 진리 전에 축원을 올립니다.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1월 2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