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신당, 설계도대로 갈 것인가?
‘이준석 신당’의 밑그림이 나왔다. 아직 기초 드로잉 수준이기는 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신당 창당을 향해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매일 양파껍질 벗기듯 하고 있다. ‘당의 변화가 없으면’이라는 전제 아래 창당 시점(12월 27일)을 밝혔다. TK(대구·경북) 출마를 언급했다. 정치적 스펙트럼도 제시했다. 이념적 제한을 두지 않는 ‘빅텐트’를 거론했다. 외연 확장도 도모하고 있다. 국민의힘 비윤계 의원·원외 위원장, 민주당 비명계 의원 접촉 사실을 공개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까지 포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건강한 보수와 합리적 진보까지 포괄하는 ‘제3지대론’인 셈이다. 앞으로 신당의 진로와 정체성 그리고 정치개혁 과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3의 신당’은 성사 여부를 떠나 22대 총선에 영향을 미칠 메가톤급 변수로 등장했다. ‘이준석 신당’의 출현은 우선 국민의당 분열을 전제로 한다. 분열 원인은 국정운영 방식을 둘러싼 것이다. 그래서 더 뼈아프고 수습이 난감하다.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이준석 전 대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 ‘서울의 진짜 환자의 치료(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런 처방을 기대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대한민국의 정당사는 분열과 통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다. 하지만 ‘여당’이 총선을 목전(5개월)에 두고 적전 분열한 전례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용산’의 상실감은 감당이 안 될 것이다.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용산’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 평가가 이를 방증한다. 집권 초에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40%P를 넘은 일이 있다. 그 이후로는 30%P 중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만일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높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년 총선은 대통령의 임기 2년을 채울 무렵에 예정되어 있다. 당연히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다. 선거 구도가 대통령의 업적을 두고 갈라질 것이다. 만일 ‘대통령의 이름’이 도움이 되는 총선이었다면, 여당을 깨고 나오는 ‘총선용 정당’은 없었을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의 명분을 ‘대통령의 변신과 국정운영 변화’라고 규정하는 이유이다. 심지어 민주당은 국정운영의 스탠스가 그대로 유지되면, 내년 총선에서 200석 획득도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을 정도다. ‘국정 실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지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참패가 이를 잘 보여줬다.
여권 분열의 책임이 ‘용산’에 있어도 선거 국면에서 피해자는 국민의힘이다. 우선 이준석 신당이 창당되고 소속 의원의 탈당이 줄을 잇는다면, 국민의힘 지도력은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준석 하나 못 잡는’ 무능(문제 해결 능력, 위치 대처 능력)을 노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능의 대가는 이준석을 떠받쳤던 20~30대 남성 지지층의 이탈이다. 그게 현실이 된다면 정치적 파괴력은 총선 판도를 흔들 만큼 커질 것이다. 특히 이 전 대표의 말대로 보수의 중심이라고 하는 TK(대구·경북)에서 깃발을 든다면 국민의힘이 받는 타격은 더 심각할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의 출마는 보수 명맥을 면면히 이어온 국민의힘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에 그치는 게 아니다. 권력 창출과 보수 본거지에서 일부 의석이라도 신당에 잃는다면 정치 지형의 변화까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준석 신당의 출현에 긴장하는 것은 국민의힘만이 아니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탓이다. 최근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의 의뢰로 지난달 21∼2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5명을 대상으로 벌인 정기 조사에서 ‘유승민·이준석’ 신당이 나오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4.3%P 떨어지는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민주당은 8.5%P 하락했다. 과연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제3신당에 관한 이 같은 국민 정서는 이준석 신당의 파괴력을 반증한다. 비생산적인 양당 독점 구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낳은 제3신당에 대한 기대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여야 모두 자신의 지지층만 바라봤다. 비판과 타협이 허락되지 않는 정치환경을 만들었다. 사실 최근 들어 집권 여당과 거대 야당이 건전한 경쟁, 합리적 절충, 생산적 토의, 바람직한 대안을 보여줬다는 기사를 보지 못했다. 집권 여당은 행정부의 거수기가 됐다. 국민의 민생을 위해 최고 권력에 쓴소리 한마디 못 했다. 거대 야당은 입법 독주했다. 대통령 탄핵 얘기도 서슴없이 꺼냈다. 대통령도 거부권으로 거대 야당에 맞섰다. 그리고 책임 전가를 위한 비난과 성토만 있었다. 오직 정쟁뿐이다. 민생은 없었다. 이런 정치환경에 대해 국민은 환멸을 느끼고 있다.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부동층(중도층)이 크게 늘었다. 아무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층 비율 30% 안팎이다. 두꺼운 무당층은 제3지대 신당 성공의 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 이런 부동층은 결국 정쟁에 염증을 느끼는 세력이다. 정쟁 해소해줄 정당의 출현을 촉구하는 목소리인 셈이다.
여기에 선거 규칙인 ‘선거법’도 신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선거법 협상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여야는 선거법 개정 작업을 방치하고 있다. 법정시한을 7개월이나 넘겼다. 이번에도 무시되고 있는 셈이다. 현실적으로 종전의 선거법대로 진행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현행법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준연동제 비례대표제다. 지난 총선에 예외적으로 적용했던 병립형 비례대표 17석이 없어진다. 비례대표 47석 모두 준연동형 비례대표를 채택하게 된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지지율이 높다면 비례대표직을 상대적으로 많이 점유할 수 있는 제도다. 만일 정당 득표(비례대표) 10%와 지역구 의원 3명이 당선되는 정당은 15석(지역구 3석+비례대표 12석)을 차지하게 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준석 신당은 비례대표만 10석은 가능하다는 것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염두에 둔 분석이었을 것이다. 뉴스토마토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유승민 신당은 17%(내일이 총선일이라는 누구를 찍겠는가)를 받았다. 결코 이준석 신당이 원내 교섭단체 구성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준석 신당이 출범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실 지금까지 제3지대 신당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한 전례도 없다. 또 이준석 전 대표의 행보가 진짜 창당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할리우드 액션인지도 알 수 없다. 또 위기감에 빠져 있는 국민의힘이 이준석 신당 출범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있을지도 모를 이준석 전 대표와 물밀 접촉에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또 신당의 확장력이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다.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신당 창당 논의 자체가 우리 정치권에 큰 경종을 주길 바란다. 그동안의 자행해온 거대정당의 오만과 독선을 되돌아볼 기회가 되길 원한다. 거대정당은 민주주의 토대요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의 목소리로 지배하려고 했다. 공화적 질서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막았다. 이런 의미에서 제3지대 정당 출현 논의는 나쁠 게 없다. 여당이 분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신당 창당이 민주당에 더 위협된다는 분석은 양당의 혁신 노력에 불을 지피는 효과도 있다. 거대정당의 절대우위의 정당 체제에 변화를 촉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것은 당위성의 문제다. 이준석 신당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