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당신이 버린 저는 누구입니까!
혹 종교를 갖지 않으신 분이 있으신가요? 저는 고등학교를 예수 교 학교인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6년 동안 성경 공부와 채플 시간을 가졌었지요.
그런데 끝내 기독교에 발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종교도 인연이 있어야 만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도 불연(佛緣)이 있었든지, 친구 손에 이끌려 원불교에 귀의(歸依)해 40년간 《일원대도(一圓大道)》 수행으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누리는 중입니다.
며칠 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 전문 기자의 <주여, 당신이 버린 저는 누구입니까!>를 읽고 감동한 바 있어 요약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골고타 언덕에는 교회가 서 있다. 성묘(聖廟)교회다. 세계 각국에서 순례 객들이 찾아온다. 그리스도 교 성지 중의 성지다. 교회 안으로 들어선 순례 객들은 십자가 상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예수가 처형을 당했다고 전해지는 자리에 세워진 십자가 상이다. 실제 야트막한 언덕처럼 높다란 곳에 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가방에 있는 조그만 성경을 꺼내 펼쳤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던 시각은 오전 아홉 시였다. 마르코 복음서(15장 25 절)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라고 정확한 시각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골고타 언덕에 있는 성묘교회 내부에 그려져 있는 벽화. 십자가에서 숨진 예수를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들이 내리고 있다. 십자가 처형은 고통스럽다. 우선 손과 발에 못이 박힌다. 그런 뒤에 땅바닥에 뉘어 놓았던 십자가를 똑바로 세운다. 그 순간 사형수의 체중으로 인해 몸이 아래로 축 늘어진다.
그때 박힌 못이 손과 발의 뼈를 짓누른다. 때로는 뼈가 부러지기도 한다. 십자가 형을 받는 이의 고통은 수십 배, 수백 배로 증폭된다. 그런 고통을 겪으며 일주일 씩 십자가에 매달려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쉬이 죽지도 못한다. 십자가 형에는 그 모든 고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 형을 받은 날은 안식일 하루 전날이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낸다. 안식일 당일에 십자가에 시신이 매달려 있는 것은 부정 타는 일이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가 일찍 숨을 거두도록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지 무려 여섯 시간이 흘렀다.
오후 세 시 쯤 이었다. 예수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엘로이 엘로이레마사박타니!” 예수가 아람어로 외쳤다. 성경에는 이 대목이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이는 구약의 ‘시 편 22편’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그리했듯이 예수는 시 편을 줄줄 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 대목을 읊었을까. 어째서 절규하듯이 큰소리로 외쳤을까. 혹자는 거기서 ‘원망’을 읽는다. 하늘을 향해 예수가 원망을 토해낸 것이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오히려 거기서 ‘신을 품은 인간’을 본다. 그러한 ‘인간 예수’를 본다. 그런 절규는 비단 예수의 것만이 아니다. 우리도 하루에 수십 번 씩 내뱉는 외침이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
마더 테레사 수녀도 그랬다. 그녀가 생전에 썼던 편지에는 “주여, 당신이 버리신 저는 누구입니까?” “당신의 사랑이었던 저는 지금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의 신앙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의 부름에 맹종한 저는 진정 실수한 것일까요”라는 구절이 담겨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가 신을 부정했다.”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주여, 당신이 버리신 저는 누구입니까?”라는 물음은 신의 속성과 하나 됨을 체험한 이들이 내뱉는 고백이다. 그런 하나 됨이 지속하지 않을 때 토해내는 아쉬움이다.
뒤집어 말하면, 마더 테레사가 그만큼 신의 속성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하나 됨에서 버림받음, 다시 버림받음에서 하나 됨을 되풀이하는 수도자(修道者). 그런 이들이 쏟아내는 일종의 절규이자 찬사다.
마더 테레사 수녀가 남긴 편지에는 나와 하느님 사이의 간격을 갈망하는 절규가 담겨 있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마지막으로 외쳤던 한 마디와 맥이 통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런 절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일까. 그렇진 않다. 대신 그런 절규에서 벗어나려면 깨달음이 필요하다.
내가 너희 안에 거 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 하라는 예수의 메시지에 담긴 깊은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걸 통해 내가 당신 안에, 또 당신이 내 안에 이미 거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달라진다. 그때는 굳이 하나 되는 순간을 붙들지 않아도 좋다. 원래부터 거 해져 있음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예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졌다. 지상에서 육신을 가진 예수가 던진 마지막 한 마디였다. “다 이루어졌다.”(요한 복음서 19장 30 절), 이 말끝에 예수의 고개는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어떻습니까? “다 이루어졌다.” 저도 이생에서 행하여온 모든 공부와 사업이 원(願)도 없고 한(恨)도 없이 다 이루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9월 8일
덕 산 김덕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