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평화의 시작과 끝이 문화. 군사적, 외교적 갈등이 생긴다 해도 문화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 문화는 단순히 잔칫상 차리는 것이 아니라 평화 귀결의 핵심이다.

▲ (좌)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발행인, 이창근 편집위원, (우) 중앙대 박양우 교수 /사진=김은경기자

◇본지와 창간 10주년을 맞는 서울문화투데이가 공동으로 만난 사람  '중앙대 박양우 교수'

박양우 중앙대 교수는 1979년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하여 문화공보부 시절부터 격동의 80년대를 지나 문화의 중흥기인 90년대를 거쳐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문화관광부 차관으로 공직생활을 마쳤다.

그는 2008년, 모교인 중앙대학교의 예술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문화예술의 선순환을 이끌 인재 양성을 위해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갈 때  문화의 진흥없이 미래를 그려낼 수 없다. 찬란한 미래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문화정책이기 때문이다.

과연 미래의 문화정책은 어떤 그림이며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 

 전 문화관광부 차관으로 문화정책 입안자로 활동하셨는데 어떤 방향으로 문화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문화정책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문화를 진흥시키는지를 논의하는 것인데 ‘문화진흥’이라는 것은 세 가지로 정의해볼 수 있다.

첫째는 문화창조력을 높이는 것, 즉 ‘문화창조력 제고’인데 이는 예술가나 창작자들을 위한 것이고, 둘째는 국민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넓히는 것, 즉 ‘문화향수권 증대’, 마지막 셋째는 문화경제의 활성화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3대 요소로 볼 수 있다.  
이 목표를 과연 어떻게 정책으로 구현하는가가 문제인데 진흥책과 규제책이 있다. 

진흥책을 보면 크게 세 가지인데 국가가 직접 보조하는 방법이 있고, 세금 감면, 기부 혜택 등의 조세 제도, 그리고 금융제도가 있다.
결국은 다 돈 가지고 하는 정책인데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투자’라는 것을 한다. 
여기에 이런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인력 파견이나 시설 대여 등 행정적 지원도 해준다. 물론 진흥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규제도 한다. 인허가나 등급제 같은 것이 다 규제책이다.

우리나라 문화정책을 보면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공포되면서 현대적인 문화정책이 시작됐다. 이전에는 대부분 규제였다. 문화분야 예산이 거의 전무했고, 있는 것도 다 문화재 관련 예산이었다. 돈이 없으니까 규제, 검열이 계속됐다.
하지만 진흥법이 만들어지고 문예진흥원(현재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출범하며 문화예술중흥 5개년 계획이 들어서면서 드디어 지원정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창조력 제고에 주된 목적을 뒀지만, 90년대부터 문화복지가 대두되면서 국민의 문화향유권으로 중심이 이동됐다. 이후 국민의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산업의 중요성이 부상했다. 
지금은 문화산업이 가장 중요한 정책이고 그다음이 문화복지, 그다음이 창조력이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의’를 내세웠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블랙리스트 등 각종 정치적인 여파가 있기 때문에 내세운 것이라고 보고 있다. 본질적인 것은 문화경제의 활성화다.

앞으로도 문화정책은 문화경제와 문화복지, 이 두 핵심 쌍두마차로 갈 것이고 예술 자체의 진흥은 우선순위에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교수 사무실 책장에 놓인 액자에서 본 배우 현빈과 찍은 사진

 ▲ 순수예술의 발전이 중요한 부분인데, 특히 기초예술의 중요성을 자꾸 간과하는 느낌이다.

‘문화경제 활성화’도 순수예술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금방 한계가 온다. 

프랑스의 경우 한동안 계속 ‘문화복지, 문화경제’만 외쳤지만 15년 전 무렵부터 문화창조로 돌아갔다. 
결국 문화창조에 관심을 보여야 문화복지, 문화경제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문화창조 분야의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는데 사실 예산을 대폭 늘린다 해도 문화경제나 문화복지 예산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다. 특히 문화경제의 경우 타 부서와 기업의 돈까지 들어가고 민간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문화창조 분야의 예산이 가장 적다.
예산이 물론 더 많아지면 좋겠지만 한계가 있다고 본다면 문화창조, 순수예술의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문화경제도, 문화복지도 살 수 있다. 모두가 살아남는 길이다. 

▲ 순수예술의 발전이 중요한 부분인데 순수예술, 특히 기초예술의 중요성을 자꾸 간과하는 느낌이다

사실 ‘문화경제 활성화’도 순수예술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금방 한계가 온다. 프랑스의 경우 한동안 계속 ‘문화복지, 문화경제’만 외쳤지만 15년 전 무렵부터 문화창조로 돌아갔다. 결국 문화창조에 관심을 보여야 문화복지, 문화경제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문화창조 분야의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는데 사실 예산을 대폭 늘린다 해도 문화경제나 문화복지 예산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다. 특히 문화경제의 경우 타 부서와 기업의 돈까지 들어가고 민간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문화창조 분야의 예산이 가장 적다.

예산이 물론 더 많아지면 좋겠지만 한계가 있다고 본다면 문화창조, 순수예술의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문화경제도, 문화복지도 살 수 있다. 모두가 살아남는 길이다. 

▲ 과거 공직에 있을 때, 남북문화교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셨는데 앞으로 남북 문화교류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지 

남북 문제라는 것이 외교나 군사 문제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에 문화만 가지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늘 이야기하는 것이 ‘문화를 자유케하라’이다. 지원을 하되 간섭을 하지 말라는 ‘팔길이 원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적용됐으면 좋겠다. 

외교에서는 갈등과 대립이 일어날 수 있지만, 문화에서만은 그것과 관계없이 교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문화의 성격이라고 본다.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도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이 만들어지고 문화교류공연이 이어지면서 성사된 것이잖나. 그것이 문화의 역할이고 통일된 후에도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것이 문화다.

남북 평화의 시작과 끝이 문화다. 그렇기에 군사적, 외교적 갈등이 생긴다 해도 문화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  
주관부처인 통일부가 개별적인 전략을 수립해 북한을 설득하고 문화체육관광부도 통일부와 협조해 로드맵을 형성하면서 남북이 서로 장기간 협의하여 중장기적 계획을 서로 잡아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사나 경제 쪽에 합의가 집중됐는데, 문화 분야에서는 진행된 부분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문화는 단순히 앞에서 잔칫상 차리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귀결시키는 핵심인 것이다.

 한 매체 인터뷰에서 함석헌 선생의 책을 추천하셨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책인지 우리 독자들을 위해 말씀해 달라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 역사>를 읽었다. 그때는 역사책으로 읽었다기보다는 종교 사상서라는 생각으로 읽은 것인데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의 역사를 다룬 것, 그리고 종교 역사가의 입장에서 사관을 갖고 다가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성경에 우리 역사를 접목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또 굉장히 논리적인 글이면서도 글이 시적이었다. 학교 공부하면서 느낀 딱딱한 역사가 아니었다. 역사책이 딱딱하지도 않고 논리적이면서도 시적이고 문학적인 측면이 있어 감성적인 측면이 있었다.

‘이런 역사책도 만들 수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고 우리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가 이래야 한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

지금도 관심의 뒷전에 있는것이 문화정책인데 일제시대 그 암울한시기에 백범김구 선생이 문화의 중요성을  큰 과업으로 생각했다는 것에 경외감이 든다는듯 박교수는 말을 이어 나갔다.

▲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문화계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여러 기념사업이 있다고는 하지만 늘 아쉬움이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백범 김구 선생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였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문화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는 임시정부였고 우리가 일본의 지배에 있었기에 뜻을 이루기가 어려웠다고 본다.

하지만 해방 후 우리 문화계는 뭘 하고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해놓은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을 보면 전쟁과 압제의 아픔을 예술 작품을 통해 인류의 보편 가치로 승화시키고 이를 통해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이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우리는 그 부분이 부족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권력을 고스란히 그들에게 맡겼고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심해 좌우 대립이 심했다.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 없는 시기였다. 문화적으로 비극이었고 가슴 아픈 일이다.

기념사업으로 대대적이며, 다채로운 행사를 여는 것도 물론 좋지만,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꾼 것처럼 좌우 대립이 해소되고 정말 자유롭게 많은 예술작품이 창작되고 그것을 국민들이 향유하고 그것을 통해 국민들이 감동한다면 여러 행사를 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화의 힘으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국가브랜드 공연이 개발되고 지속해서 이어졌으면 한다. 우리 문화계가 그것을 이뤘으면 좋겠다. 국가의 지원이 그래서 필요하다. 단순히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승화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인 이야기로 소통하고자 한다면 한국이라는 모티브로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흑석동 중앙대 박교수 사무실 , 책장에 놓여있는 학생들과 박교수와 찍은 사진 /사진 김은경기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문화예술을 배우는 학생들의 장래 문제가 걱정이 많이 될 것 같다

일단 탄탄한 기본 실력을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을 알아야 융합을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들이 사회에 나가 적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부분들을 가르쳐줘야 한다고 본다.

맞춤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곳에 다 쓸 수 있는 것들을 최소한 가르쳐줬으면 한다.
말로만 4차산업혁명 운운할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계가 어떻게 기술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야 한다.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기술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강하다. 이런 소프트웨어가 있고 다양한 인재가 있다는 것을 정부와 기업이 알아야 하고 이들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

자기 분야에서 자신이 잘하는 기술을 하는 것이 직업 선택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지금의 ‘우물 안 개구리’ 사고를 벗어나 커리큘럼을 완전히 바꿀 필요가 있다.

또 문화예술 분야의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참 많다. 그 아이디어를 산업에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기술적인 일을 하는 이들보다 더 아이디어가 많다. 창조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꼭 문화예술계만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 다른 산업에 갈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하고 상생할 수 있다.

▲ 여러 공직을 거치시면서 많은 일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래도 남북문화교류의 현장에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문화분야 실무자로 참여해 북한을 방문하고 그 목표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또 중국 전역의 단체 관광객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수 있게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동남아 국가 화교 외에는 방한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우리가 끈질기게 중국을 설득해 단체로 한국에 올 수 있도록 협약을 맺었다.

관광은 곧 문화를 교류하는 일이다. 많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한국의 문화를 접했고 이를 통해 지금의 한류가 시작됐다. 그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정부 시절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 것도 기억난다. 당시 여러 우려가 있었지만, 대통령도 실무자도 ‘족쇄를 채우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막아서도 안 되고 막을 수도 없기에 우리가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건강하게 살다가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마지막을 맞는 것이 소망이다(웃음). 

정책적인 부분은 후배들이 잘 해낼 것이기에 굳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아마 한 15~20년 정도 삶이 남았다고 보는데 그 동안 봉사하면서 살려고 한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봉사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려 한다. 더 길게 살기보다는 살아가는 시간을 보람있게 보내려 한다. 

▲올해  (뉴스프리존과 공동취재한)서울문화투데이가 창간 10주년 이다. 독자로서, 기고자로서 (서울문화투데이 기고)참여를 해주셨는데 지금까지 서울문화투데이를 바라본 느낌은, 그리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문화전문지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계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고 요즘 일간지를 비롯한 종이신문이 다 힘든데 문화전문지는 얼마나 더 힘들겠나. 
그런 면에서 서울문화투데이가 창간 10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정말 의미가 있다. 10주년을 축하드리고 10주년을 맞았다는 자체가 경이롭고 자랑할 만한 일이다. 문화계에서 존경할만한 일이다.

문화를 다루는 잡지들이 있기는 하지만 문화를 전문으로 하는 신문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어려움 있어도 계속해서 문화전문지의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문화신문은 일반 언론매체, 미디어의 범주가 아닌 문화정책 분야의 한 카테고리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 박양우 중앙대 교수

◇박양우 중앙대학교 교수(문화예술경영연구소장(예술경영학과 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박양우 교수는 1958년생으로 전남 광주 출신이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행정학석사, 영국 시티대학교 예술행정학석사를 거쳐 한양대학교에서 관광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하여 문화재, 예술진흥, 국제관광 등 문화정책 업무를 두루 거친 후 김대중정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실에 행정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이후 문화관광부 공보관, 관광국장, 주뉴욕한국문화원 원장, 문화산업국장, 정책홍보관리실장을 거쳐 노무현정부의 마지막 문화관광부 차관으로 공직을 마쳤다. 2008년 3월 중앙대학교 예술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강단에 서고 있으며, 부총장을 맡기도 했다.
예술경영을 학문으로 전하는 대학교수로서 연구와 강의 외에도 (사)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 (사)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회장, (재)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평화한반도 문화인회의 공동대표를 겸하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정책과 예술행정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 1958년생 / 전남 광주 출생 / 행정고시 23회(1979년)
-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정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실 행정관
- 문화관광부 공보관ㆍ관광국장ㆍ문화산업국장 등 / 주뉴욕한국문화원 원장 역임
-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 마지막 문화관광부 차관
- 중앙대학교 부총장 역임 / 현재 예술경영학과 교수, 부설 문화예술경영연구소 소장
- (사)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 (재)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역임
- 現 문화체육관광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
- 現 평화한반도 문화인회의 공동대표

취재 : 뉴스프리존 김은경기자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 이창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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