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운동가’ 정체성 바탕…온 세계 밝힌다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씨의 한반도 평화통일 행보가 화제다.

[뉴스프리존=김태훈 기자]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달린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씨의 스토리가 지금도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강명구 마라토너는 지난 2017년 9월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 하루 평균 42km씩 달렸다고 한다. 무려 14달 동안 16개국, 만 4천여㎞를 달렸다. 60세가 넘은 나이로 이룬 기록이라 더욱 놀랍다.

최근 남북정세가 평화 무드로 나아가는 가운데, 달리기를 통해 평화를 이뤄가고자 하는 강 마라토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미국으로 이민해 26년간 사는 동안, 몸과 마음이 지친 제 자신을 치유하고 싶었습니다. 의사는 50세 이후 마라톤을 하면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만류했지만, 저는 제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첫 마라톤은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2015년 2월, 미국 LA 해변가에서 4개월여에 걸쳐 미주대륙을 횡단했습니다. 속에서 솟아올랐으나 눌러두기만 했던 것들을 모두 토해내 시원했죠. 덕분에 제 자신에 대한 치료도 많이 됐습니다.

처음 시작한 마라톤이 미주대륙 횡단이라, 참 놀랍네요.
횡단 후 언론에서 다음 도전은 어디인지 물었고, 저는 ‘유라시아 횡단’이라 답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물음, 바로 ‘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상담히 심오한 고민이네요. 평생을 걸려도 찾기 어려운 문제죠.
체계적인 지원 없이 홀로 마라톤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때 센트럴파크에서 유모차를 끌고 뛰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바로 ‘남북 평화통일’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뛰는 저는 바로 ‘평화운동가’였습니다.

강명구 마라토너가 찾은 자신의 정체성은 바로 평화운동가였다. 그의 마라톤 역시 평화를 위한 행보였던 것이다.

평화운동가로서 유라시아를 횡단한다, 너무 낭만적인거 아닙니까(웃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출발할 때 8천 유로(약 1천만 원)로 시작했습니다. 유모차에다가 모든 생필품을 싣고서 달렸습니다. 그 이후 시민들이 한 푼 두 푼 모금해서 보내준 돈으로 불가리아 교민의 차를 한 대 인수받아, 차량 지원을 받고서 뛰게 됐죠. 뛰면서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넘는 경험을 했습니다. 달리면서 몸이 응석을 부리면 살살 달래면서 그렇게 달렸습니다.

원래 계획은 북한을 통과해서 우리나라까지 오는 것이었죠.
제가 1년 넘게 16개국을 다 아무 무리없이 통과했는데, 북한에서 좌절됐어요.  아버지 고향인 황해도 송림에 방문하고 싶었는데,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대동강가 어딘가에 있을 할아버지 산소에도 한 번 성묘를 하고 싶었는데, 또 그렇게 됐네요.

언젠가는 잘 되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활동하실 계획입니까?
평마사(평화마라톤을 사랑하는 사람들)를 통해 재단 설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맞는 4월 27일에는 남북 정상 순방 기념행사를 구상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4차 산업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신명나는’ 문화가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평화교육을 활성화시켜 우리나라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죠. 이를 위해서는 특히 ‘청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서기동래의 시대적 전환기를 맞아, 세계의 판도를 바꾸는 일에 동참해주셨으면 합니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