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글리시도 당당한 글로비시가 될 수 있다"

◇ 현대는 '지구촌' 사회를 넘어 '세계사회'가 되어 있다. 전 세계 영어로 된 지식 정보가 약 70%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시대에 한국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영어 간행물도 넘쳐난다. 글로비시의 시대에 한국식 영어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면 언젠가 콩글리시도 '코리아 잉글리시'가 되는 시대가 도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제공 미디어 컨설팅]

[뉴스프리존=이인권 논설위원장] 본래 원어민 영어라 하더라도 국가와 국가, 지역과 지역에 따라 뚜렷한 차이가 난다. 단적으로 영국영어와 미국영어가 다르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어느 원어민 국가의 외국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영어를 이해하기가 쉬운 때가 있고 어려운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공통의 영어를 쓰는 사람과 런던토박이들의 영어는 억양, 문법, 어휘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의 영어(African-American English) 곧 흑인영어와 이른바 주류영어(mainstream English)와는 엄연하게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정통 영어'니 '정석 영어'를 구분 짖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언어학자 톰 맥아더(Tom McArthur)는 "정통 원어민 영어를 지역 기준으로 구별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특정 지역의 원어민 영어를 가지고 완전한 영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영어를 배우는데 있어 정석을 까다롭게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발음에 있어서 완벽성을 추구한다는 것의 기준이 모호하다. 표준이 아닌 영어 사투리라도 의사소통이 되면 될 일이다. 국가마다 지역마다 사용되는 영어의 차이는 문어체보다도 구어체에서 더 확연히 나타난다. 그것도 영어의 발음에서다. 즉 문법이나 단어는 덜하나 억양만큼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 정통 영어에 너무 연연해 할 이유 없다

오래전에 KBS에서 <미수다>라는 글로벌 토크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송된 적이 있었다. 한국에 유학 온 외국 사람들 중에서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는 각국의 여대생들을 선정하여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는 예능 프로였다. 거기에 참석한 미녀들을 보면 한국 사람을 뺨칠 정도로 우리말을 구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출신 국가 억양대로 한국어를 써서 웃음을 선사하는 출연자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전라도나 경상도에서 공부를 한 외국 학생들은 그 지역 특유의 말투가 담긴 지역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는 "어쩌면 저렇게 사투리로 한국말을 잘하냐!"라고 감탄을 했다.

영어도 같은 논리다. 영어를 쓰는 원어민 국가나 지역에 따라 말투는 달라지게 되어있다. 현지에 유학이나 연수를 가서 영어를 배운다면 특정 국가나 지역의 악센트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재나 책을 통해 영어를 배울 때는 대부분 표준영어의 말투를 접하게 된다. 어떤 영어 환경에 노출되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필리핀이나 인도에서 영어를 배운다면 각각 그들 나라 특유의 말투로 영어를 익힐 것이다. 그렇지만 글로벌 시대에 그 영어를 표준어니 아니니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은 잉글리시가 아니라 '글로비시'(Globish)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비시 시대가 되면서 이제는 비원어민들이 쓰는 영어의 다양한 억양을 인정하는 추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시대 국제사회문화체계나 영어에 대한 규범이나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전에 정통이 아니라서 이상하게 여겨지던 영어 발음들이 떳떳한 글로비시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이른바 정통 영어에 반해 수많은 영어 사투리들이 등장함에 따라 영어의 음성학(phonology) 개념도 바뀌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지역 영어들이 자연스럽게 국제사회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영어 원어국가에서도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쓰는 영어 문물을 수용하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

전에 한국의 강남 일부에서 자녀들이 영어 발음을 원어민처럼 하도록 하겠다며 수술을 해서 혀의 구조를 바꾸는 게 유행이라고 한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미국의 언론에도 보도되었는데 기사를 본 원어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영어를 배우려는 한국인들의 열정으로 받아주었을까? 아니면 한 아시아 국가의 이상한 국민이라고 웃어 넘겼을까?

○ 이제는 한국식 영어에도 자긍심을 갖자

'콩글리시'(Konglish)는 '코리안 잉글리시'(Korean English)를 말한다. 우리는 콩글리시를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닌 것을 일컬을 때 이 말을 쓴다. '재플리시'(Japlish), 이것은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영어(Japanese English)를 말한다. 그런가 하면 '싱글리시'(Singlish)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쓰는 영어(Singaporean English)다. 이 외에도 글로비시의 구성원으로 여러 각 국가들에서 통용되는 영어 종류가 다양하게 있다.

그 중에서도 싱가포르에서 쓰이는 영어는 격식을 갖추지 않은 의사소통 위주의 비표준 영어 사투리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좀 제대로 된 영어를 쓰자고 '좋은 영어 말하기 운동'(Speak Good English Movement)을 범국민적으로 펼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옳은 영어이든 아니든 재플리시나 싱글리시는 글로비시 영어 일원으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다. 물론 재플리시는 대부분의 영어권 국가에서는 통용되지 않아 공식 글로비시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그 존재는 평가받고 있다. 그렇지만 콩글리시는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우리가 쓰는 콩글리시의 대부분이 재플리시를 차용해 와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식 영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식 영어를 많이 따르고 있다 할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도 당당해져야 한다. 콩글리시라도 많이 만들자.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한국식 영어라도 글로비시 영어의 멤버로서 주권을 갖자. 그래야 언젠가는 콩글리시도 떳떳하게 세계 영어권의 반열에 올라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영어교육도 원어민 영어만을 고집할게 아니라 글로벌 사회의 외국인들이 두루 사용하는 글로벌 영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젠가는 이 글로벌 영어에 한국식 영어가 포함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를 준비하여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한국의 정감이 담긴 한국식 영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 영문학자는 콩글리시와 구별하여 이러한 영어를 ‘코리아 잉글리시’(Korea English)로 지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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