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해진 이재명 대표의 당원 민주주의

2024-05-20     김경은 칼럼

“잘못된 내용을 담은 신문을 일부 지역에 배포한 데 대해 사과드립니다.”

문화일보 갈무리

5월 17일 자 석간 문화일보에 사과문이 실렸다. ‘추미애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 당선’ 보도의 잘못을 시정한 것이다. 신문은 기사 마감 시간에 쫓겨 상황이 종료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예측 보도하는 경우가 있다. 대전제가 있다. 예측이 확실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그렇게 한다.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우원식 후보 승리가 ‘대이변’임을 보여준 예이다. 우원식 승리는 충격적이었다. 충격은 의외성에서 온다. 대세는 이미 결정된 듯했다. ‘어의추’라는 말이 돌았다. ‘어차피 국회의장은 추미애’란 뜻이다. 즉 ‘추미애가 순리’란 의미다. 개표함을 열어볼 필요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어떤 선거라도 의외성을 갖게 마련이다. 선거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지, 그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돌출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추미애 대세론’이 굳어지는 듯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당원과 함께-민주당이 합니다' 호남편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4·10총선이 끝나기 전부터 ‘추미애 후보가 6선이 되면’이라는 가정 아래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 탄생이 예고됐다. 그 총대를 추미애 후보 후원회장이던 이해찬 전 선거관리위원장이 맸다. 그는 “법무부 장관을 하지 않았으면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이 됐을 것이다”, “검찰개혁에 나서겠다”라는 추미애 당선인의 말을 전했다. 사실상 첫 국회의장 언급이다. 이해찬 전 위원장이 누구인가. 이재명 대표의 후견인이다. 사실상 ‘명심’을 전달한 것이다. 추미애 후보가 국회의장이 되어 윤석열과 맞서야 한다는 주문이었을 수도 있다. ‘추미애 국회의장 만들기’ 심증을 굳게 만든 이가 또 있다. 진보 진영의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던 임 교수는 추미애 당선인을 “장군”으로 부르면서 “‘추 장군’을 비롯한 여전사를 총선 이후 검찰개혁의 선봉장으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 교수는 ‘비명횡사’ 공천을 주도했다. 이 때문에 ‘명심의 들러리’라는 비판받았다. 국회의장으로 가는 추미애의 앞날은 탄탄대로 같았다.

총선 이후 국회의장 출마 의사를 밝힌 추미애 당선자는 이재명 대표와 가깝다는 ‘친명성’을 부각했다. 대여 강성 투쟁을 이미지를 부각하는 ‘선명성’ 행보를 이어갔다. 혹시라도 이재명 대표의 변심을 우려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민주당 출신인 전임 국회의장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향해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다”라고도 말했다. 2022년 4월 민주당이 주도했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박 전 의장의 중재로 수정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추 당선인은 국회의장의 중립을 거부했다. 또 ‘대통령의 거부권을 견제하고 심판하는 것이 총선 민의’라고 주장했다. 국회의장에게 요구되는 중립성을 거부의 당위성을 주장한 근거다.

총선이 끝난 뒤인 지난달 말, 추미애 당선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찐명’인 정성호와 조정식 당선자의 출마 선언이었다. 출마 선언과 동시에 그들은 국회의장 경선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그들의 출마 자체가 ‘명심’이라는 소구력을 가졌다. 정성호 의원은 ‘이재명의 복심’, ‘친명의 좌장’으로 불린다. 조정식 의원 역시 ‘찐명의 핵심’이다. 이 대표 당선 이후 줄곧 사무총장을 맡았다. 아무리 추미애 당선인이 ‘이재명 대표의 지원군’이라고 해도 그들보다 이재명 대표에게 더 가까울 수는 없다.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명심’의 향배에 따라 국회의장이 바뀔 것이라는 사실에 누구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추미애 당선인의 국회의장 꿈은 물거품이 되어 가는 듯했다. ‘당심이 곧 명심이고, 명심이 곧 민심이다’라는 추미애 후보의 ‘명심팔이’도 효과가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후보 교통정리에 나선 것이다. 친명 인사 두 명이 출마를 포기했다. 조정식 의원은 추미애 당선자에게 지지 선언했다. 추미애 후보로 단일화했다. 이재명 대표의 ‘본심’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됐다. 물론 박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뜻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다. 그런데 그걸 누가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이미 투표는 끝났다’, ‘100% 추미애’라는 얘기가 돌았다.

거기다가 강성지지파도 목소리를 높였다. 추미애 당선인으로 추대하자는 ‘개딸’의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미애로합의봐’(추미애로 후보 단일화 합의)를 외쳤다. 사실상 우원식 후보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사실 민주당의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 후보 측의 얘기”라고 전하면서 “박찬대 원내대표가 물러나라는 얘기를 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거기에다가 민주당 내 최대 계파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도 추미애 지지 선언했다. ‘명심도 추 당선인에게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선거는 예측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언더독의 반란’이었다. 여기서 언더독은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를 뜻한다. 추미애 당선인은 일격을 당했다. 언더독의 반란은 정치에 흥미와 감동만 주는 게 아니다. 예측이 빗나가면 분석과 해석이 따르게 마련이다. 국회의원이 유권자인 선거, 이를테면 국회의장이나 원내대표를 뽑는 선거는 예측하기 어렵다. 심지어 보험판매인에게 보험을 파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고려사항이 많다는 얘기다. 향후 정국, 당내 판도, 지도자의 속내 등을 따져보고 자신의 정치적 식견과 소신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하는 게 상례다. 투표 결과에서 드러난 국회의원의 생각을 ‘원심(院心)’이라고 한다. ‘원심’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어떻든 의외의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필요하다. 추미애 당선인의 패인으로 △통제되지 않는 돌출성 △돈키호테식 자기 정치 △이재명과 대권 경쟁 우려 △배신의 전력 △잇단 추대론에 대한 거부감 등이 꼽힌다.

솔직히 필자의 관심은 투표 결과가 아니다. 국회의장에 누가 되도 크게 달라지게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필자의 관심은 ‘명심’이 왜 추미애 당선인에게 끝까지 머물러 있었느냐는 것이다. 즉 이재명 대표는 왜 추미애를 선택했느냐다. 사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 차례 ‘추미애 흔들기’가 있었다. 하지만 맛보기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랫동안 국회의장 당선을 위해 노력해온 최다선(6선) 의원 조정식 후보의 ‘후퇴’는 납득되지 않는다. 정성호 후보는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드러낼 수 없는’ 불만 표시다. 거기다가 4인 경선이 이뤄졌다면 최약체는 추미애 후보가 됐을 것이라는 얘기도 돌았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 보면, 이재명 대표가 ‘찐명 중의 찐명’인 정성호·조정식 후보를 밀어준 게 아니다. 주저앉힌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이재명의 이중플레이’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패인에서 지적한 사항을 보면, ‘추미애’는 이 대표에게 매력적 후보는 아니었다. 아니 수용할 수 없는 후보였을 수도 있다. 이재명 대표는 왜 그런 추미애 후보를 암묵적, 묵시적으로 밀어준 것일까.

사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나선 우원식(오른쪽)·추미애 후보가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전반기 국회의장단 후보 선출을 위한 당선자 총회에서 경선 결과가 발표된 뒤 꽃다발을 들고 서 있다.

필자는 이재명 대표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당원 민주주의’를 ‘실천’한 것이라고 본다. 당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당원 의사가 당의 방향을 결정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지지자가 추미애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지지자를 배반할 수 없다는 게 이재명 대표의 생각이었다는 풀이다. 이재명 대표가 한 말이 있다. “당원의 생각과 여의도의 생각이 다르다면 이는 민주당이 비민주주의적 정당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4·10선거 공천을 통해 민주당 1인 체제를 완성했다. 거기다가 선거에서 압승, 171석 거대정당을 만들었다. 민주당을 자신의 의지대로 끌어갈 수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개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꾸준히 강성 지지층의 우군화 작업을 해왔다. 2021년에 불과 130만 명에 불과하던 당원을 2년만인 2023년에 245만으로 늘렸다. 늘어난 당원은 오직 ‘이재명 바라기’였다. 심지어 당의 최고 대의기구인 전국대의원 대표를 권리당원 전원투표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한 일이 있다. 물론 실패에 그쳤다. 당원이 당의 중심이 돼야 한다. 당원의 생각을 존중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것을 누가 반대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예상치 못한 투표 결과 나왔다. 명심과 ‘강경 당심’이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이로써 이재명 대표의 당원민주주의가 공허해진 것이다. 당심과 명심의 차이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이재명 대표의 행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명심과 배치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개딸’은 우원식 후보 당선자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87명으로 추정되는 ‘추미애 반대표’ 색출 작업에 들어간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일부 ‘개딸’은 민주당을 탈당, 조국혁신당으로 당적으로 옮겨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동안 ‘명심’이 ‘당심’은 다르지 않다는 착각이 만들어 낸 부작용이다. ‘명심’대로 ‘강성당심’이 움직이고 그것은 결국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오류다. 만일 진정 ‘개딸’이 이재명 대표를 돕는 것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개딸’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의 자산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개딸’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당원 민주주의가 아니라 토론과 논쟁이 만들어내는 당원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