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감옥에 갇힌 언론, 이념에서 벗어나라
[김경은의 NF수첩]
‘허위 기사’, ‘편향 기사’, ‘오역 기사’, ‘기사 조작’, ‘과장 보도’, ‘왜곡 보도’, ‘가짜뉴스’, ‘기레기(기자+쓰레기)’, ‘사이비 기자’, ‘비리 언론’, ‘부패언론’, ‘어용 언론’···
언론의 존재 이유를 부정당하는 단어다. 자업자득이다. 언론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한 대가다. 그 역할 중심에는 기자가 있다. 기자는 ‘특별한 직업’이다. 끊임없이 ‘나’를 ‘의심’해야 하는 유일한 직업이다. ‘나’는 진실을 알려야 하는 소명을 가진 존재다. ‘의심’은 권력을 향한 감시의 눈을 뜻한다. 그게 바로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는 기자다. 기자가 ‘나에 대한 의심’이 부족할 때 언론은 퇴행한다. 숱한 ‘조롱’은 우리 언론이 퇴행의 시대에 직면했음을 방증한다.
최근 또 다른 ‘퇴행’이 추가됐다. ‘허위 인터뷰’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꾸민 인터뷰라는 얘기다. 30년 넘게 기자로 일했지만 ‘허위 인터뷰’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다. 생소함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두려움을 느낀다. 추락한 언론의 위상을 피부로 느낀다. 언론 불신이 거론될 때마다 입맛이 쓰다.
‘허위 인터뷰’는 지난 2022년 대선을 6개월 정도 앞둔 2021년 9월에 이뤄졌다. 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낸 신학림 뉴스타파 전문위원이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를 상대로 한 인터뷰다. 당시는 대장동 게이트가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막 부상했던 시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던 이재명 대표가 ‘대장동 몸통’으로 지목됐다. 인터뷰 내용은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재직 시절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영 씨의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무마해 줬다는 게 그 골자다.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조금 센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조미료 좀 쳤다”라고 인정했다.
‘허위 인터뷰’를 전후해서 두 사람 사이에는 1억 6,500만 원의 거래가 있었다. 명목상 책값이다. 신 전문위원이 썼다는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 지도’다. 한 권에 6,500만 원씩 세 권을 산 셈이다. 영수증인 인터뷰를 하기 3개월 전 날짜로 발행됐다. 인터뷰에 대한 보답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인터뷰 기사는 6개월이 지난 뒤 뉴스타파라는 인터넷 매체에 게재됐다. 대선을 3일 앞둔 2022년 3월 6일 10시이었다.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왜곡된 이슈와 비방 정보가 판을 친다. 언론은 정보의 진실성을 파악할 의무가 있다. 대신 의제를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선택된 의제는 여론에 반영된다. 신문 독자와 TV 시청자는 선택된 의제와 보도된 기사 내용을 대체로 신뢰한다. 언론보도를 토대로 선거에 나선 사람의 리더십, 도덕성, 가치관, 비전, 정책, 철학을 파악한다. 그리고 투표한다.
뉴스타파는 2021년 9월 15일 인터뷰를 게재했다. 원본 파일을 짜깁기했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 일부를 삭제했다. 마치 윤석열 검사가 조우영 부산저축은행 대출 블로커에게 커피를 타 주며 수사를 무마한 것처럼 보도했다. 뉴스타파가 공개한 원문 녹취록에는 조우영에게 ‘커피 타 준 윤석열’은 없었다. 주어를 박00 검사에서 윤석열 검사로 바꿨다. 보도의 제목도 자극적이다. ‘김만재 인터뷰 육성 파일, 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이었다. 음성파일 일부도 게재했다. 보도된 음성파일은 원본 파일의 중간 부분을 삭제한 채 편집된 것이었다.
허위 인터뷰를 게재한 의도가 의심받는 것은 그뿐이 아니다. 문제가 된 인터뷰 내용은 조우영 씨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다. 조 씨에게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만일 조 씨에게 전화 한 통만 했다면 지금 같은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뉴스타파는 해직 방송기자들이 공정한 보도라는 기치를 들고 만든 ‘독립언론’이다. 공정한 보도를 위해 광고도 받지 않는다. 협찬도 거절한다. 진보적인 미디어의 대안을 모았던 신생 언론이다. 이 사건으로 기대가 무색해졌다.
어떻든 이 보도의 파장은 컸다. KBS, MBC, JTBC,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이 뉴스타파 인용 보도를 했다. 차별성을 두기 위해 더 자극적인 제목이 동원되기도 했다. 일례로 3월 7일 ‘허위 인터뷰’와 관련한 MBC의 보도 제목이 ‘김만배, 윤석열이 봐줬지……사건이 없어졌어’였다. 해당 보도는 부산저축은행 부실대출사건 관련 조사를 받은 조 씨 사건 무마 과정에 김만배 씨가 박영수 전 특검을 변호사로 소개해 준 뒤 ‘사건이 없어졌다’라는 취지였다. 이 기사는 정치권에 곧바로 활용됐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고 맹공했다. 민주당도 ‘커피게이트’라면서 이 후보를 지원했다. 윤석열 후보는 48.56%, 이재명 후보는 47.83%를 얻었다. 불과 0.73%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국민의힘은 이 보도를 민주주의 기틀인 선거에 개입해 헌정질서를 파괴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심지어 판사 출신인 김기현 대표는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반역죄”라고 주장했다.
물론 일련의 보도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졌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김만재 인터뷰 의도, 뉴스타파 보도와 일련의 추종 보도 경위 등에 대한 실체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어떻든 이번 사건으로 언론의 신뢰는 땅에 곤두박질쳤다. 이번 사건에서 비롯된 신뢰 추락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념의 극단성이 고조되고 있는 언론 구조다. 선진국에도 언론의 이념 논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우리처럼 이념의 스펙트럼이 단조롭지 않다. 이념의 중간 지대가 폭이 넓다. 이들이 완충작용을 한다. 우리처럼 양극단의 대치는 없다. 이런 언론의 구조는 우리 사회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의 장으로 만들었다. 특히 선거 때가 되면 좌우로 갈린 언론이 각자의 진영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경쟁한다. 미디어가 권력투쟁의 심판이 아니라 선수가 됐다. 언론이 감시자가 아닌 동조자, 더 나아가 협조자가 된 셈이다. 스스로 정파가 되어 권력을 챙기려고 했다. 우리가 권력을 만들 수 있다는 오만이 낳았다. 하지만 그것은 권력투쟁의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권력의 도구가 된 언론 권력의 하수인보다 더 위험하다. 언론에 의해 양분된 여론은 침묵하는 사회로 만들기 때문이다. ‘침묵’은 다양성의 소멸이다.
침묵의 나선이론이라는 게 있다.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지 않아도 소수는 다수의 견해를 따르게 된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언론이 어떤 방향으로 여론을 몰고 가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려는 침묵이다. 침묵하는 여론은 여론이 아니다. 여론을 만드는 언론이 여론을 죽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또 ‘나쁜 정부’는 그 빈틈을 파고들 수 있다. 정부는 자기편에 선 언론과 반대편에 선 언론의 가를 것이다. 언론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우군에게는 당근, 반대편에는 채찍을 줄 것이다. 이미 역대 정권에서 수많은 경험을 했다.
어떻든 언론은 이른 시일 내에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다양한 여론을 생성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언론개혁이다. 개혁된 언론환경에서 언론 탄압이나 언론 개입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