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가운데 8명가량이 ‘3·1운동’ 하면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로 유관순 열사를 꼽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관순 열사는 모든 연령층과 성별, 계층, 이념 성향을 넘어 압도적 인지도를 나타냈다.

31일 <한겨레>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82.2%는 3·1운동과 관련해 떠오르는 인물로 유관순 열사를 첫손에 꼽았다. 그는 10~20대에서 모두 80% 안팎의 고른 인지도를 나타냈다. 김구 선생(5.4%), 안중근 의사(4.9%), 손병희 선생(2.8%), 윤봉길 의사(2.2%) 등이 뒤를 이었다.

국민들의 뇌리 속에 3·1운동과 ‘유관순’은 마치 연관 검색어처럼 자연스레 연결된다. ‘3·1운동’ 하면 떠오르는 인물 2명을 중복선택하는 항목에서도 유관순 열사는 91.9%의 선택을 받았다. <한겨레>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시민도 “3·1운동은 유관순이 아우내장터에서 시작하지 않았느냐”거나 “3·1운동 하면 유관순이라는 세 글자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을 중복선택할 수 있는 문항에서 응답자들은 유관순 열사에 이어 안중근(30.1%), 한용운 선생(22.2%), 김구 선생(21.4%), 손병희 선생(20.4%) 차례로 꼽았다. 한용운 선생과 손병희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지만 1909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은 3·1운동과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다. 3·1운동에 대한 ‘정보’보단 ‘인상’에 따른 응답으로 풀이된다. 특히 10대(34.5%)·20대(38.0%)·30대(29.3%) 젊은층에서 김구 선생을 선택한 비율이 높았다.

3·1운동과 관련해 유관순 열사에 대한 국민적 기억이 지배적인 것은 역사교육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가 반복적으로 학습되는데다 대중매체 등에서도 자주 조명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남성 중심의 역사 안에서 유관순이라는 여성이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기억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김 교수는 “그동안 유관순 열사는 근대적 주체로서의 그 자신의 면모보단 ‘희생’과 ‘죽음’의 서사 안에서 이해돼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해석과 재발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보훈처는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출범 100주년을 맞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유관순 열사를 선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한국 정부는 1962년 유 열사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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