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유엔의 北핵 감시 활동 제동

러, “현실과 동떨어졌다”며 감시활동 연장에 거부권 행사 美 "北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

2024-03-29     임형섭 객원기자

북한의 핵탄도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유엔 차원의 감시 활동이 15년만에 중단된다.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데 따른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모습(사진=로이터, 연합뉴스)

AP통신 등에 따르면 안보리 이사회 15개국이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본부에서 대북제재위 산하 전문가패널 임기 연장 결의안을 놓고 표결을 실시한 결과 13개국이 찬성하고 중국이 기권한 가운데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안보리 결의안은 9개 이상의 이사국 찬성과 5개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가 없어야 통과된다.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은 2009년 북한 2차 핵실험 직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설치돼 매년 3월경 결의안 채택 방식으로 임기를 1년씩 연장해왔다.

전문가 패널은 매년 북한 제재 이행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지난해까지 14년동안 감시 역할을 맡아왔다. 이날 임기연장안 부결로 오는 4월 30일부터 활동을 중단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필요한 북한의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제재를 위반하고 있다는 서방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러시아가 유엔 감시를 거부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에 대한 모스크바의 적대감이 커지면서 오랜 기간 합의가 이뤄진 사안에 대해서도 의견일치에 도달하기 어려워졌음을 보여준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바실리 네벤지아 러시아 주유엔대사가 안보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바실리 네벤지아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표결에 앞서 서방 국가들이 "북한의 목을 조르려 하고 있다"며 북한의 핵무기 확산을 막는 데 있어 유엔의 제재가 '관련성'과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가 패널이 "점점 더 서방의 접근 방식에 놀아나고, 편향된 정보를 재인용하고, 신문 헤드라인과 저품질 사진을 분석하는 것으로 축소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따라서 "제재 체제의 상황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본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로버트 우드 미국 차석 대사는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작년부터 러시아의 노골적인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면서 러시아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침묵시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15년 만의 유엔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활동 종료와 관련해 러시아를 강력 규탄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크게 실망했다. 러시아는 북한과 체결한 타락한 거래를 진행하기 위해 국제 평화와 안보를 약화시켰다”며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북한의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존 커비 미 대통령 국가안보소통 보좌관(사진=AP, 연합뉴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온라인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한산 무기를 수입·사용해 안보리 제재를 위반해 왔다고 지적했다. 

또 전문가 패널 활동 종료는 “미국과 안보리가 북한의 여러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하기 위해 부과한 매우 중요한 제재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이는 러시아와 북한 간 군사 협력이 심화한 결과라면서 이런 맥락에서 중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규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바라 우드워드 영국 유엔대사는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올해 초부터 우크라이나를 불법 침공하는 데 사용한 탄도미사일 이전을 포함해 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이뤄지고 있는 북한과의 무기 거래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거부권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우려나 제재의 실효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사용할 무기를 찾기 위해 제재를 회피하고 위반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니콜라 드 리비에르 프랑스 유엔대사는 “북한은 러시아가 찬성표를 던진 많은 결의안을 위반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에 군사 물자를 제공해왔다”고 비난했다.

일본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하야시 관방장관은 각료회의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 초안이 부결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유엔과 다자주의에 대한 모독이자 세계 핵 비확산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안보리 이사국의 막중한 책임을 위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