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놀이에 담긴 기막힌 사연들

한·중·일 3국의 벚꽃 원산지

2024-03-30     김경은 기자

지난 27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석촌호수에서 ‘호수벚꽃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벚꽃 축제’가 아니라 ‘벚꽃 없는 축제’가 되고 말았다. 꽃샘추위와 일조량 부족 등으로 벚꽃이 피지 않았다. 일조량이 지난 50년 평균의 74% 수준에 머물렀다고 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벚꽃 개화 시기를 4월 3일로 예측했다. 

벚꽃은 봄의 대명사다. 굳이 벚꽃 축제에 가지 않아도 된다. 아파트 단지마다, 널찍한 거리마다 벚꽃이 없는 곳이 없다. 어디서나 상춘객이 되어 ‘벚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한 폭의 그림을 방불케 하는 이름난 벚꽃 거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축제의 장이 된다. ‘석촌 호수벚꽃축제’, ‘여의도 봄꽃축제’, ‘진해 군항제’, ‘청춘 금오천 벚꽃 페스티벌’, ‘안동 벚꽃축제’, ‘울산 궁거랑벚꽃한마당’, ‘충주호 벚꽃축제’, ‘보령 주산벚꽃축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려는 인파가 몰린다. 벚꽃 축제의 장은 아름다움에 환호와 함성이 요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벚꽃은 우리나라 사람에겐 여러 가지 이유로 애증이 엇갈리는 꽃이다. 고유성이 빚은 문제가 첫째 이유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서 벚나무가 우리나라 전역에 식재됐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진해와 창경궁이다. 1905년 러일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연합함대가 쓰시마 해협에서 러시아 함대를 물리쳤다. 이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진해에 ‘쓰시마 해전 승리 기념탑’을 세우고 이곳을 벚나무로 ‘단장’했다. 진해는 당시 일본해군 기지가 있었다. 2만 그루나 심었다. 광복 후 우리는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 아래 일본이 심은 벚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기념탑도 허물었다.

일본의 벚꽃 식재는 식민지 영토표시였다 

또 일제는 1907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궁궐을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도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일본기업과 재일교포의 기부를 받아서 그렇게 했다. 벚꽃을 식민지에 심은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 제국의 땅임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일제는 벚꽃을 영토 확장의 의미로 여긴 셈이다. 광복된 우리 처지에서 그것을 그대로 둘 수 없는 일이다. 1983년 창경원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창경궁을 복원했다.

지난 얘기지만 한·중·일 삼국은 벚나무의 원산지 논쟁도 뜨거웠다. 논쟁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흔히 벚나무는 ‘일본 나무’로 알고 있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 논쟁도 여기서 시작된다. 세 나라가 서로 벚나무 특히 왕벚나무의 종주국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일본에는 벚나무 종자가 없었다”라면서 “당나라 시대에 중국에서 넘어갔다”라고 ‘종자 권리’를 주장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왕벚나무는 제주도에 자생한 식물이라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 때 프랑스인 신부 에밀 타케(한국 이름 : 엄택기)가 독일 식물학계에 보고한 논문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에밀 타케는 왕벚나무 등 2만 여종의 한국 종 식물을 채집해 식물학계에 보고했다. 일본은 당연히 자기 것이라며 맞섰다. 왕벚나무 원산지를 일본임을 ‘선포’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1912년 미국과 우호의 표시로 벚나무 3,000그루를 미국에 기증한 것이다. 일본이 왕벚나무의 미국 선물은 일제의 조선 강점 도화선이 된 미·일 간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이 한국의 지배를 세계에 알리는 협약이었다. 우리나라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당했다. 결국 1910년 한·일 병합으로 이어지게 됐다. 어떻든 미국은 벚나무를 워싱턴 포토맥강 강변에 심었다. 이곳에서 ‘제패 니스 체리 트리 페스티벌(Japanese Cherry Tree Festival)’이 매년 열린다. 올해로 110번째를 맞는다. 세계 최대의 벚꽃 축제다. 미국은 1941년 진주만 폭격을 계기로 일본이 준 왕벚나무를 다 뽑으려고 했다. 당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과 서재필 박사 등이 포토맥강에 심은 벚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니라 제주도와 울릉도라며 이를 극구 막았다. 그리고 1943년에 4월 8일을 ‘한국벚꽃독립기념일’을 선포하는 행사를 열었다. 영어 명칭도 바뀌었다. ‘Japanese Cherry Tree Festival’에서 ‘Oriental Cherry Tree Festival’로 개명했다. 난처해진 미국이 중립적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한때 벚꽃놀이를 친일 행위로 간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 제주의 왕벚나무와 일본의 벚나무는 별개의 종으로 확인됐다. 벚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서글픈 한·중·일 3국의 벚꽃 원산지 논쟁                       

그렇다면 진주 군항제, 여의도 축제 등 수많은 벚꽃 축제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1961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 다시 벚꽃 식재가 시작됐다. 벚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특히 여의도 윤중로의 모델은 포토맥강이었다. 워싱턴의 벚꽃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도와준 감사의 선물이었는데 그것을 흉내 냈다는 게 뒷맛을 씁쓸하게 한다. 

여의도 벚꽃 축제는 2005년부터 시작됐다. 올해로 20년째를 맞는다. 1975년에 국회의사당이 완공됐다. 그 둘레에 벚나무 1,400그루를 심었다. 나무가 자라 꽃을 피우면서 인파가 모여들었다. 그것이 축제가 됐다. 처음에는 ‘윤중로 벚꽃축제’라고 했다. 국회의사당 뒤편 길을 옛날에 ‘윤중로’라고 했다. 강 섬의 둘레를 둘러서 쌓은 제방을 윤중제(輪中堤)라 한다. 지금은 ‘영등포 봄꽃축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본은 벚꽃놀이를 하나미 마쓰리(はなみ まつり)라고 한다. 그 연원을 따져보자. 일본말로 벚꽃은 ‘사쿠라(さくら)’다. 이를 직역하면 ‘논의 창고’라는 뜻이다. ‘さ(사)’가 논이고 ‘くら(구라)’가 창고다. 이것은 논농사와 벚꽃의 상징적인 결합을 의미한다. 일본 사람은 벚꽃을 산의 신령이자 논의 신령이라고 한다. 나무의 신인 벚나무가 산에서 내려와 논의 신령이 되었다는 얘기다. 옛날 일본 농민은 벚꽃 개화 시기를 보고 모내기 시기를 정했다. 벚꽃이 너무 일찍 피거나 늦게 피면 한 해 농사가 흉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쌀의 수확을 관장하는 능력을 벚나무에 부여한 것이다. 한해 농사의 길흉을 결정하는 게 바로 사쿠라인 셈이다. 그래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벚꽃 놀이를 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미 마쓰리다.

하나미 마쓰리는 거의 국가적 행사를 방불케 한다. 사쿠라 개화 시기가 메인뉴스 시간의 톱뉴스로 다뤄지기도 한다. 사쿠라 개화 시기를 맞추지 못한 기상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일도 있다. 심지어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난 기상청장도 있다.

일본의 벚꽃은 사무라이의 상징

일본에는 ‘벚꽃 경기’라는 말이 있다. 하나미 마쓰리가 성행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한 해의 경기가 좋은지 나쁘지를 예측하는 ‘경기 체감지수’다. 지난해의 벚꽃 놀이의 경제 효과가 우리 돈으로 무려 6조6000억 원이나 됐다고 한다.

벚꽃 하면 가미카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일본 단가인 하이쿠 중에 아주 유명한 게 있다. 

‘사쿠라가 만발할 때 술 한 잔 들고 

사쿠라가 질 때 함께 죽노라.’

사무라이는 장렬한 죽음을 앗빠레(天晴)라고 칭한다. 일종의 죽음의 미학이다. 한 번의 바람결에도 단숨에 꽃이 지는 벚꽃을 주군에게 미련 없이 목숨을 바치는 충성의 상징으로 여겼다. 벚꽃은 일본 군국주의를 표현하는 꽃이었다. 군국주의 아래서 벚꽃은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천황을 위해서 사쿠라 꽃잎처럼 지라’는 레토릭이 젊은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게 가미카제다. 피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과, 사무라이의 또 다른 분신인 검으로 스스로 몸을 벤다는 조합, 우리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중국에서는 벚꽃을 ‘일본 벚꽃’이라고 부르는 게 보통이다. 중국 벚꽃과 일본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일본 벚꽃을 관상용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옛날 중국인은 벚꽃 감상하는 풍습이 없었다. 시나 그림에서 그런 것을 좀처럼 볼 수 없는 우리와 마찬가지이다. 

최근 중국도 벚꽃 명소가 적지 않다. 특히 하이난, 후베이성 쪽에는 대단한 벚꽃 명소들이 많다. 특히 후베이성의 우한대는 벚꽃으로 대단한 유명셀 타고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실용적이다. 단지 꽃 구경이 아니라 벚꽃 마을을 조성하는 등 축제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우리는 각 지방자치 단체마다 똑같은 벚꽃 축제를 연다. 꽃구경을 말라는 게 아니라 벚꽃과 이순신 장군을 결합한 진주 군항제처럼 특화된 축제를 만들어 차별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난해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의 벚꽃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