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가 주목한 한국의 계모임
계모임은 한국인의 우정 유지법
한국의 계모임이 세계 유수의 언론에 주목받고 있다. 지난 18일 NYT는 ‘우정을 강력하게 유지하는 한국인들의 비밀 : 저축 모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한국인의 계모임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계모임을 소리 나는 대로 ‘gyemoim’으로 적고 ‘저축 모임(saving group)’으로 번역했다. NYT는 여행계, 치맥계(치맥목임), 혼인계, 상여계 등에 참여하고 있는 계모임 사례를 소개한 뒤 “한국에서는 친구들이 휴가와 식사, 기타 사교 활동을 위해 저축하는 계모임을 만드는 게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NYT는 한국의 계모임이 지속되는 이유로 ‘한국의 신뢰 문화’라고 규정했다. 반면 “서구사회에서 잘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 이유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계모임을 잘 작동하게 해 주는 문화적 전통이 서구 문화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다. 서양사람이 보면 어떤 안전장치도 없는 협동조합 형식의 모임에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적 금융시스템이 정착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계의 나라’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창회, 동호회, 동아리, 부녀회, 친목회 등이 계모임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 숫자는 얼마인지 알 수도 없다.
계모임 역사는 무려 20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그 유래와 기능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시대 상황과 지역에 따라 그 내용과 형태가 꾸준히 변해왔기 때문이다. 기록을 통해 연회(삼한시대, 변한의 9개 부족장 회음) → 계욕(契浴) 민속(신라 시대, 유두연<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음>) → 친목과 공제(고려시대 이후 조선 말기) → 사적 금융(일제강점기 이후)으로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현대 사회에 들어 계모임이 크게 변질했다. 옛날 계모임은 오늘날의 치맛바람이나 돈놀이와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조선의 계모임의 나라
아무튼 계모임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이고 지속적이며 보편적인 상호협동조직이다. 특정 목적을 위해 여러 사람이 기금을 모은다. 소정의 목적을 달성을 위해 그 기금을 쓴다. 일종의 협동 결사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 ‘계의 역량’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교육, 산업, 경제 그 밖의 각 방면에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실학의 선구자였던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우리나라 풍속을 보면 시골의 모든 향, 읍, 방, 리에 계가 만들어져 있다”라고 말했다. 우선 부족한 사회적 자본을 마련하는 게 계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예를 들면 서당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학계(學契), 제방 쌓기와 수리하는 제방계(堤坊契), 동네의 공동사업을 운영하는 동리계(東里契), 다리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이중계(里中契), 산림 보호를 위한 송금계(松禁契) 등이 그것이다. 계가 생존을 위한 단순한 협동을 넘는 공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역할을 담당했던 셈이다. 이처럼 공동사업을 위한 계에는 공동체 전원이 참여한다. 이를 통틀어 ‘마을의 대동계’라고 불렀다. 물론 이와 같은 미풍양속 지금도 농촌사회에서 유지되고 있다.
반면 마을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사친계(私親契)도 있다. 사친계는 통상의례의 비용을 공동부담하는 게 목적이다. 이웃끼리 계를 조직하여 혼례나 상례 또는 회갑 등 가정의 대소사를 도왔다. 지금의 상조회사와 장례회사를 겸했던 셈이다. 물론 세금 납부를 위해 계(호포계·군포계)를 결성하기도 했다. 서로 긴밀한 관계 유지와 친목 도모를 위한 사교 계모임은 부지기수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난로회(煖爐會)’라는 게 있었다. 난로회는 화로에 둘러앉아 소고기를 구워 먹는 초겨울 풍습(음력 10월)인데 중국에서 전해졌다. 조선에서 소고기는 귀하디귀한 음식이다. 이를 먹는 일은 권문세족이나 가능했다. 이날을 위해 ‘먹자계’를 만들기도 했다.
조선은 특히 친구 사이의 우정을 중시했다. 우정을 기리고 친목 도모를 위한 계모임도 흔했다. 그런 흔적을 볼 수 있는 그림이 있다. 임계계회도(壬癸契會圖)다. 계회도는 계회를 기념하고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임계계회는 1631년 경북 안동에서 11명의 선비가 친목 도모를 위해 결성한 계다. 이 계에서는 그들의 우정을 기록에 남기기 위해 그들의 모임을 그림에 남겨서 보존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단체 사진이다. 그 그림이 무려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오키나와의 모아이, 한국의 계모임과 유사
사실 옛날 농촌 중심의 사회에서 계운영의 부작용은 크게 부각하지 않았다. 계 모임의 규정 위반은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나와 마을을 하나로 여기는 농촌사회였기 때문이다. 마을을 떠난다는 생각 없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농촌도 도시처럼 바뀌어 갔다. 그런 과정에서 ‘산통(算筒)이 깨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산통은 점쟁이가 점을 칠 때 쓰는 산가지를 넣어두는 통이다. 산통은 점쟁이의 ‘밥통’이다. 산통이 깨지면 점쟁이의 생계가 막막해진다. 이를 비유해서 계가 깨지는 경우 산통이 깨진다고 했다. 이를 ‘산통계’라고 불렀다. ‘산통계’는 잘 굴러가던 계가 계원이 내서 모은 돈을 순번이 된 계원에게 주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류큐 지방(오키나와와 가고시마 일부), 그리고 야마나시 지방에 한국의 계모임과 1대1 대응하는 게 있다. 바로 류큐의 모아이(模合)와 야마나시의 무신(無盡)이 그것이다. 형태는 우리나라와 거의 똑같다. 계원이 곗돈을 붓고 순서대로 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한 번 계주는 영원한 계주’다. 반면 모아이는 모금을 위한 회합을 가질 때마다 계주가 바뀐다. 또 우리는 계원이 개인의 자격으로 계에 참여하는 데 반해 모아이는 단체의 참여도 가능하다. 혹은 계의 주체가 법인이 되는 사례도 있다. 이런 계는 지역 금융(금융공제 조합) 역할을 맡아 금융 상품도 판매하기도 한다. 특히 오키나와와 가고시마 지방에서는 아지도 모아이가 흥하고 있다. 모아이 수첩인 모아이쵸(模合帳)가 상품화되어 팔린다. 최근 한 시스템 개발사는 스마트폰으로 모아이를 관리할 수 있는 앱 'moaiPAY'를 개발했다. 무신과 모아이의 차이라면 무신은 친목에 중점을 둔다는 정도다.
중국엔 호화 인증샷을 위한 계모임도 있다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다. 일본은 협력보다 제재를 통해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데 능숙하다. 특히 공동체의 생활에 방해되는 행동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온 무라하치부(村八分)가 대표적인 사례다. 무라하치부는 촌락 공동체의 규칙 및 질서를 어긴 자에 대해 집단이 가하는 제재행위다. 일종의 집단 따돌림이다. 규약 위반자로 낙인이 찍히면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무라하치부가 동족 사회의 왕따라면 동종업종의 따돌림은 나가마하즈레(仲間外れ)다. 나가마하즈레는 동종업종의 집단이익과 질서에 상치되는 행동을 했을 때 동종업종 사회에서 배척하는 행위를 말한다. 동종업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무라하치부나 나가마하즈레를 당한다는 것은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소속된 집단의 규칙과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상공업자의 공인된 독점적 동업조합인 가부나가마(株仲間)다. 동업자 사이의 경쟁을 회피하고 돈독한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동업조직을 결성, 가격담합이나 영업독점권을 장악했다.
중국의 계모임 문화는 매우 상업적이다. 투자위험을 줄이고 사업 경험을 쌓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친지 혹은 친척이 돈을 모아서 목돈을 투자해서 비즈니스를 한다. 순서에 따라 다음 사람도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친인척의 주변에서 새로 투자한다. 그렇게 하나의 상권을 만들고 힘을 발휘하게 된 상권 장악을 동시에 할 수 있다. 해외의 차이나타운이 이 같은 과정을 겪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중국 20대 여성 사이에서 유행하는 독특한 계모임이 있다. 바로 규수 클럽 계모임이다. 가짜 인증사진을 찍는 사교 커뮤니티다.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서 고급 자동차, 명품 의복, 최고가의 액세서리 등을 빌려 초호화 호텔에 숙박한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명품 의류와 가방으로 치장한 뒤 값비싼 음식을 먹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것으로 끝이다. 다음 순서의 계원도 그런 과정을 반복한다고 한다. 허세와 과시욕이 만난 ‘중국판 스노비즘(snobbism)’이다.