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형

백수를 넘겨 장수해도 여전히 일등 기업으로 건재 하는 회사들이 선진국엔 많으나 어인 까닭인지 한국 기업들은 약관에 요절하거나 너무 빨리 늙는다. 
어느 언론사가 기업의 연령을 측정하는 지표를 고안해 6백 개 상장기업의 노쇠정도를 평가한 적이 있다. 그 연령분석표에 의하면, 우량한 한국 기업의 4할이 청년기인 30대고, 5할이 장년층인 사, 오십대라는 것이다. 두드러진 현상은 신흥기업 군에 속하는 20대는 0.5 퍼센트에 원로기업군인 60대가 2 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저 분포에서 우린 두 가지 우려되는 현상을 상정할 수 있다. 
그 하나는, 80년대에 창업했을 20대 젊은 기업의 수가 극히 미미하다는 사실이 몇 가지 부정적인 사유에 기인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그것은 아마도 정부의 유연하지 못한 기업정책이나 관료주의적 행정규제 때문에 창업 풍토가 너무나 척박해서 예비 기업가들이 창업의 꿈을 키울 수가 없었다는 의미거나, 무모함이나 대기업 등쌀 때문에 많은 창업 기업들이 불과 몇 년을 버티고는 요절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간난신고를 겪으며 값비싼 전통을 60년 이상이나 쌓아 유지해 온 장수 기업들이 전체의 3 퍼센트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통에 빛나는 기업이나 사표師表가 될 만한 원로 기업가가 드물다는 의미다.

기업 역사가 짧은 우리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허다한 장수 기업들을 턱없이 선망할 순 없다 해도 60년을 지탱한 기업들이 불과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은 기업의 자체 건강관리는 물론 기업 건강에 영향을 주는 환경여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업풍토가 너무나 열악하고 오염돼 있어 기업의 건강을 위협함은 물론 기업의 단명을 재촉하는 것이다. 성장위주 때문에 걸리는 이상비대증이나 정경유착이라는 부도덕한 혼외정사 때문에 걸리는 매독 따위가 우리네 기업한테 흔해빠진 병인 게 그 예다.
우리나라에 현대 경영이 도입된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기업 역사가 쓰여 졌다고 전제할 경우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이 40년 안팎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 길다 할 수 없는 연륜이다. 그런데도 한창 활동할 나이에 상당 수 장년 기업들이 겉늙었다 평가되고 있다.
기업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조로早老하거나 요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워낙에 부실한 몸으로 무리한 경쟁을 치러서인가, 아니면 정경유착 등 너무 몸을 함부로 굴려서 그러한가. 우성학적으로 해롭다는 근친혼형의 소유경영을 일삼아서인가,
아니면 사람을 너무 우습게 여기고 돈만 너무 밝혀 돈독 들어 얻은 아담 스미스가 대적大敵 삼은 ‘비열한 탐욕 병’ 때문인가.  
언론사의 그 평가보고서는 기업의 연령에 비교된 건강정도 판정에서 몇 가지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활력과 성장성과 안정성을 측정 기준으로 삼은 데 현실적 한계가 있다. 기업이 얼마나 활력에 넘쳐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기업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고 사원들이 그 비전 만들기서부터 실천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경영층의 비전에 대한 신념과 실천 의지는 얼마나 강하고 도덕성과 기업 윤리의식의 수준은 어떠한 지 등 지표를 설정하기가 어려운 평가 대상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성장성과 안정성의 측정도 그 신뢰도에 있어 한계가 있다.

그 두 가지의 근거인 재무제표의 신빙성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세무보고용으로 결산해서 공표하는 재무제표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은 공지된 비밀이다.  더도 말고 대기업 그룹으로 하여금 연결재무제표를 작성시켰을 때 재무구조에 숨겨진 갖가지 허상들이 속속 드러났다.
성적표를 조작해 부모를 속인 학생처럼 기업이 경영성적표에 해당하는 재무제표를 상호지급보증이나 분식회계 같은 방법으로 호도하고 조작해서 주주와 소비자, 이해 관계자들을 속였거나 현혹시켰던 것이다.    
고도의 성장성이란 것도 거품투성이다. 자본수익성이 낮은 성장은 거품 같은 무가치한 것이다. 생산성이 낮은 고도의 성장은 조직의 비대화나 경영자본의 무리한 차입의존 등 해로운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기 때문에 그런 경영을 계속할수록 기업은 악성 성인병에 걸리기 마련이다.

시장가치가 가벼운 성장이란 잔뜩 부풀린 오색 풍선 같아서 경기침체라는 난기류가 닥치면 한 순간에 맥없이 바람이 빠져 사기저하에 적자의 급증, 자금난 등 갖가지 고약한 합병증을 일으킨다. 연간 경상이익률이 겨우 1퍼센트에 불과한 성장은 기업을 ‘허우대만 건장한 거지’를 만들뿐이다.
기업마다 하나 같이 자산보다 훨씬 많은 부채를 안고 있어 유동성이 매우 낮고 원리금 상환 능력이 극도로 불안정한 실정이다. 안정성은 고사하고 자본시장이나 금융기관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자본 조달을 할 수 없는 상태로 기업의 존립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국가 경제를 뒤흔들었고 은행을 거덜 나게 만든 K그룹 만해도 부실규모가 물경 60조원에 달했다. 수익성도 낮은데 연간 금융비용이 조 원 대에 달하는 경영을 한다는 것은 호랑이가 돼지와 싸우는 게 가능한 연극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제정신 가지고 하는 기업경영에선 있어서는 안 되는 범죄행위다.

경영혁신에 등한함으로써 장년 기업들이 겉늙어버렸다는 지적엔 동의할 수 있으나 외형의 급성장을 기업의 활력으로 간주해서 ‘30개 대기업그룹이 대부분 젊어졌다’고 내린 평가엔 고소를 금할 수밖에 없다.
젊어졌다는 저들은 모조리 ‘빅딜’에다 구조조정이 시급한 기업으로 지목돼 몸살을 앓았기 때문이다. 젊어지기는커녕 젊은 나이에 골병이 들어 ‘워크아웃’이라는 병원에 수술을 하러 들어간 병력을 지닌 데다 대고 그런 칭찬이라니 당치 않다.
일대 경영혁신을 단행해서 젊어졌을 뿐만 아니라 일류기업으로 발전한 놀라운 모범사례가 있다. 80년 대 초 다급한 문제가 없는데도 시대 변화에 비춰 보아 비전이 없다는 판단 하에 깜짝 놀랄 구조조정을 한 제너럴일렉트릭회사가 그 본보기다. 혁신의 기수인 최고경영자 잭 웰치는 4백여 개의 사업을 팔아 치우거나 폐쇄하고 대신에 6백여 개의 새 사업을 사들여 대대적인 물갈이를 했다.
기업의 노화방지란 게 이처럼 뼈아픈 경영혁신을 통한 희생과 새롭게 거듭나기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차입에 의한 확대경영이나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도 노상 청춘일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경영의 핵심이 경영자의 리더십에 있다는 일반론을 젊어졌다는 대기업에 적용한 것도 나무만 보았을 뿐 그 숲의 은밀한 내면을 알 지 못한 단견이었다.  리더십의 경제적 가치란 전적으로 경영자의 지혜로운 예지와 도덕성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허다한 대기업들을 거덜 나게 만든 게 다 기업주나 경영자들의 도덕적 타락이나 독선적인 방만한 경영 때문이라면 그런 리더십이란 기업에 해악일 뿐인 것이다.
만일 부단한 연구개발을 통한 ‘경쟁력’이 기업한테 불로장생의 명약이라면 슘페터가 말한 신제품 및 기술 개발이나 새로운 시장의 개척, 새로운 경영기법의 실천 같은 부단한 경영혁신은 분명히 기업의 노화를 방지하고 기업을 젊어지게 만드는 회춘 약일 것이다. 이런 처방으로 기업이 젊어져 활기에 찬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건 매우 가치 있는 발전이다.
톰 피터스의 이론대로 ‘과감한 경영혁신을 통한 힘의 결집’이 기업 회춘의 열쇠라면, 안타깝게도 한국 대기업들은 여태까지 정경유착이니 소유경영이니 겉늙게 만들거나 골병들게 만드는 엉뚱한 짓거리에 골몰했을 뿐 젊어지고 불로장생할 수 있는 보약 한 첩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형국이다.

기업연령 백수를 넘기고 있어 세계적으로 장수기업이면서도 건강한 기업으로 선망 받고 있는 코카콜라회사가 청량음료 한 우물만 파서 마시고도 너끈히 장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경이롭기조차 하다. 그 기업의 장수비결이란 최고경영자가 밝힌 것처럼 백년이 한결 같은 제품의 신뢰도와 놀랄 만큼 훌륭한 윤리도덕성에 있다. 마쓰시다 식 경영철학의 요체도, 경영은 사회가 맡겨준 것이고 경영의 목표는 봉사에 있으며 종업원에게 삶의 보람을 주는 것이 제일가는 덕목이고, 물건을 만들기 전에 사람을 만들어 그들의 중지를 모아 전원체제의 경영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기업의 빠른 노쇠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장년 기업답게 젊어지는 사고를 하고 패기를 가지고 부단히 자기 혁신에 노력해야 겉늙거나 요절하지 않게 된다. 기업이 과거처럼 허술하고 불합리한 기업 건강관리를 계속하고서는 백수는 고사하고 회갑 연륜을 사는 기업조차 많지 않을 것이다. 모름지기 우리 기업들이 공연한 자부심에 사로잡혀 허세경영의 미로를 방황할 게 아니라 남이 지어먹고 효험을 본 장수처방을 서둘러 본떠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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