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담을 많이 하자
덕담(德談)이란 무엇인가요? 상대방이 잘되기를 빌어 주는 고마운 말이지요. 주로 정 초에 많이 하는 말입니다. 제가 다니는 원불교 여의도교당에서도 새해 첫 법회 때, 원로들이 나와 덕담을 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덕담은 왜 할까요? 내가 했던 말의 95%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말버릇을 고치면 운명도 변한다고 합니다. 말투를 바꾸면 운명이 바뀌고, 죽는 소리 자주 하면 죽을 일만 생긴다고 합니다. 그것이 말의 영향력이라 하지요.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어 가지만, 나중에는 그 습관이 우리를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품(性品)도 결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품은 좋은 습관들의 복합 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은 습관들이 쌓여 성품이 바뀌고, 비로소 운명이 바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에 대한 배려는 주로 말투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퉁명스러운 말투는 들어온 복도 깨뜨립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감사합니다!’를 쉬지 않고 반복했던 말기 암 환자가 한순간에 암세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만년 꼴찌 아이에게 칭찬 교육을, 시켰더니 우등생이 되었고, 10년 간 적자로 허덕이던 기업이 직원들 덕담 훈련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을 조심해야지요. 자동차도 욕을 먹으면 계속 속을 썩입니다. 이는 기계도 사람 언어에 감 응하기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우리는 정 초 뿐만이 아니라, 가 급 적 덕담을 매일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덕담이 아주 많이 쌓이면,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이지요. 『언고행(言顧行) 행고언(行顧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말과 행동에 괴리(乖離)가 있다면,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잘못된 것이고, 말과 행동의 일치 여부는 인격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군자는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라는 공자의 말씀도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행동이 높더라도 말은 낮게 하는 법입니다. 이는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말할 때 나의 말이 나의 행동과 부합하는 가를 늘 살펴야 하고, 행동할 때 나의 행동이 내가 한 말과 부합하는 가를 늘 살펴야 합니다. 특히 나의 말이 나의 행동을 넘어서지 않는지 늘 주의해야지요.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하여 현인(賢人)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덕담을 잘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덕담은 긍정적이고, 도덕적인 이야기나 얘기를 의미합니다. 덕담을 잘하려면 몇 가지 지침을 따르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첫째, 긍정적인 내용 강조 합니다.
덕담은 긍정적이고 선량한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거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면 효과적입니다.
둘째, 실제 경험을 공유하면 좋습니다.
자신이 겪은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도덕적인 교훈을 얻었다면,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 경험은 듣는 이들에게 더 큰 영감을 줄 수 있지요.
셋째, 공감 능력을 발휘합니다.
듣는 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덕담을 통해 상대방에게 더 가까워지고 이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간단하고 명료한 표현을 합니다.
덕담은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복잡한 어구(語句)나 어려운 단어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자기 표현에 주의합니다.
덕담 할 때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과도한 강요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여유를 줍니다.
여섯째, 평화로운 분위기 조성합니다.
덕담은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덕담 하면 효과적이지요.
일곱째, 한쪽에 치우치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본인이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 했는 지에, 대한 이야기도 덕담 일부로 포함할 수 있습니다. 자기 발전을 통해 얻은 도덕적인 교훈을 나누면 좋습니다. 요즘은 격변의 시기인 만큼, 한쪽에 치우친 말에 주의해야 합니다. 중도(中道)가 도(道)입니다. 우리 덕화만발의 4대 강령도 <중도, 중화, 중용>입니다.
이렇게 남을 위해 덕담을 많이 하면 ‘언덕(言德)’을 쌓을 수 있습니다. 우리 <조금은 바보같이, 무조건 베풀며, 세상을 위해 맨발로 뛰자>고 호소하면, 이 또한 훌륭한 덕담이 되지 않겠는지요!
단기 4357년, 불기 2568년, 서기 2024년, 원기 109년 1월 23일
덕산 김덕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