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好學)

《논어(論語)》<태백편(泰伯編)>에 ‘독신호학 수사선도(篤信好學 守死善道)’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 마디로 ‘배우는 즐거움’을 말한 것이겠지요.「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독실하게 진리를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죽음으로 선한 도를 지키며,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 가난하고 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 부하고 귀한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공자를 따르는 제자는 무려 3000명 정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중 측근에 있는 제자는 70명가량 된다고 하네요. 공자의 가르침 중에서 제자들에 대한 인물평은 흥미진진합니다.《논어》에서 다섯 번째 나오는 <공야장편(公冶長編)>은 제자들에 대한 공자의 인물평이 진솔하게 묘사되고 있어 가히 인물평론집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직(忠直)하고 신의(信義)를 중시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공자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충직과 신의임 밝혔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지요.

배우기를 얼마나 좋아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자의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자에게는 ‘호학(好學)’은 취미였고 기쁨이었습니다. 매사에 겸손한 공자이지만 ‘호학’하는 자세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결연한 자세가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오늘날 ‘호학’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저는 누구보다도 우리 덕화만발 가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들은 매일아침 <덕화만발>을 읽으면서 아침을 엽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들은 <덕화만발>을 읽으면서 배우고 실천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덕화만발 가족들은 대개 자기의 위치에서 성공한 인생을 누리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식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기본자세는 ‘호학’입니다. 더욱이 지도자에게 있어서 ‘호학’은 생명처럼 소중한 습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엄청나게 책을 읽는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안타깝게도 눈에 고장이 생겨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지요.

그 대신 그 아픈 눈을 견디며 그간 끊임없이 읽고 배운 미천한 실력으로 그래도 매일 매일 <덕화만발>을 씁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나 쓸 수 있을지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호학>하는 자세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배워서 얻어낸 지식을 행동으로 옮기는 즐거움이 세상에서 가장 큰 희열(喜悅)라고 공자께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논어》에서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다산(茶山) 장약용(丁若鏞)도 의미 있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학(學)이란 가르침을 받는 것이고, 습(習)이란 학업을 익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습(時習)이란 수시로 익히는 것이며, 열(說)이란 마음이 유쾌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더 명확하게는 “학은 지(知)이고 습은 행(行)이니 학이시습(學而時習)은 지행(知行)이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學所以知也 習所以行也 學而時習者 知行兼進也).”라고 풀이 하였습니다.

다산은 이에 덧붙여 “뒷세상의 학문은 배우기만 하고 행하지 않기 때문에 기쁠 수가 없다(後世之學 學而不習 所以無可說也).”라고 말하여 아는 것을 행하지 못하는 세상을 한탄했습니다. 다산은 배우기라도 하는 세상에서 살았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행하기는커녕 배우기조차 하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배움과 실천에 대한 이런 원칙을 기준으로《논어》는 인간에게 삶의 길을 가르쳐주고,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하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를 간절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특히 스승과 제자 사이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배우기를 좋아해야 하고, 책을 좋아해야 하며, 독서를 좋아하는 일이 없고서야 어떤 기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책을 읽어서 알아낸 것들, 스승에게 배워서 알아낸 지식, 그런 것들을 실제 일에서 행동으로 옮길 때에만 참다운 기쁨(喜悅)을 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출판사가 문을 닫고 책방이 사라져가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배우고 때때로 익히기 위해 스승에게 배우고 책을 읽어야 책방이 존재하게 됩니다. 공자 같은 스승에 안회(顔回) 같은 제자들이 함께 가르치고 배워서 마음속의 희열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논어를 비롯한 고전(古典)을 읽으면 참 좋겠습니다.

특히 경전(經典)은 누구나 꼭 읽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 원불교의 경전인 <월불교전서>를《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한 그날부터 1년에 열 번씩 10년에 100번을 읽겠다고 서원(誓願)을 세웠었습니다. 왜냐하면《원불교전서》는 한두 번 읽고 책꽂이에 얹어 놓을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전서(全書)안에 인생이 있고, 우주의 진리가 들어있으며, 우리가 살아가야할 ‘인도상 요법(人道上要法)’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전서》봉독(奉讀)이 1년에 열 번, 10년에 백번을 넘어 30여 년간 303번을 돌파하고, 애석하게도 오른 쪽 눈이 고장이 생겨 이제 읽는 것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어찌 우리가 배움을 멈출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바빠 독서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제가 매일 정성껏 보내드리는 <덕화만발>이라도 꾸준히 읽을 수 있다면 우리가 ‘호학’하는 학인(學人)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하의 대도(天下大道)도는 간이(簡易) 한 것입니다. 공부 길을 잡은 사람은 우리 <덕화만발>만 꾸준히 읽고 실천하여도 우주의 진리를 깨칠 수 있고, 사람 사는 도리를 깨달아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지 않겠는지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1월 2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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